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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괴짜들 ④

“변호사 출신 꼬리표 떼고 남우주연상 한번 받고 싶다”

배우로 불리고 싶은 사나이 홍승기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변호사 출신 꼬리표 떼고 남우주연상 한번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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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선택

▼ 연기는 어떻게 다시 시작했습니까.

“계속 방법을 모색했지요. 그러다 사법연수원 수료 무렵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라는 영화의 배우 모집 광고를 봤어요. 아역 시절 경력부터 현재 사법연수원생이라는 사실까지 다 적어서 이력서를 내고 오디션도 봤는데 떨어졌어요. 알고 보니 제작사 쪽에서 그 역할에 신인은 안 된다고 제동을 걸었다더군요. 결국 그 영화에는 못 들어갔는데, 당시 연출을 맡았던 이석기 감독이 다음 영화를 찍으면서 저를 불렀습니다.”

이혜영, 손창민 주연의 미국 올로케이션 영화 ‘아주 특별한 변신’(1994)이었다. 감독은 단발머리에 한 쪽 귀에만 귀고리를 한 채 건들거리는 날건달 강간범 역을 제안했다.

▼ 보수적인 법조계 분위기에서 변호사가 강간범 연기를 하는 건 정말 파격적인 일이었겠습니다.



“제가 영화계를 기웃거리는 것만으로도 말이 나오던 시절이니까 조심스러웠지요. 그 역을 하면 변협 내부에서 징계 얘기가 나올 것 같았어요. 결국 사흘을 고민하다 감독님께 ‘인생이 너무 소란해질 듯해 못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대신 주인공 손창민의 선배 변호사 역을 맡았지요. 평생 할 연기니까 조심스럽게 출발하자는 생각이었는데, 그게 잘못이었어요.”

▼ 영화 크레디트에 세 번째로 이름이 올라가는, 꽤 비중 있는 역할이던데요.

“하지만 변호사가 변호사 역을 하니, 연기라기보다 무슨 특별출연같이 된 거예요. 여름, 겨울 내내 미국서 촬영하느라 갖은 고생을 다 했는데 영화판 얼쩡대는 변호사가 있다는 소문만 나고, 제대로 된 연기력은 인정도 못 받고….”

그는 이때 밋밋한 배역을 선택한 걸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한다. 이 감독도 지금까지 그를 볼 때마다 “그때 강간범 역을 했어야 영화가 살고 너도 살았다”고 말한다.

▼ 그래도 이후 제법 많은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습니까.

“감독들이 제 연기를 신뢰하지 않으니까 단역만 줬지요. 이듬해 정지우 감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안기부장 역할을 했고, ‘축제’‘하류인생’ 같은 임권택 감독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대표작이라고 꼽을 만한 것이 없어요. ”

“변호사 출신 꼬리표 떼고 남우주연상 한번 받고 싶다”

2003년 공연한 연극 ‘아트’는 홍승기에게 ‘진짜 배우’의 짜릿함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 사실 ‘취화선’에 출연했다는 말씀 듣고 그 영화를 다시 봤는데 어디 나오시는지 못 찾겠더군요.

“장승업(최민식)한테 연회를 베풀어주는 역관이 저였는데, 이렇게 얘기 듣고 봐도 못 찾을 겁니다. 그 영화하면서 나름대로 연기 실험을 했어요. 우리나라 사극의 전형적인 톤말고 좀 일상적인 톤으로 대사를 치고 싶었죠. 그런데 초짜가 원칙을 깨려니 잘 안 되는 겁니다. 나중에 영화를 보니 제가 대사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다른 데로 돌아가고, 목소리는 다른 사람이 더빙했더군요. 저는 그냥 사라진 거죠. ‘하류인생’에도 아주 짧게 나와요. 극장가서 본 친구가 ‘졸다가 네 목소리 나와서 눈떴더니 벌써 없더라’ 합디다.”

대신 변호사로는 ‘잘나갔다’. 지금 그는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장이고, 서울문화재단 방송작가협회 등 예술단체와 SBS프러덕션 JYP PMC 등 100여 개 제작사의 법률자문을 담당한다.

“지금 변호사님 연기하시는 걸 보면, 유명 인사의 카메오 출연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고 하자 그가 정색을 했다.

“아니요. 완전히 다르죠. 저는 유명세만 믿고 가볍게 출연하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배우입니다. 배역이 작을 뿐이에요.”

그는 영화 ‘축제’를 찍을 때 얘기를 꺼냈다. 준섭(안성기)의 친구 네 명 가운데 한 명 역할을 맡아 지방에서 3주간 여관 생활을 하며 촬영했다고 한다. 상갓집에서 고스톱 칠 때 뒤에 걸리는 식으로 단체 장면에 많이 나왔다.

“그 덕에 원로배우들과 얘기 많이 하고, 조연 단역들과 어울려 다니고…. 진짜 영화인처럼 살았습니다.”

진짜 배우

2002년 촬영한 저예산 영화 ‘비디오를 보는 남자’도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그는 영화의 주된 공간인 비디오가게 문을 열고 매일 “소주 사먹게 삼백 원만 주세요”라는 대사를 반복하는 거지 역을 맡았다.

“영화사에서 저를 위해 촬영 스케줄을 주말로 조정해줬어요. 촬영지가 강원도 원주라, 주말만 되면 새벽 2시에 집을 나섰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일정을 반복했지요. 눈길, 새벽 안개길 가리지 않고 운전하며 찍은 영화라 유난히 기억에 남습니다.”

▼ 그렇게 연기가 좋으면, 아예 전업 연기자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여전히 어린 시절처럼 허황돼서 그렇겠죠. 누가 저한테 ‘마음은 영화판에, 변호사는 개점휴업’이라고 그러대요. 연기에 훨씬 마음을 두고 사는 건 사실이지만, 변호사로서의 삶도 소중합니다. 문화예술 분야 전문 변호사로 경력을 쌓고, 그쪽 일을 돕는 것도 보람 있어요. 할 수만 있다면 배우와 변호사의 삶을 균형 있게, 평생토록 유지하고 싶지요. 연극 ‘아트’를 할 때는 이 오랜 꿈을 이룬 것 같아 짜릿했어요.”

그는 2003년 배우 백종학, 박희순과 함께 연극 ‘아트’의 주연을 맡아 무대에 섰다. 작품의 첫 장면부터 끝 장면까지 등장하는, 명실상부한 주인공이었다. 오전 6시에 변호사 사무실에 출근해 일을 본 뒤 오후엔 연습, 밤에는 공연을 했다. 새벽엔 다시 연습, 그리고 출근이었다. 하루 2~3시간도 못 자는 날이 연거푸 이어졌지만 피곤한 줄 몰랐다.

“연기를 하다 가끔씩 ‘이 대사는 나밖에 이렇게 못 쳐’하고 느끼는 순간이 있어요. 정말 황홀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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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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