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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시네마 테라피 ⑨

국가대표급 낙오자들이 선사하는 웃음과 눈물

  • 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국가대표급 낙오자들이 선사하는 웃음과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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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급  낙오자들이 선사하는 웃음과 눈물

2001년 개봉 영화 ‘파이란’은 한국 영화에서 낙오자가 의미 있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 최초의 작품이다.

우리는 한국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루저로 ‘파이란’의 강재를 기억하고 있다. 강재는 아침에 눈을 떠서 개수대에 소변을 눌 정도로 ‘개념이 없는’ 인물이다. 일을 할 생각도 그렇다고 사기라도 쳐 큰돈을 벌 생각도 없이, 그러니까 아무런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물인 셈이다. 그러던 그가 무심코 받아들였던 서류상 아내 ‘파이란’의 편지를 통해 새사람으로 거듭난다. 거듭나는 순간은 강재의 긴 울음으로 묘사된다. 관객은 그렇게 길게 꺼이꺼이 우는 낙오자 강재를 보면서 시시하게 흘러가는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강재로 대표되는 낙오자들의 삶은 그렇게 우리에게 눈물을 주었다. 떠도는 낙오자들로 살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불평등한 삶을 생각하게 한 영화들도 있다. 사회적 소수자, 가난한 약자들의 삶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범한 삶이 실상 혜택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다.

낙오자들이 주는 소소한 웃음

그런데 지금, 최근의 한국 영화들은 루저들을 등장시켜 소소한 웃음을 주고 눈물 어린 감동을 준다. 감동의 질감은 ‘강재’들이 주었던 그 눈물과는 다르다. 최근의 영화들 속에 등장하는 낙오자들이 주는 눈물은 좀 더 가볍고 또 시원하다. 관객은 얼굴에 검댕칠을 하고 있던 소녀가 역사(力士)로 성공해 올림픽 무대에 설 때, 그리고 바보라고 불리던 아이가 스키점프대 위에 섰을 때, 마치 자신의 구질구질한 삶과 결별하는 것 같은 쾌감을 느낀다. 웃음과 눈물 끝에 선수들이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관객에게도 전이되는 셈이다. 최고의 승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분명 어제의 낙오자는 아니다. 관객은 이렇게 달라진 모습을 통해 위안을 얻는다.

어딘지 모자라고 부족한 낙오자 주인공들은 관객을 무장해제시킨다. 그들은 우리보다도 열등해 보인다. 나보다 나을 것 없는, 열등한 낙오자들이 시간이 지나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낸다. 그들을 멋지게 만들어준 것은 재력도 그렇다고 대단한 재능도 아니다. 단지 진심과 시간이 소용되었을 뿐. 사람들은 진심과 시간에 대한 응답으로 멋진 모습을 얻은 그들을 보며 세상에 공평한 대가가 지급되었다고 느낀다. 문제는 세상사라는 것이 결코 뿌린 만큼의 대가를 공평무사하게 되돌려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영화 속에서만큼은 낙오자들이 무엇인가 하나씩 소중한 것을 찾아 다른 존재로 거듭난다. 낙오자라고 할지라도, 부족하고 열등한 인간들일지라도 시간과 정성이 있다면 아니 ‘진심’이 있다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조금의 기대감과 가능성을 선사하는 것이다.

국가대표급  낙오자들이 선사하는 웃음과 눈물
강유정



1975년 서울 출생

고려대 국어교육과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국문학)

동아일보 신춘문예 입선(영화평론),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문학평론),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문학평론)

現 고려대·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우리는 그 기대 속에서 유쾌한 웃음과 건강한 눈물의 절대 배합을 맛본다. 평범한 삶 속에도 보답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열등한 인물들을 통해 전달되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평범한 주인공들이 등장한 소소한 이야기를 본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바라는 가장 작지만 어려운 기대, 노력하면 뭔가가 이루어진다는 바람이 이 영화들 속에서 실현되기 때문이다.

신동아 200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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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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