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호

쿠거족 열풍

Let it be 그저 그들이 사랑하게 하라

  • 김신현경│이화여대 강사 todamo@hanmail.net│

    입력2009-09-09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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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거족 열풍

    16세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연인이 된 데미 무어와 애쉬든 커처.

    미디어는 ‘연상연하 커플’이라는 명명도 모자란지 미국에서 유행하는 ‘쿠거족’이라는 신조어까지 들여와 분석이 필요한 하나의 ‘현상’으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듯하다.

    애용하는 인터넷 ‘다 선생’과 ‘네 선생’에게 문의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연하의 남성과 결혼한 할리우드 여배우들에 대한 신상명세서부터 한국형 쿠거족에 대한 분석, ‘당신은 쿠거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의 설문조사 결과, 쿠거족이 나오는 드라마와 그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커플(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바람직한 커플’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일까. 가장 욕망함직한 커플이라면 또 몰라도)까지 내가 이 글에서 풀어내야 할 ‘쿠거족에 대한 모든 것’이 이미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 아닌가(그러니 ‘쿠거족’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은 ‘다 선생’과 ‘네 선생’께 우선 문의하시길).

    깜박이는 커서를 몇십 분간 노려보며, 원고를 쓸 때마다 던지는 ‘내가 할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이번에도 여지없이 하다 미디어는 미디어고, 어디 그렇다면 현실은 어떠한지를 점검해보기로 했다. 주위에서 그나마 연애를 하고 있다는 친구들의 면면을 떠올리다보니… 그렇다, 그들은 모두 연하의 남성들과 목하 열애 중이 아니던가!

    이 깨달음은 다소의 황망함을 동반했는데, 그것은 왜냐하면 거의 매일같이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대던 그녀들의 그 연애를 이른바 트렌드라는 ‘연상연하’ 연애라는 틀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로 내 친구들이 끝까지 먹잇감을 노리며 주위를 맴돈다는 고양이 친척 ‘쿠거’? 솔직히 말해서 나나 내 친구들처럼 트렌드에 무심한 인간도 흔치 않을 텐데, 거 참, 이렇게 되면 ‘연상연하’가 대세이긴 대세인가 보다.

    연상연하 유행? 그냥 연애!



    이쯤에 생각이 미치자 트렌드에는 한참 모자라고 특수하다고 여겼던 내 친구 집단의 문화와 사회적인 유행 현상이 겹치는 작금의 상황을 해명하는 것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렵다고 여겨져 급하게 SOS를 쳤다. 연상, 연하를 골고루 사귀어본 경험이 있는 A. 그녀에게 물었다. 연애할 때 연상의 남성과 연하의 남성이 차이가 있느냐고.

    “차이? 글쎄, 사람마다 다르니까 뭐. 그런데 아무래도 그런 건 있지. 연상인 경우에는 아무리 동등하다, 평등하다 해도 결정적일 때는 ‘오빠 말 안 듣느냐’ 뭐 이런 식으로 권위적으로 굴고, 나도 뭔가 기대게 되고. 그런데 연하는 가끔 ‘자기도 남자’라고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그런 것도 귀엽게 보이고, 권위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

    현재 상당히 나이 차가 있는 연하의 남성과 사귀고 있는 그녀는 자신에 대한 존중, 아기자기한 배려를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남자친구의 이런 성격은 그간 자주 들어오던 그녀의 연애 자랑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우리는 이를 ‘연하의 남성’이 갖는 특성으로 틀지어 얘기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조금 앞질러 말하는 것이 되겠지만, 바야흐로 ‘연상연하 연애’는 특수한 몇몇 사람의 앞서가는 유행이 아니라 세상의 많고 많은 연애 양태 중 하나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은 아닐까?

    사실 알고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 그러니까 현재 70대에서 80대 노인 세대 중에는 ‘연상연하’ 커플이 상당히 많다. 요즘 새롭게 나타난 현상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그 이유는 사뭇 다르다.

    이 세대에서는 태어나자마자 출생신고를 하는 요즈음과는 달리 높은 유아사망률과 출생, 사망 등록 등 근대적인 인구 등록제에 대한 낯섦으로 인해 태어난 지 몇 년 지나 출생신고를 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실제 나이와 주민등록상 나이가 다른 것은 흔한 일이다. 특히 출생이 그리 환영받지 못했던 딸의 경우에는 아들보다 출생 신고를 더 늦게 하는 일도 많았기 때문에 할머니들의 나이는 실제와 많이 다르다.

