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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일본 최고의 노인요양병원’ 세운 재일한국인 강인수

“어머니 치마저고리 떠올리며 한국인 긍지 잊지 않아”

  • 이민호│통일일보 서울지사장 doithu@chol.com │

‘일본 최고의 노인요양병원’ 세운 재일한국인 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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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독거노인 문제

그의 꿈은 의사였다. 일본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의 전기를 읽고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프리카 오지의 빈민들을 찾아다니며 병을 고쳐주던 노구치처럼 불쌍하고 힘든 이들을 돕고 싶었다. 의사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의 집념은 여전했다. 강인수는 병원 이사장으로서 의료인의 길에 다가서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노인복지병원을 세운 계기가 있었다. 절친한 친구의 어머니가 병환을 오래 앓다 숨졌는데, 병간호를 하던 친구가 지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곁에서 생생하게 지켜봤다. 더욱이 노인문제는 세계 최고령 국가인 일본에서는 진작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었다. 독거노인의 사체(死體)가 수개월이 지난 뒤 발견되는 게 흔한 뉴스다.

강인수는 자신과 주민들에게 약속한 대로 야치요병원을 ‘가장 훌륭한 노인복지시설’로 만들어냈다. 풍광부터가 압권이다. 히로시마 시내에서 북쪽으로 40분 거리로 구불구불 동해로 흘러가는 강과 완만한 산들이 병원 일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마을을 두르며 강이 흐르는 안동의 하회마을처럼 강줄기가 병원을 휘감아 돌고 있다. 봄이 되면 산 능선에는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나 한국의 산골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할 정도다.

야치요는 병원이지만 병원같지 않다. 건물 안에 들어서면 특급호텔에 와 있는 듯하다. 특유의 소독약 냄새도 나지 않고, 바닥은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지만 전혀 미끄럽지 않다. 일류 주방장이 만드는 요리에 수영장과 온천장까지 구비돼 있으니 호텔보다 오히려 낫다. 동행한 임일규 히로시마한국교육원장으로부터 “하루에 청소만 7번 한다”는 귀띔을 받고 왔는데 막상 와서 보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다고 야치요가 이런 외형적인 시설로만 일본 최고 노인복지병원으로 인정받는 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보듬어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찾은 그날 오후에는 음악 공연이 있는 날로, 노인들이 아코디언 연주자의 반주에 맞춰 동요와 옛 가요를 따라 부르며 흥이 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10여 년 전 강인수가 실어증에 걸린 환자가 동요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만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음악 공연 서비스는 직접 병실을 찾아다니는 맨투맨으로도 행해진다. 음악을 치료 보조 수단으로 도입한 이래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고 한다. 노래를 듣고 전신마비였던 환자가 거동하는가 하면, 치매에 걸려 가족마저 못 알아보던 환자가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다 기억을 되찾기도 했다. 이 밖에 야치요에서는 매일 오후 마술쇼와 포크댄스, 노래경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찔레꽃’ 목 놓아 불러

강인수는 누구하고도 격의 없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친화적인 사람이다. 주변을 배회하는 환자를 보면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대화를 나눴다. 환자들이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모습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웃고 있어도 진심이 담긴 행동이 아니라면 남이 가짜라는 걸 아는 법입니다. 언제나 가슴속에서 우러난 정성을 다하려고 애쓰며 살아왔습니다. 환자와 직원들은 제 피붙이 같은 분들이에요.”

이 같은 강인수의 진정성에 처음에는 가시눈으로 그를 흘겨봤던 일본인 직원들의 인식도 180도 달라졌다고 한다. 모두 서로 가족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됐다. 야치요에는 의사와 간호사, 간병인 등 1000여 명의 직원이 있는 데 마주치는 이들마다 서로 인사하고 안부를 물었다. 이사장인 강인수가 정성을 다해 사람들을 대하는 걸 지켜보면서 어쩌면 직원들이 따뜻한 애정의 손길로 환자를 돌보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이웃과 함께 살겠다’는 그의 신조는 중국 땅에도 손길이 닿아 있다. 2006년부터 지린(吉林)성 옌볜에 탈북 고아 보육시설인 신성관(新星館)을 건립해 20여 명의 아이를 뒷바라지하고 있다. 꽃제비가 돼 구걸로 연명하는 동족의 어린아이들을 마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한창 뛰어놀고 공부할 시기에 보호자도 없이 외국 땅에서 거리를 헤매는 건 너무 가혹합니다. 부모 잃은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는 얼마 전 탈북어린이들로부터 ‘태어나 처음으로 인간대우를 받았다’ ‘죽으려 했는데 희망을 찾았다’는 편지를 받고서 신성관을 확대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강인수는 노래 부르고 춤추기 좋아하는 영락없는 한국사람이다. 흥에 겨워 한껏 기분을 내며 애창곡인 ‘찔레꽃’을 목 놓아 부르는 사람이다. 그의 취미는 병원 13층에 있는 접객실에서 KBS ‘가요무대’ 녹화테이프를 보면서 병풍처럼 나 있는 창밖을 바라보는 것이다.

“보름날 밤 여기 앉아서 창 밖을 보면 둥그런 달이 산을 넘어갑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찔레꽃을 부르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뛰어놀던 고향으로 간 것 같아 마음이 푸근해져요.”

지난 2월 강인수는 경남대학교에서 명예경제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날의 10분 남짓한 연설을 위해 한 달 넘게 우리말 연습을 하고 왔다고 했다. 그러나 차오르는 감격에 목이 메는 바람에 그날 그의 우리말 실력은 평소보다 못했다. 녹음기를 틀어 연설 내용을 재구성해보니 그가 목표로 하는 인생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다.

“흰머리가 늘수록 ‘뿌리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제가 열 살 때 운동회 날 학교에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타나 한국인임을 보여준 어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 없는 까닭은요. 그때의 선명한 기억이 제 삶의 가치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야치요를 친절과 배려로 가득한 완벽한 병원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한 것도 바로 그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발점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일본인들로부터 한국인이 하는 병원에 가면 ‘인생의 피날레’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겁니다. 그게 제 프라이드를 지키는 길이고 부모님과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효(孝)라고 생각합니다.”

야치요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펼치는 아코디언 공연.

신동아 2009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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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통일일보 서울지사장 doithu@cho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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