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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용인술’로 해부한 외교안보라인 난맥

사태수습 뛰어든 ‘소방수’들, 드리우는 ‘비선’의 그림자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MB 용인술’로 해부한 외교안보라인 난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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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용인술’로 해부한 외교안보라인 난맥

2000년 4월8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인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오른쪽)과 송호경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중국 베이징의 차이나월드 호텔에서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반면 실무부처의 경우에는 주요쟁점을 묻는 질문에 “위에서 결정할 일”이라며 답변을 피하는 일이 눈에 띄게 늘었다. 청와대 관계자들 역시 PSI 문제 등 현안에 대해 “대통령 본인께서 판단하실 것”이라고 답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모두가 대통령만을, 혹은 실세들을 쳐다보는 형국이었다.

이 대목에서 안보라인 이외의 인사들이 안보사안에 관여하는 패턴, 다시 말해 ‘민간회사 CEO 스타일의 용인술’이 어떤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대선캠프 참모를 지낸 한 전문가는 “라인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비선(秘線)’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경계심을 표한다. 남북문제를 다루는 정부조직은 ‘일만 성사되면 누가 총대를 메든 상관 없는’ 민간회사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 안보사안, 특히 대북문제에 공식직위 이외에 있는 측근들의 영향력이 높아지면 평양 역시 이를 모를 리 없고, 결국 ‘힘 있는 비선’을 찾아 일을 추진하려 할 개연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최근 여권을 중심으로 회자되는 대북특사 아이디어나 그를 바탕으로 한 정상회담 추진론은 이 같은 우려를 더욱 짙게 만든다. 교착 상태에 빠진 개성공단 억류직원 문제나 금강산 관광, 남북 간 긴장고조 등은 이미 당국 간 회담의 수준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므로, 큰 틀에서 단번에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 골자. 한 정부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북측이 요구하고 있는 10·4선언 이행을 청와대가 이제 와서 수용하겠다고 밝히고 나서기도 어려운 만큼, 아예 그와 동격의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내는 것만이 돌파구라는 논리”라고 풀이했다.

실제로 지난 1월 정문헌 통일비서관 임명을 두고 정부 주변에서는 이를 ‘이명박식 대북라인의 복원’과 연결해 해석하는 시각이 우세했다. 17대 국회의원으로 일하는 동안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공동집행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남북접촉의 경험을 쌓았던 정 비서관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평양과의 대화채널 문제에 고심해왔음을 감안하면, 대통령이 그를 발탁한 것은 그가 준비하고 있는 채널을 ‘인준’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었다. 실제로 정 비서관이 청와대 입성 후에도 남북을 오가는 인사들과의 접촉을 타진했음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된다.

“대통령이 직접 챙길 수 있나”



“대선 준비과정에서 이 대통령을 지켜보면서 흥미로웠던 것 한 가지가 권한을 전폭적으로 위임하는 2인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전문적인 영역에 대해서는 결정권을 줄 만한데도, 다른 참모들의 질시를 염려하는지 누군가 지나치게 성장했다 싶으면 자리를 옮기게 했다. 핵심 포인트다 싶은 부분, 특히 보안이 필요한 사안은 반드시 본인이 직접 결정했고 다른 누군가가 그 전모를 아는 것을 원치 않는 듯했다. 부하직원이 전체 그림을 알면 부정을 저지르기 쉬운 건설현장에서 익힌 노하우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 대통령의 대선캠프 정책 참모를 지낸 학계 인사)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다양한 인사들이 제각기 “북측 고위인사로부터 정상회담 추진을 타진받았다”며 권력핵심 인사들의 방문을 두드렸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00년 정상회담 준비과정에 대북송금 문제가 똬리를 틀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비선 접촉의 한계였다. 2006년에는 노무현 대통령 측근이던 안희정씨가 비밀리에 정상회담을 준비하다 수포로 끝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전직 안보부처 최고위 관계자는 “남북접촉의 관건은 단일화된 창구와 정확한 판단체계, 교차 확인”이라고 말한다. 공식적으로 그 임무를 수행할 사람을 지명해, 북측에서 보냈다는 제의의 의도가 무엇인지, 과연 믿을 만한 라인인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보라인 이외의 측근들이 남북접촉에 관여하기 시작하면 이런 체계가 유지되기란 쉽지 않다. 해당 인사들이 선뜻 안보라인 담당자에게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내온 대북라인의 신뢰성을 검토받을 리는 없기 때문. 여기에 ‘보안이 필요한 사안에서는 권한을 위임하지 않는’ 이 대통령 특유의 일처리 방식이 겹치면, 결국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비선 제의를 모두 대통령 본인이 직접 판단해 결정해야 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전직 정보당국 관계자의 말이다.