    또한 이 세대가 태어난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강제 징용을 피하느라 아직 혼인할 정도로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까지 일찍 혼인을 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제사를 지낼 아들을 낳는 것이 조상에 대한 의무로 여겨졌으므로, 아직 어린아이까지 일찌감치 혼인을 시켜 후손을 보고자 했던 것이다. 여자 아이의 경우에는 아이를 출산할 수 있는 몸의 성장을 비교적 분명히 알 수 있으므로, 2차 성징이 나타난 여자 아이와 그보다 다소 나이 어린 남자 아이의 혼인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그러나 이러한 혼인 양상에 부작용이 없을 수 없었다. 1900년대 초반 고향에서 집안 어른들의 뜻에 따라 나이 많은 여성과 혼인한 남성들이 도시에 나와 신문물을 접하고, 근대식 교육을 받은 뒤 자신의 부인을 ‘나이 많은 구식 여성’으로 여기며 인연을 끊다시피 한 사례는 아주 많다. 그들은 당시만 해도 용인되었던 처첩제(妻妾制)에 따라 별 갈등 없이 도시의 신여성들과 연애하고 중혼(重婚)을 했는데, 이는 남성보다 구여성, 신여성 할 것 없이 여성에게 더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우리는 흔히 남녀 간의 연애와 결혼을 유사 이래 으레 있어온 자연의 질서로 여긴다. 수많은 역사학자, 사회학자, 여성학자들의 작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남녀 간의 연애와 결혼을 틀지어온 양상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의미다.

    나는 앞서 내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의 연상연하 커플링이 제국주의 지배와 ‘대잇기’라는 맥락에서 틀지어졌다고 볼 수 있음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지금의 ‘연상연하’가 하나의 독특한 현상으로 이해되는 이유는 내 어머니 아버지 세대의 커플링 양태와 직접적으로 대비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그들 세대에서 적지 않은 수의 ‘연상연하’ 짝짓기에 대해 발설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서 어머니 아버지 세대의 커플링이 일반적이고, 나아가 보편적인 짝짓기 양태로 인정받아왔기 때문이다.

    쿠거족 열풍

    일일드라마 ‘밥줘’와 ‘두 아내’주인공은 남편에게 버림받지만 연하남과 연애하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

    여자와 남자의 ‘나이’

    6·25전쟁을 전후로 태어난 지금의 50, 60대는 남성의 경우 1960년대부터 본격화한 산업화의 역군으로서, 여성의 경우 산업화의 역군을 내조하고 미래의 산업 노동자들을 기르는 가정주부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은 세대다. 바로 가족을 부양하는 남성, 가족 내 재생산을 담당하는 여성, 자녀들로 이루어진 근대적 가족이 가장 바람직한 친밀성의 결사체로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남성의 ‘능력’, 남성과 아이들을 잘 뒷바라지할 수 있는 여성의 ‘자질’이 결혼할 만한 남성과 여성의 ‘매력’으로 부상한다.

    그러니까 드라마에서 지겹도록 되풀이하는, 자식들의 연애 상대에 대한 부모 세대의 반대는 이 공식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다. 부모 세대의 반대는 ‘그 남자가 너를 먹여 살릴 만한 능력이 있느냐/그 여자가 너를 조신하게 내조할 만한 성품이냐’하는 의구심으로 요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쿠거족 열풍
    여기에다 대고 ‘요새는 여자도 일한다/요새 여자들은 다르다’는 대답을 한다면, 십중팔구 세상을 잘 모르는 철부지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부모를 세상을 잘 모르는 뒷방 늙은이로 여기기도 어렵다. 그들의 이러한 인식에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결혼은, 그리고 결혼으로 맺어져 이루어진 가족은 사회안전망이 부재하다시피 한 우리 사회에서 유일한 경제적 안전망이요, 나아가 감정의 결사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50·60대 부모 세대에게 연애란, 바람직한 한 번의 결혼을 위한 조건 따져보기나 다름없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사랑과 조건을 양립시킬 수 없다고 본, 유난히 더 비정한 세대인 것은 아니다. 결혼을 위한 조건을 따져보는 과정에서 눈빛을 주고받고, 마음을 키우고, 사랑하는 감정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핵심은 조건이냐, 사랑이냐가 아니라 연애와 결혼의 관계다.

