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호

임시행정수도 기본계획 입안자 김병린의 21세기 발전 전략

“황해 항만 테크노폴리스 만들어 신(新) 성장동력 산업 유치하자”

  • 윤영호│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yyoungho@donga.com│

    입력2009-06-04 15: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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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시행정수도 기본계획 입안자 김병린의 21세기 발전 전략

    ●1959년 서울대 토목과 졸<br>●1959년 서울시 건설국 토목과 기사<br>●1965년 서울시 토목과 공원계장, 도로계장<br>●1970년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 공사과장, 도시계획과장<br>●1978년 서울시 하수국장, 도시계획국장<br>●1981년 (주)한양 부사장<br>●現 (주)삼안 고문

    “비즈니스 프렌들리도 좋고,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도 좋은데,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가 없다. 그동안 국토계획 분야에서 일해온 경험을 살려 문제 해결 방안을 요즘 열심히 떠들고 다닌다.”

    종합 엔지니어링 기업인 (주)삼안의 김병린(73) 고문. 1959년 서울대 공대 토목과를 졸업한 그는 서울시에 들어가 지하철건설본부 공사과장, 도시계획국장 등을 역임했고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 등 많은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무엇보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임시 행정수도 기본계획을 만드는 데 참여한 국토계획의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최근 그가 목소리를 높이는 대목은 황해 항만산업 테크노폴리스 건설. 동북아 경제권의 관문인 전남 함평만 일대에 636㎢(매립 예정지역 220㎢ 포함)의 자유도시를 건설해 신(新) 성장동력 산업의 터전으로 만들자는 게 골자다. 그는 “이 도시가 세계적인 물류거점으로 부상할 것이고, 중국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는 터전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5개월 동안 최고의 엔지니어들과 함께 밤새워 토론해 이 구상을 최근 완성했다. 엔지니어링업체 (주)건화 김영하 부회장과 (주)유신코퍼레이션 조경원 전 사장, 이문섭 전 인하대 공대 교수 등이 그들이다. 네 사람은 2005년 ‘임시 행정수도 백지 계획’을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

    네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임시 행정수도 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특히 김영하 부회장은 구미·창원·여천·온산 등 중화학공업 지구, 안산 및 시화공단, 대덕연구단지 등의 계획 및 건설에 참여했다. 조 사장은 목포·평택·광양·인천·부산신항 등의 개발 설계 및 건설에 참여했다.



    “물론 이 구상이 곧바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말 참여한 임시 행정수도 건설 구상도 처음엔 논란이 많았다. 그렇지만 노무현 정권 때 변형된 형태이긴 해도 현실화됐다. 이 구상도 언젠가는 구체화할 날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21세기 국가의 생존전략이기 때문이다.”

    “공단 건설 방식 바꾸자”

    ▼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인가.

    “북으로는 전남 영광군 낙월면과 염산면, 동으로는 함평군 손불면과 함평읍의 서해안고속도로를 경계로 하고, 서·남으로는 신안군 임자면과 지도읍 사옥도 및 압해면 고이도와 무안군 운남면을 잇는 선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면적은 416㎢이고, 인구는 3만9000명으로 추정된다. 지세도 거의 전 지역이 평활한 구릉지로 형성돼 있다.”

    ▼ 지방에 미분양 공단도 많은데, 또다시 공단을 만든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계획 아닌가.

    “사실 과거에는 공단을 만들어놓고 파는 데 집중했다. 공단과 도시를 각각 건설하다보니 공단과 도시를 평면적으로 연결했다. 여기에 시화공단이나 안산공단처럼 독자 생존하는 여러 개의 개별 기업을 모으는 식의 공단을 건설했다. 그러나 이제는 글로벌 기업이 들어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놓고, 관련 부품 기업이나 연구단지 등을 한데 모아 클러스터로 만들어야 한다. 한마디로 항만과 산업단지, 유통단지, 국제금융 기능, 대학과 연구·개발(R·D), 관광 레저, 농업과 녹지가 함께하는 복합·다기능의 창조적 산업 클러스터 도시를 계획적으로 건설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 이 도시가 물류 산업도시로 지속 성장하려면 내부에서 신기술을 창조하고 성장 업종을 새로이 개발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땅값이 비싸다고, 규제가 많다고 해외로 빠져나가는 국내 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도 이 도시에 들어오고 싶어할 것이다.”

    ▼ 그렇다 해도 가까운 중국의 대규모 경제특구와 경쟁이 되겠는가.

    “글로벌 기업은 우리나라보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컨트리 리스크(country risk)가 더 높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런 기업은 중국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오히려 이곳에 투자할 것이다. 가령 중국은 유럽의 A-300 여객기 조립공장을 톈진의 빈하이 경제특구에 유치했다. 우리는 이에 대응해 이 산업도시에 미국 보잉사를 전략적으로 적극 유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 구체적으로 중국의 경제특구보다 유리한 조건은 무엇인가.