“대통령이 일일이 믿을 만한 제의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게 과연 물리적으로 가능할까. 반드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비선이 위험한 것은 그 때문이다. 2006년 안희정씨 경우는 금전이 오가지는 않았다지만, 까딱 잘못하면 청와대는 물론 대통령 본인이 사기를 당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손발’의 상황

이 같은 우려는 그간 남북 물밑접촉의 공식-비공개 창구의 실무역할을 독점해온 국가정보원의 현재 상황으로 인해 배가된다. 이 업무를 맡고 있는 것은 국정원 3차장 산하 대북파트다. 전통적으로 당국 간 공식회담이 열리기 전에는 북한의 통일전선부와 남한의 국정원 대북파트가 사전에 의제 등을 조율하는 것이 그간의 관례.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도 북한 수뇌부의 뜻이라며 접근해오는 각종 제의가 타당성이 있는지, 과연 믿을 만한 라인인지 북측에 재확인하는 작업도 국정원 대북전략국이 맡아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 같은 작업에 경험을 가진 직원들은 상당수가 해당 자리를 떠났다. 2000년과 2007년 정상회담에 모두 관여했던 서훈 전 3차장과 C모 전 대북전략국장은 아예 옷을 벗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임명됐던 한기범 전 3차장은 북한정보분석실 출신의 분석통이었고, 지난 2월말 임명된 최종흡 현 3차장 역시 현역시절 해외 업무를 오랫동안 담당해 남북대화 업무와는 인연이 없었다.

특히 최근에는 당국 간 물밑접촉의 중추인 대북전략국장에 국내파트 수사분야 출신이 임명됐다고 국회 정보위원회 관계자들은 귀띔한다. 업무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인사라는 비판이 여권에까지 들려오고 있다는 것. 4월 하순 개성공단 접촉이 장소와 의제 문제로 승강이하느라 22분의 짧은 해프닝 수준으로 마무리된 것도 이 때문이 아니느겠냐고 한 정보위 관계자는 말했다. 국정원 차원의 물밑 사전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전직 국정원 최고위관계자는 “정상회담 같은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으면 사람은 금세 모이게 마련”이라며 “조직 특성상 보이지 않을 뿐, 전문성을 갖춘 사람은 많다”고 말했다. 임무 우선순위가 분명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일 뿐 실제로 힘이 실리기 시작하면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대북라인도 체계가 잡히리라는 것이다.

혼이 났다는 것은…

분명한 것은 대통령 본인과 측근그룹이 직접 나서 소방수 역할을 하는 식의 상황을 오래 지속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안보라인 핵심인사들에게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 내려졌으면 차라리 빠른 시간 안에 교체하는 것이 정공법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꼬여버린 남북관계 등 강파른 안보환경은 당분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상황이 악화 추세에 있을 때 말을 갈아타기란 쉽지 않다는 게 공직인사의 기본법칙이다. 6월16일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 이후에 고위급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청와대 주변을 맴돌지만 실행 가능성은 장담하기 어려운 수준. 다만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시절 핵심측근이었던 한 인사의 말은 이를 가늠할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귀 기울일 만하다.

“MB가 부하직원을 질책할 때 얼마나 가혹한지는 정평이 나 있다. 당사자가 공개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할 만큼 호되다. 그렇지만 질책을 했다는 건 아직 그 사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정말 감이 안 된다고 판단한다면 돌아보지도 않고 바로 업무에서 제외시켜버린다. 기본적으로 부하직원에 대한 판단이 빠르다. 그리고 사람 바꾸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시절 고위 간부)

신동아 2009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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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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