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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기자의 Face to Face ⑩

‘밀리언셀러’ 신경숙 영혼의 고백

“사랑은 불편한 현실에서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밀리언셀러’ 신경숙 영혼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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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셀러’ 신경숙  영혼의 고백
10년 전에 완성된 문장

그대는 언제부터 엄마의 얘기를 쓰려고 맘먹었던가. 열여섯 살 때였던가. 그대는 고향(전북 정읍)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1년간 집에서 쉬고 있었다. 그해 6월 엄마와 함께 서울로 올라갔다. 고등학교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서울에 도착한 날 밤 내 앞에 앉아 꼬박꼬박 조는 엄마를 바라보는 순간 이 작품이 잉태된 거예요. 집필은 1년 동안에 이뤄졌지만 내 마음 안에서는 오랫동안 쓰였다 지워졌다 했지요. 4장의 마지막에 엄마가 자기를 낳아준 엄마의 무릎에 누워 말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그 마지막 문장이….”

기자가 끼어든다. “‘나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아닌가요?”

“맞아요.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이 문장은 10년 전에 제 마음 안에서 완성된 것이에요. 열대여섯 살 때 생각한 엄마와 나이 들면서 생각하는 엄마가 달랐지요. 내 마음속 엄마가 자꾸 바뀌면서 여러 차례 갈등을 겪는 바람에 뒤늦게 작품을 쓰게 됐어요.”



기자가 슬쩍 ‘아버지’ 얘기를 꺼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한국 남성의 전형으로 그린 것이냐고. 가부장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허허롭고 무심하고…. 그대는 “우리 시대에는 그런 아버지 모습이 보편적이었다”고 말한다. 항상 (엄마와) 나란히 걷지 않고 마음은 어떤지 모르지만 사랑이나 따뜻한 감정을 표현하는 법이 없고….

“엄마를 영원히 그 자리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더 무심한 건지 모르지요. 아버지도 많은 풍파를 겪으며 한 시대를 통과해온 존재잖아요. 시대 분위기가 낳은, 장점과 결점이 다 있는 보편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소설 속 아버지가 참 좋아요. 솔직한 모습이죠. 누구를 억압하는 아버지는 아니잖아요. 방랑기가 있어 집에만 있을 수 없었던 아버지가 보여준 최상의 모습이라고 봐요, 나는.”

기자는 뜻밖이라는 듯 다시 질문한다. 여성으로서 밖으로 나돈 아버지가 이해된다는 건가. “그렇다”고 그대는 거듭 말한다. 그대의 발언은 어쩌면 가정에 대해 근원적인 죄책감과 중압감을 가진 상당수 남성에게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 기자는 내색하지 않고 다른 얘기로 넘어간다.

작품에서 엄마의 비밀은 엄마의 존재를 한층 실존적으로 부각시킨다. 엄마의 비밀은 다름 아닌 다른 남자와의 만남이다. 외도는 아니지만, 오랜 세월 쌓인 정이 두텁다. 엄마는 그 남자와 깊이 교감하고 소통한다. 아버지에게선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다. 마음으로는 서로 사랑하는 관계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장면이 삽입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가 한결 높아졌다는 게 기자의 판단이다. 평범한 소재와 줄거리가 단단해졌다고. 그 장면을 굳이 넣은 이유가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대는 웃음을 보이면서, 그러나 정색해 말한다.

“굳이 넣은 게 아니고요. 그 장면이 저에게는 매우 중요했어요. 작품을 시작할 때부터 제 마음속에 있었던 장면이에요. 왜냐. 우리는, 마치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사람인 줄 알잖아요. 이름도 없고. (작품에서) 엄마 이름을 ‘박소녀’라고 지은 것도 일부러 그런 거예요. 엄마로만 인식되면서 제거돼버린 여성, 엄마이기 이전에 한 인간인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있잖아요. 엄마가 돼서 왜 그래. 이런 말들 때문에 가려진 엄마의 욕망이나 꿈을 보일 수 있도록 한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엄마를 다 아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 엄마도 우리가 모르는 비밀을 가진 존재라는 것,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여기서 기자와 그대의 대화를 순서대로 옮겨보자.

“저는 그 대목에서 전율을 느꼈어요.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비밀을 갖고 있다는 거지요. 부모 자식 간에도, 부부 간에도.”

“그렇죠. 그리고 엄마가 나만 위로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엄마도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 그런 소통과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한다는 것, 내가 그렇듯이 엄마도 그렇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아버지의 외도―작가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나타나는데―를 물타기하는 장면이 아닌가 싶어요.”

“(웃음) 아니, 물타기가 뭐예요? 그리고 그게 무슨 외도예요? 사랑이지요. 사랑이고 꿈이고 삶이죠. 우리가 꿈꾸고 욕망하는 것을 엄마한테도 부여한 거지요.”

엄마에게도 비밀이 있다

아버지의 외도는, 1993년에 출간된 그대의 단편집 ‘풍금이 있던 자리’에 포함된 같은 이름의 작품에서도 중요한 소재였다. 아버지가 집에 들인 새 여자의 캐릭터와 자식들 간의 묘한 갈등관계가 ‘엄마를 부탁해’와 꼭 닮았다. 기자가 이를 지적하자 그대는 “그런가” 하고 만다.

“작가의 시선이 아버지의 외도를 비난하는 것 같지는 않네요.”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겠어요?”

“자식들에게 외도를 하는 아버지는 비난의 대상 아닌가요?”

“그래서 비난하나요, 그 자식들이? 나는 그렇게 간단하게 해석될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그 속에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상황이 개입되어 있을 거라고 보지요.”

“‘풍금이 있던 자리’에 나오는 그 여자(아버지의 새 여자)에 대해서도 거부감보다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는 것 같던데요.”

“엄마와 그 여자에게 각각 다른 의미를 부여한 거예요. 엄마에게는 생존을 위해 노동하는 삶을, 그 여자에게는 엄마가 노동을 하면서 잃어버린 여성성을 부여한 거지요. 아름다움의 개념이랄까요. 두 개가 하나가 돼야 (참된 여성이) 완성되는 거죠. 둘 다 여성의 내면에 들어있는 것인데, 각각 볼 수 있게 분리해놓은 거예요. 그 여자도 엄마가 될 가능성이 있고 엄마도 그 여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 거지요. 서로에게 거울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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