    “면적으로는 중국 상하이 푸둥 특구보다 크지만 톈진의 빈하이 경제특구보다는 작다. 그러나 중국은 항만에서 공장까지 거리가 멀어 원료나 제품 운송에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 그러나 함평만 산업도시는 공장이 부두와 바로 인접해 있다. 또 가까운 무안공항까지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해 제품을 실어 나를 수 있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공장 시스템을 만들면 얼마든지 경쟁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여기에 중국의 임금 상승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점도 우리에게 유리하다.”

    ▼ 어떻게 땅값을 싸게 할 수 있는가.

    “후보지역의 공유수면 매립지 220㎢와 정부가 매입하는 기존 토지 200㎢ 등 420㎢를 국유지로 만들면 된다. 이 지역은 낙후지역이어서 땅값이 싸다. 매립지 또한 항만공사용 수로와 박지(薄地) 준설토를 활용하기 때문에 비교적 싸게 조성할 수 있다. 그런 다음 국유지 임대 방식으로 싼 임대료를 받고 토지사용권을 제공하면 된다. 이 제도의 장점은 국가가 도시 성장에 따라 발생하는 개발이익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정부가 ‘땅장사’를 한다는 비난도 피할 수 있다.”

    선매권 도입해 투기 방지 가능

    ▼ 개발계획이 발표되면 땅값이 폭등해 국유지 매입 비용이 예상보다 많아질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그것 때문에 후보 지역을 함평만 일대로 특정하는 데 고민이 많았다. 괜히 투기를 조장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국토계획 사업은 절차상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이 기간에 투기행위가 일어나고 땅값이 올라 사업 시행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지주는 아무런 기여도 없이 앉아서 땅값이 올라 일약 땅부자가 된다. 이를 방지하려면 이 사업에 대한 정부 정책이 결정되는 순간 곧바로 예정지구를 지정하고 일반 토지거래를 금지하면 된다. 물론 이때 예상되는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하려면 국가가 선매권을 발동해 매각을 원하는 토지는 우선 매수해야 한다. 현행법상 근거가 없다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는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임시 행정수도 기본계획 수립에 참여하면서 토지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국가가 임시 행정수도를 건설하면서 ‘집장사’ ‘땅장사’한다는 소리를 들어선 곤란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후보지 땅을 국가가 소유하도록 구상했고, ‘임시 행정수도 건설에 관한 특별조치법’에서 선매권 조항을 도입했다.

    ▼ 현재의 부산·광양항도 물동량이 없어 고전하는 상황인데.

    “현재 정부는 중국의 항만 개발로 중계 환적화물 물동량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바탕으로 신규 항만 건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제 항만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 단순히 운송 하역을 위한 항만이 아닌 배후단지, 물류단지, 산업단지와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된 항만을 건설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자체 화물로도 충분히 물동량을 만들어낼 수 있다. 가령 세계적인 물류기업 페덱스를 유치해 전용 부두를 만들도록 하면 페덱스가 화물을 가져올 것이다. 이 점에서 세계 최대의 항만도시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로테르담항은 하천항으로 출발해 하구 쪽으로 성장했고, 하구에 있는 유로포트는 산업항으로 북해 유전 및 전세계의 원유를 정제해서 수출하고 있다.”

    황해 항만산업 테크노폴리스 계획의 핵심 기능 중 하나는 항만이다. 대상 지역의 입지 조건에 맞춰 항만을 개발하면 동북아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는 게 김씨의 전망이다. 김씨의 구상에서 황해항은 산업항 기능으로 개발하지만 컨테이너 전용 부두를 위주로 하는 일반 상항(무역항) 기능과 어항, 여객항, 관광항 등의 각종 항만 기능을 포함한다.

    이 항만은 무안국제공항이 바로 옆에 있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선박화물과 항공화물을 직결 환적하도록 하면 중국 황해 연안 지역 화물도 무안공항으로 올 수 있다. 이 지역 화주(貨主)가 거리상으로나 효율성에서나 중국 내 공항보다 더 경제적이라고 판단할 법하다는 것.

    ▼ 왜 하필 함평만인가.

    “과거 공직에 있을 때 항만 개발을 위해 서해안 남해안 등을 다각적으로 조사해봤는데 대규모 항만과 배후 공업단지 및 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 지역은 이곳뿐이었다. 일대 수로의 수심도 깊어 조금만 준설하면 초대형 선박도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는 천혜의 항만이자 황해의 관문이다. 인근에는 국제공항이 있고, 고속도로와 철도도 놓여 있어 사통팔달이다.”

    그는 국토 균형 발전 측면에서도 황해 항만 산업도시 개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낙후 지역인 함평만 일대를 집중 개발해 수도권과 부산권에 대응하는 제3 광역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 그러나 전북 새만금 지역을 개발하고 있는 마당에 또다시 호남 지역을 대규모로 개발하자는 구상이 과연 현실성이 있겠는가.

