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새 연재/정진석의 언론과 현대사 산책①

시인 한하운과 서울신문 기자 오소백의 필화

전후(戰後) 문단·언론 짓누른 적색 알레르기의 집단적 표출

  • 정진석│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presskr@empal.com│

시인 한하운과 서울신문 기자 오소백의 필화

3/5
시인 한하운과 서울신문 기자 오소백의 필화
공개적인 의혹 제기

초판에 실린 ‘데모’는 ‘물구비 제일앞서 피빛 기빨이 간다’는 구절을 포함해 전쟁을 겪은 당시 정서로는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붉은 색깔을 북한이나 공산주의와 동일시하던 시절이었다. ‘피빛 기빨’은 ‘붉은 기, 적기(赤旗)’를 상징한다. 공산주의, 또는 북한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소지가 있었다. 출판사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자체적으로 그 부분을 삭제한 것이다.

한하운을 세상에 처음 알리고 시집을 엮은 이병철과의 관계도 의혹을 살 수 있었다. 이병철은 전쟁이 일어난 후 월북했다. 1943년 12월호 ‘조광’에 ‘고향소식’을 발표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나 광복 후에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합동시집 ‘전위시인집’(노농사, 1946, 12)에 들어 있는 다섯 동인의 한 사람이었다. ‘전위시인집’에 실린 이병철의 시 ‘기(旗)폭’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韓人들이 봄의 우름보다도 두려워하는/ 적기가(赤旗歌) 불으며 한기빨 밑으로 모이자/ 옳은 노선으로 나라 이끄는 신호기(信號旗)/ 가슴마다 간직하고 선배들은 죽어갔느니라

전쟁이 일어나자 이병철은 북한의 종군작가로 참전했다가 전후에는 북에서 시인으로 활동했다.



한하운이 나병환자의 전국조직을 관장하는 위원장이고 ‘국립부평성혜원’의 자치위원장이며, 나병환자의 자녀를 기르는 신명보육원(新明保育院)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서울신문’ 특종은 언론계와 문단에 상당한 충격을 주는 동시에 논란에 불을 붙였다. 공개적으로 강력한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이정선이었다. 그는 ‘평화신문’에 11월5일부터 ‘민족적인 미움을 주자/ 적기가(赤旗歌) 한하운 시초와 그 배후자’라는 제목으로 4회에 걸쳐 한하운이라는 인물과 시, ‘서울신문’의 보도태도를 문제 삼았다. ‘서울신문’이 “당국의 조치에 대해 반항하듯” 한하운의 존재를 부각시키면서 그의 사진과 새로운 시를 게재했다는 것이다.

이정선은 ‘서울신문’ 기사가 한하운을 나병환자의 전국적인 지도자로 소개한 미담이 아니라 또 다른 저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하운은 유물변증법적 창작방법을 천부적으로 체득한 공산주의 지하운동자의 천분(天分)을 지닌 간사한 인물로 볼 수 있다고 단정했다. “간밤에 얼어서 손꼬락 한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우에 떨어진다”는 구절은 문화당국과 수사당국에 대해 ‘문둥이’와 ‘빨갱이’를 판별 못하도록 하려는 농간이라고 했다. 남로당 시인 이병철이 한하운의 시를 ‘자기를 부정한 그것을 다시 부정해본 다음의 높은 경지의 리얼리티’로 소개한 시집 초판 발문을 보더라도 한하운은 악랄한 공산주의 프로파간디스트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北에 대한 극단적 경계심

한하운은 그 후로 개과천선한 적이 없으며, 그 강렬한 적기의 신념과 사상에서 전향했다는 증거도 없기 때문에 ‘서울신문’에 실린 그의 시를 보면서 모골이 송연해지고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에 대한 분노를 억제할 수 없다고 했다. 가을에 ‘보리피리’라는 시를 지은 것도 이상하다면서 공산당의 지령을 받은 자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환자의 이름을 빌렸거나, 그를 매수해 적색선동을 조심스럽게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정선은 대구 출생으로 동경문화학원 문학부를 졸업하고,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하면서 ‘국도신문’ 기자, ‘태양신문’ 문화부장, ‘소년태양’ 편집국장을 지냈다. 언론계를 떠난 후에는 신동아영화주식회사 제작부장을 맡았다.

‘한하운 시초’ 재판이 발행된 후 ‘서울신문’에 그에 관한 기사가 실리기 전인 6월부터 의혹을 품은 사람들이 있었다. 6·25전쟁 이전의 문단과 언론계는 공산당과 북한에 대해 극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지는 않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겪은 후에는 공산주의나 북한에 대한 적대감과 경계심이 극에 달했다. 정음사에서 ‘한하운 시초’의 재판을 발행할 당시엔 남북 양측이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재판이 나오자 이정선을 포함한 몇몇 문인과 언론인은 ‘한하운 시초’를 문화 빨치산의 남침신호로 볼 수밖에 없다고 단정했다.

더욱이 문제되는 구절을 삭제하고, 월북한 원래의 편자 이병철 대신에 민족진영 시인 조영암을 교묘히 책동해 후기를 쓰도록 하고, 시집 자체를 민족적인 서적으로 위장해 전국 서점에 배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북한이 획책하는 새로운 각도의 대남 공작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것이 시문학의 양식을 빌려서 나온 것이므로 문단 전체는 그런 빨치산 식의 출판행위를 지체 없이 고발하고 제압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만약 서울이나 부산에 빨치산이 출현해 행패를 부린다면 당국이나 시민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한하운 서울에 오다’라는 ‘서울신문’의 선언은 공산당을 불법화한 대한민국의 법과 질서에 대한 대담무쌍한 도전이며 기습만행에 해당한다. ‘서울신문’ 보도는 6·25전쟁 때 북한군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서울을 점령했던 것과도 비길 수 있는 기세다. 그러므로 시집 발행과 관련한 모든 의혹과 배후를 밝혀야 한다고 이정선은 단호한 어조로 주장했다.

한하운 문제는 국회가 국무총리를 상대로 질의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10월19일 오전 10시에 열린 제17회 임시국회에서 최원호 의원이 한하운의 시집 출판을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전쟁으로 규정하고 나섰다. 최 의원은 “공산주의 전쟁과 민주주의 전쟁의 차이점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된다”고 전제한 뒤 “민주국가의 전쟁은 일정한 군대와 장비, 일정한 기간 그리고 다른 나라의 적병과 싸우는 것이다. 민주국가는 일정한 지역에서 적병과 마주해 총을 겨누는 전쟁을 수행하는 반면에 공산주의 전쟁은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나 총을 쏘고 방화하고 사람을 죽이거나 선전과 모략으로 침략한다”고 설명했다.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 우리의 국군은 총을 내려놓고 있지만 공산국가는 휴전기간에도 여전히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3/5
정진석│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presskr@empal.com│
연재

정진석의 언론과 현대사 산책

더보기
목록 닫기

시인 한하운과 서울신문 기자 오소백의 필화

댓글 창 닫기

2023/0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