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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연재’ 멀티미디어시대의 클래식 캐릭터

미실과 클레오파트라

팜파탈과 카리스마, 그 영원한 매혹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미실과 클레오파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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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과 클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는 ‘사랑의 달인’이기도 하지만 ‘지식의 달인’이기도 하다.

“천명이 꼭 어린 날의 저 같지 않습니까? 어린 시절 지소태후께서 날 궁에서 쫓아낸 적이 있었습니다. 난 궁을 쫓겨나면서 만약 다시 돌아온다면 그때의 나는 예전의 미실은 아닐 거라, 다짐했지요. 그리고 그리했습니다. 헌데 보니, 천명공주가 그랬습니다. 용수공을 잃고 아기를 가진 채 궁을 나가면서, 다시 돌아올 땐 예전의 천명이 아닐 거라 다짐한 겁니다. 천명은 지난 1년 동안 온몸의 피를 돌리고, 뼈를 깎고, 살을 태우며, 큰 그림을 그렸을 겁니다. 그런 자의 도전이라. 그런 공주의 도전….”

모두들 미실의 미소 뒤에 감춰진 진의를 몰라 전전긍긍하며 공포에 사로잡힌다. 미실은 적의 능력이 뛰어날수록 흥분하는 승부사의 기질을 감추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의 권력을 탐내는 모든 남자, 그중에서 자신이 쓸만하다고 믿는 유능한 인재들을 자신의 색공으로 사로잡는다. 그녀는 남편이 있지만 남편에게도 다른 남자와의 관계를 암묵적으로 공인(?)받을 정도로 거침없는 캐릭터다.

“이제 저는 백정왕자의 황후가 될 것입니다. 제가 또, 다른 사내의 부인이 되는 것이 마음 쓰이십니까?” 세종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진흥대제께오서 말씀하셨습니다. 미실 공주는 어느 사내든 혼자는 차지할 수 없는 여인이라고요. 다만 내가 왕도 성골도 아닌 것이 한스러울 뿐이오.”

시간을 지배하는 기술

‘화랑세기’에는 미실의 현란한 미색과 남다른 문장실력이 그녀를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고 나와 있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매력을 좀 더 합리적인 근거에서 찾아낸다. 미실의 용병술과 독심술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미실에게 ‘시간을 관리하는 기술’이 없었다면 미실은 왕을 위협하는 권력까지 갖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관점, 그것이 드라마 ‘선덕여왕’이 보여주는 현대적 역사의식이다.



아직 농경사회였던 신라사회에서 백성들의 생사고락을 틀어쥐고 있는 가장 커다란 권력은 왕권도 부권도 아니었다. 바로 ‘날씨’야말로 농경사회의 숨은 신이었던 것이다. 농경만이 유일한 경제적 원천이었던 사회에서 국왕이 아무리 몸 바쳐 기우제를 지내도 비가 오지 않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누가 그 왕을 믿고 따르겠는가.

미실의 비밀병기, 그것은 바로 언제 비가 내리고, 언제 비가 그칠지를 비롯하여 시간에 따른 기후의 변화가 촘촘히 기록되어 있는 명나라의 비밀문서 책력(대명력)이었다. 명나라의 책력만으로는 신라의 상황에 맞는 기후 대응전략을 짤 수 없기에 드라마 ‘선덕여왕’은 또 하나의 서사적 포석을 깔아놓는다. 사다함, 바로 미실의 첫사랑이다. 그녀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첫사랑의 마지막 선물 사다함의 매화, 그것이야말로 미실의 마르지 않는 권력의 원천이다. 천하에 현존하던 모든 책력 중 가장 정확하다는 대명력을 손에 넣음으로써, 미실은 신라를 지배할 수 있는 강력한 지식을 독점하게 된 것이다. ‘앎의 권력’을 십분 활용했던 미실의 지혜를 완성한 것은 바로 그녀의 첫사랑이었다. 미실의 첫사랑이 그녀에게 몰래 남긴 가야의 책력이 없었다면 대명력은 신라에 직접 적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다함 그 충성스러운 분이 가야를 정벌한 후 진흥대제를 속이면서까지 저에게 빼돌린 마지막 선물. 전쟁에 나간 정인(情人)을 배신하고 다른 사내의 부인이 된 저에게 가야의 책력을 남겨주었지요. 우리에게 그 가야의 책력이 있기에 대명력을 삼한 땅에 맞게 수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지배하게 된 미실 또한 또 다른 시간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녀의 비밀병기이자 유일한 아킬레스건이다. 지금은 미실에 비해 한없이 연약한 천명공주이지만, 그녀는 미실의 아킬레스건을 알고 있다. 용수공의 유복자를 낳은 후 천명은 자신의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미실 공주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요. 가장 강한 것은 세월이다. 미실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하여 세월을 뜻하는 이름을 지었지요. 이름을 ‘춘추’라 지었습니다.” 천명(하늘의 운수)과 춘추(자연의 시간)를 당하지 못하는 것이 미실의 유일한 아킬레스건이었던 것이다.

미실과 클레오파트라는 ‘사랑의 달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식의 달인’이었다. 언어와 예술, 과학과 철학을 비롯한 거의 모든 학문에 통달해 있었던 미실과 클레오파트라의 ‘지식권력’이야말로 그녀들의 진정한 무기였다. 말하자면 ‘색공’은 그녀들의 방대한 지식권력의 아주 작은 ‘일부’였을 뿐이다. 색공술에 가려 그들의 르네상스적 지식의 힘은 은폐되었던 것이 아닐까. 미실은 문장과 언변이 유창해 700권이 넘는 문서 기록을 남겼으며 그녀의 아들 보종이 한때 그녀의 기록을 필사하여 보관했을 정도라고 한다.

클레오파트라와 미실의 힘은 예술과 학문에 대한 감식안에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지덕체의 완벽한 일치를 위해 프로그래밍된 백과전서식 교육을 받았을 뿐 아니라 전무후무한 외국어의 달인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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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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