    이 당시만 해도 연애는 철저히 최종적으로는 결혼을 염두에 둔 유희였다. 물론 더 깊이 들어가면 결혼은 남녀가 하는 것이지만, 그 의미는 달랐다. 예컨대 남성의 ‘돈 버는 능력’과 여성의 ‘재생산 자질’이 교환되어 결합하는 결혼에서, 여성의 성적 순결은 교환가능한 사물로 여겨졌다. 몸 한번 잘못 굴렸다가(! ) 인생 망치는 여자 이야기가 이 세대 머릿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것은 이 때문이다.

    ‘부양 가능한’ 남자의 능력은 대략 집안 배경, 교육 정도, 나이에 따라 결정됐다. 교육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오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어느 정도 돈을 모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남자와 상대적으로 교육 정도와 사회생활 경험이 중요하지 않은 여자의 결합에서 나이 차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이에 더하여 나이 차이로 인한 경험의 차이는 부부 사이에서 남성의 상대적 권력/여성의 상대적 무권력을 정당화한다. 남성과 여성에게 나이가 갖는 의미는 다르다. 남성의 나이는 경험이고 연륜이며 자원일 수 있지만, 여성에게 나이는 선택당할 수 있는 가능성의 축소를 의미할 뿐이다. 그녀의 경험과 연륜은 남성의 그것에 비해 자원이 되기 어렵다. 여성에게는 오히려 어린 나이가 자원이 된다.

    나이 많은 남성과 나이 어린 여성의 결합은 별도의 명명을 필요로 하는 현상이 되지 않는다. 있다면 ‘원조교제’ 정도일 텐데, 그마저 나이 어린 여성들의 ‘자발성’ 운운하며 문제를 비껴가려 하는 듯하다. 솔직히 말해 유명 남성 인사들이 방송에 나와 결혼 당시 자신보다 한참 어린 부인을 거의 강간하다시피 해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는 가슴 아픈(?) 사연을 무슨 대단한 사랑인 양 버젓이 자랑하는 우리 사회에서 권력 있는 남성과 권력 없는 여성의 결합은 극도로 낭만화된다. 반면 ‘연상연하’니 ‘쿠거족’이니 하는 명명은 남녀 간의 사귐에 있어 상대 남성보다 (겨우 몇 살 정도라도) 나이 많은 여성을 다소 특이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반영한다.

    연애 프로젝트 세대

    왜 아니겠는가. 모든 권력이 그러하듯 나이가 갖는 권력 또한 상대적이라면 연하인 남성과 연상인 여성의 결합은 여성의 나이가 갖는 의미에 어떤 변화가 오고 있음을 뜻할 터. 물론 아직 여성의 경험과 연륜이 남성의 그것과 동일하게 대우받고 있지 못하나 적어도 여성에게 직업이 결혼과 동시에 그만두어야 할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게 되었다. 이는 여성에게 직업이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며, 동시에 직업을 통해 쌓은 경험과 연륜, 네트워크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의미다. 남성에 비해 여전히 저임금을 받으며 일해야 하지만, 집안에서 내조할 수 있는 자질만으로 만족하기엔 여성 자신도 많이 변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상황과 연애와 결혼의 상관관계 변화가 동시에 관찰된다는 사실이다.

    단 한 번의 연애로 결혼에 이르는 예는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연애는 결혼으로 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그 관계만을 위한 계획과 실행, 그리고 이를 실천으로 옮길 의식적인 에너지가 필요한 일종의 ‘프로젝트’가 되고 있다. 이제 데이트 상대를 찾는 인터넷 사이트가 성황을 이루고, 개인이 직접 자신의 정보와 원하는 이상형을 인터넷에 공개해 데이트 상대를 찾을 수도 있으며, 인터넷 채팅을 통해 데이트 상대나 하룻밤 성관계 상대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연애 프로젝트’ 현상이라 명명한 바 있는데, 그렇다면 연애를 프로젝트화해서 기획, 관리, 통제하는 것이 일상화된 세대를 ‘연애 프로젝트 세대’라고 명명할 수도 있겠다.

