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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민의 리걸 에세이

방청석에서 바라본 재판

  • 정재민 |전 판사·소설가

방청석에서 바라본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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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신문권

방청석에서 바라본 재판

영화 ‘변호인’에서 고문으로 죄를 뒤집어쓴 아들의 재판을 방청석에서 애타게 지켜보는 돼지국밥집 아지매(김영애 분). [동아 DB]

비법률가인 증인으로서는 본의 아니게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정직하게 대답하고 싶지 않아서, 혹시나 자신에게 불이익이 있을까봐서 일부러 동문서답하는 증인도 있다. 사실을 물었는데 의견이나 감정만 끝없이 늘어놓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재판장, 검사, 변호사가 성정을 누르고 증인에게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세요!”라거나 “간단히 사실만 이야기하세요”라며 면박을 주는 경우가 바로 이 지점이다.

검사가 부른 증인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면 변호사가 반대신문을 하면서 그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한다. 그 진술이 추측에 불과하지 않으냐, 직접 봤느냐, 그렇게 진술해야 증인에게 실리적으로 이로운 어떤 사정이 있지 않으냐는 식으로 따져 묻는 것이다. 이렇게 반대신문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반대신문권이라 한다. 이미 진술서나 진술조서를 작성해서 할 말을 다 한 증인을 굳이 법정에 다시 불러내서 똑같은 질문을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바로 이 반대신문권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다.

반대신문권이 보장되지 않은 증거는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증거능력이 없다. 재판의 근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뜻이다. 반대신문권이 보장되지 않은 조서와 같은 증거는 일방적인 편집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 “조서를 꾸민다”는 표현이 있었던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증인신문 절차에서는 다양한 돌발적 상황이 생겨난다. 신문을 하는 사람과 증인이 목소리 높여 싸우기도 하고 증인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거나 심지어 졸도하는 경우도 있다. 어투나 사투리가 문제 될 때도 있다. 지방에서 일할 때 변호인과 증인 모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변호인이 이렇게 묻는다. “증인, 그날 A가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고 딴 사람을 따라갔다, 그자?” “그래가 증인도 덩달아 따라갔다, 그자?” “그런데 나가보니까 어데 갔는지 안 보이더라, 그자?” 그러자 서울 출신의 판사가 “그자가 누구입니까?”라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법정에 증인으로라도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판사를 했던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범죄 피해자가 법정에 나가서 자신이 당한 일을 진술하는 것은 얼마나 더 싫겠는가. 그때의 경험을 고스란히 다시 떠올려야 한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라면 더더욱 힘들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피고인을 법정에서 퇴정시키고 신문하기도 한다. 아니면 피고인 자리와 증인석 사이에 병풍을 쳐서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하고 신문할 때도 있다.



내 입장에서 가장 난감한 증인신문은 이혼소송에서 어린 자녀를 대상으로 할 때였다. 증인석에 선 자녀는 자신의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잘못을 증언한다. 양육자를 지정해야 하므로 아버지와 어머니 중에서 누가 자신의 양육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사표현을 하기도 한다. 판사가 직접 물어봐야 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상처받기 쉬운 어린아이들에게 엄숙한 법복을 입은 판사가 “엄마랑 살고 싶어, 아빠랑 살고 싶어?” 이렇게 대놓고 물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방청석에서 바라본 재판

정재민

●서울대 법대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사법연수원 수료(32기)
●前 판사, 舊유고유엔국제 형사재판소(ICTY) 재판연구관, 외교부 영토법률자문관
● 세계문학상, 매일신문 포항국제동해문학상 수상
● 저서 : ‘보헤미안랩소디’ ‘국제법과 함께 읽는 독도현대사’ ‘소설 이사부’ ‘독도 인 더 헤이그’





신동아 201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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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민 |전 판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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