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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노무현 그후

메이저 신문은 서거의 ‘화풀이 대상’ 되어 과도하게 시달리고 있다

미디어 비평

  • 김동률│KDI 연구위원·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박사(매체경영학) yule21@kdi.re.kr│

메이저 신문은 서거의 ‘화풀이 대상’ 되어 과도하게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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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언론인은 의무의 원칙을 따를 경우 취재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현실은 복잡하고 취재의 장벽은 날로 높아져가기 때문에 칸트적인 취재윤리의 절대적인 기준을 따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더 중요한 도덕적 명분이나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비윤리적인 수단을 동원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또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질극을 취재하는 방송이 인질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잠시 거짓 보도를 할 때 그러한 보도행위를 비판하기 어렵다. TV 뉴스에 동원되는 몰래카메라 취재기법은 취재대상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은 점에서 비윤리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시청자는 몰래카메라가 들추어낸 부정과 불법 사례를 보며 쾌감을 느낀다. 아무도 그 수단에 대해 문제 삼지 않는다.

공인이 가지는 프라이버시 공간은 일반인이 지닌 공간에 비해 억울하리만큼 좁고도 작다. 유명인사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사회적 영향력이 큰 공인의 경우, 어디서 밥 먹고 사람 만나는 것 같은 시시콜콜한 사생활도 공적 영역으로 보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그러니만큼 저 세상으로 떠난 노 전 대통령은 이 점에서는 너무 억울해 할 필요는 없다. 이미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유서를 통해 전직 대통령은 공인임을 알렸다. 이승을 떠나는 자로서의 초탈한 면모를 뚜렷이 보여주었다.

언론이 公人 들볶는 건 당연

언론의 보도 관행도 국민의 질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언론은 “수사 단계부터 인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리한 속보경쟁에 매달렸다”는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비판자들은 “노 전 대통령 관련 보도가 본질에 대한 접근보다는 흥미 위주로 흘러갔다”고 날을 세운다. 노 전 대통령에게 비교적인 호의적인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물론 전체 언론이 검찰의 일방적인 발표를 마치 사실처럼 중계하는 식의 보도를 일삼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취재기자 처지에선 억울할 수밖에 없다. 검찰에서 나온 얘기는 쓸 수밖에 없는 한국적 상황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게 일선 기자들의 볼멘소리다. 부모는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언론사에 어렵게 취업해 검찰 출입기자가 된 자신의 자녀가 검찰청 쓰레기장을 뒤져 기삿거리(찢어진 수사 관련 서류 조각 등)를 찾는 모습을 본다면 놀랄 것이다. 검찰 관련 취재는 매우 중요하고 동시에 매우 어렵다. 뉴스 가치가 크고 분초를 다투는 검찰 사건기사를 두고 실제로 그 같은 완벽한 확인이 가능하냐는 것이 변명의 요체다. 속보경쟁은 언론의 숙명이고 이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언론은 없다.



물론 선진국의 경우 피의자의 인권을 무겁게 여기고 기소 단계 이전에는 무죄 추정 원칙에 기반해 신중하게 보도하는 추세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피의자의 자백에만 의존한 경찰의 수사 발표는 살인혐의라고 해도 신문에 게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급하게 특종하는 것보다 정확하게 보도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사건보도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권장의 수준이지 강제는 아니라는 의미다. 이 또한 살인적인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한국 언론과는 거리가 먼 그들만의 얘기다. 서울에서만 10개 이상의 종합 일간지가 경쟁하는 우리와 비교하기란 애시당초 무리다.

그럼에도 세계적으로 피의자 인권이 점차 강화되는 추세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에서도 그렇다. 교통사고 사망자 명단은 인권보호 차원에서 싣지 않는다.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우는 일도 없다. 특히 영국의 경우 “피의자의 자백이 있었다”는 사실 보도나 “엄벌해야 한다”는 식의 사설도 ‘법정모독죄’에 걸린다. 피의자가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언론의 자유보다 우위에 놓는 것이다.

검찰 기사는 두 얼굴의 괴물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전과 서거 후 달라진 언론의 보도 태도는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조롱의 대상’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보도 태도가 표변했다는 것이다. 비판론자는 “서거 전날까지 노 전 대통령을 정치적 파산자로 몰아붙이고 가족, 주변에까지 인간적 모멸을 주던 언론이 하루아침에 ‘노비어천가’로 돌아선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런 논란도 언론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전 보도는 언론의 비판 고발 기능, 즉 감시견 기능(watch dog)에 충실했다고 주장할 수 있겠다. 대다수 국민은 언론의 이 같은 고발 보도를 보면서 대리만족의 효과를 느꼈다.

다만 사회고발 보도에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노 전 대통령 관련 기사를 거듭 보게 되면 노 전 대통령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조차 그에게 냉소적인 마음으로 바뀐다. 고위직의 부정부패가 드러나 처벌을 받게 될 경우 사람들은 통쾌하고 후련하다가도 결국 마음이 불편하고 무거워지는 것이다.

특히 방송은 현실보다 더 생생한 리얼리티, 이른바 ‘슈퍼 리얼리티(super reality)’를 제공한다. 부엌 냉장고에 있는 사과보다 TV 화면 속 미인이 한입 베어 먹는 사과가 훨씬 더 맛있어 보이는 것과 같다. 노 전 대통령 관련 보도와 같은 과도한 감시견식 보도는 전체 국민의 사회에 대한 냉소를 키우게 된다. 개혁을 주창한 노 전 대통령과 386인사도 부패했다고 생각한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이는 “우리는 어쩔 수 없다” “한국사회는 희망이 없다”와 같은 허무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일종의 ‘미디어 부정주의 효과(media malaise effect)’다.

이처럼 검찰 관련 언론보도는 양면을 칼날을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 시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학적 시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나쁜 뉴스가 곧 좋은 뉴스(bad news is good news)”인 언론 속성으로 인해 검찰 관련 기사는 여전히 독자의 관심 대상임은 분명하다. 검찰 기사는 두 얼굴을 가진 괴물이고 독자는 그 괴물을 새겨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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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KDI 연구위원·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박사(매체경영학) yule21@k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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