    “단순한 지역 개발 차원의 구상이 아니다. 21세기에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서 논의를 출발해야 한다. 중국은 추격해오고 일본은 저만큼 앞서가는데 한국은 중간에서 샌드위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논의는 무성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얘기는 없다. 우리 경제가 다시 한 번 비상하려면 선결 조건으로 땅값이 싸면서도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춘 항만 산업도시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그런데 새만금은 이런 도시를 건설하기에는 턱없이 좁다.”

    수도권 규제 문제도 해결?

    ▼ 사업 비용은 얼마나 예상하는가.

    “예비비를 포함해 총 건설 사업비는 35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30년 장기계획으로 추진한다면 큰 부담은 아닐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보상비 3조8920억원 ▲준설 및 매립 공사비 8조5840억원 ▲철도 및 도로공사비 4조2600억원 ▲안벽 공사비 4조원 ▲상하수도 공사비 2조1260억원 ▲배후도시 공사비 4조1000억원 ▲쓰레기 처리 시설 및 소각장 공사비 5800억원 ▲조사 설계비 1조6560억원 ▲예비비 5조8020억원 등이다. 이 가운데 어업권을 포함한 용지 보상비 3조8920억원은 경기도 광교신도시 보상비의 20분의 1 수준이다. 땅값이 얼마나 싼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임시행정수도 기본계획 입안자 김병린의 21세기 발전 전략

    종합계획 대상지역

    ▼ 예상되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인구 200만명을 수용하는 200㎢의 도시와 250㎢의 산업단지를 건설하는 유사 이래 최대 사업이다. 가장 큰 문제는 용수다. 이곳의 해안지역과 소하천 유역은 물이 부족하다. 그나마 전남지역에 건설한 댐은 농업용이다. 그러나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사막지대인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콜로라도강에서 2000㎞나 떨어진 로스앤젤레스로 물을 끌어와 쓰고 있다. 우리나라도 홍수 때 흘러가는 물의 3분의 1만 받아 써도 물 문제는 금방 해결할 수 있다. 또 이 지역의 용수 공급 방식을 이원화해 양질의 수질이 요구되는 용수와 그렇지 않은 잡용수를 분리하고 사용한 용수를 회수해 재처리해서 사용한다면 용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 갯벌 매립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충분히 설득이 가능하다고 본다. 갯벌의 생산성이 높다면 연안지역이 지금까지 낙후지역으로 남아있을 리가 없다. 해제 수로·함평만 모두 어업이 크게 발전하지 않았고 염전 또한 고전하고 있다. 황해 항만산업 테크노폴리스를 건설하면 많은 일자리와 지역 생산이 일어난다. 싱가포르나 홍콩 못지않은 도시가 탄생하는 것이다.”

    ▼ 황해 항만산업 테크노폴리스를 건설한 이후에 수도권 규제는 어떻게 되는가.

    “그동안 네거티브 방식의 수도권 규제 정책을 계속해왔지만 서울 집중을 막지 못했다. 네거티브 정책의 한계가 드러난 셈이다. 이제는 국토 균형 개발정책을 수도권 규제정책에서 3대 광역권 거점 개발 방식으로 서서히 전환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과 부산권이 한국 경제의 원동력이자 국력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낙후 지역인 서남권에 황해 항만산업 테크노폴리스를 건설하는 것을 시점으로 호남권을 광역 성장 거점으로 개발하고 부산 광역권과 동시 성장시키면서 수도권 규제를 순차적으로 풀도록 하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지 않을까.”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임시 행정수도 건설 구상은 1976년 7월 무임소장관실에서 기획한 ‘수도권 인구 재배치 기본 구상’에서 시작됐으나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미뤄지다 신군부가 정권을 잡으면서 백지화됐다. 김씨 역시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이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났다.

    ▼ 노무현 정권 때 시작한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행정중심복합도시는 권력의 핵은 서울에 둔 채 정부 부처만 지방으로 이전하는 모양새가 됐다. 결국 행정업무 서비스 도시가 될 것인데 자생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우선 공무원부터 자녀 교육 등의 이유로 이 도시로 이주하지 않고 서울에 그대로 머물 것이다. 위헌 판결이 난 상황에서 계획 자체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혁신도시나 기업도시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혁신도시든 기업도시든 전국에 걸쳐 분산해놓았다. 이런 식으로 분산할 게 아니라 낙후지역에 집중해 국토 균형발전을 이끌어갈 동력원을 만들어야 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황해 항만산업 테크노폴리스를 건설하면 기업 투자가 활발해지고, 일자리가 생겨나고 우리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문제는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입지가 다른 용도로 개발되고 나면 땅값이 올라갈 게 뻔하다. 그렇게 되면 국가적으로 필요한 대규모 투자를 못 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 마지막 남은 천혜의 지역으로 정부가 하루빨리 항만 산업도시로 국토계획을 미리 확정이라도 해두었으면 하는 게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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