    또한 ‘연애 프로젝트’ 세대에게 결혼 전 성관계는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성(性)은 상품을 통한 선물 교환과 더불어 현재의 관계가 두 당사자에게 의미하는 정도를 가리키는 일종의 이벤트로서 연애 프로젝트의 한 단계가 되었다. 그리하여 성 경험은 여성에게 결혼 전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는 죄책감이라는 감정의 맥락에서, 그 경험이 자신에게 좋았는지, 별로였는지를 묻는 자아 존중이라는 감정의 맥락으로 이동했다. 바야흐로 성을 통해 자아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고, 자신이 원하는 자아를 규정하고 훈련하는 상황이 열린 것이다.

    쿠거족 열풍

    30대 싱글 직장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 주인공 은수는 연하 꽃미남 태오와 사랑한다.

    요즈음의 트렌디 드라마를 보면 젊은이들의 사랑과 연애, 성에 관한 묘사는 서구나 일본 드라마들과 별다를 바 없어 보인다.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배우들이 연애 관계에서 성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역할을 무리 없이 소화한다. 방송가 에피소드를 소소하게 그린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극중 남녀 주인공들은 연애를 시작하자마자 동거에 들어가지만, 이런 과정이 그저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는 한술 더 떠 여주인공이 일곱 살 연하의 남성과 원나잇스탠드(하룻밤 성관계)를 가진 뒤 동거에 들어가고 헤어지는 과정이 연애의 에피소드로 나온다. 그녀들이 모두 직업을 가지고 있고, 직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음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는 점이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여자친구들과의 우정이 비중있는 상황으로 설정되는 것도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다.

    한마디로, 경제력을 갖게 된 여성이 연애와 결혼에서 자신의 협상력과 통제력을 발휘하고 싶어하는 상황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품위 있는 고양이

    게다가 여러 번의 연애 경험이 자연스러워지는 과정에서 연상 남성과 연하 여성의 틀은 다소간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사귀고 헤어지고, 또 사귀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어찌 상대방 나이가 많아야 한다, 적어야 한다는 조건을 철통같이 지킬 수 있겠는가. 여성 입장에서 보자면, 나이가 조금 많거나 비슷한 나이대의 괜찮은 남자들은 빨리빨리 임자를 찾게 마련이고, (왜 그런 말도 있잖은가. 괜찮은 남자들은 다 짝이 있거나 게이라고) 그러다 보면 내 나이 들게 마련이고, 또 그러다 보면 맘에 차는 남자는 좀 어린 남자이게 마련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 친구 A가 겪어온 과정이다.

    그런데 사실 말이다, 요약하자면 ‘연애와 결혼의 문화사’쯤 될 이야기를 아는 대로 읊긴 했는데, 나이 어린 남자와 나이 든 여자의 연애가 도대체 사회적으로 어떤 이야깃거리가 되기에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종류의 글까지 쓰고 있는 것일까? ‘쿠거(Cougar)’가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고양잇과의 동물이라는데, 연하의 남성 연상의 여성을 먹잇감과 그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일종의 고양이에 비유하는 이 명명의 성 정치학에 대해서는 따로 지면이 필요할 터이다.

    그에 대한 대단치 않은 설명을 여기서 한 줄로 요약하자면 내가 아는 한 고양이는 먹잇감에 대해서는 잡힐 때까지 찾아 헤맬지 몰라도, (어디 고양이만 그렇겠는가. 삶을 영위해야 하는 모든 피조물의 운명일 뿐) 관계에 대해서는 상대방과의 거리를 확보하고 서서히 친밀해지는, 대단히 품위 있는 자기중심성을 고수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연하의 남성은 먹잇감이 아니라 그녀가 원하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상대방, 바로 그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내 얘기도 여기까지다. 팔십이 넘은 나이에 스무 살 이상 어린 남성과 연인 관계를 유지하며, 그에게 마지막 책을 남긴 프랑스의 작가 뒤라스의 예도 있잖은가. 수상한 것은 그들의 나이 차이가 아니라 그들의 나이 차이를 수상하게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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