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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기자의 Face to Face ⑪

‘Mini Bottle Collector’ 서울대 의대 김원곤 교수

“자신의 한계를 알고 환자를 스승으로 여기는 의사가 명의”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Mini Bottle Collector’ 서울대 의대 김원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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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힘, 인생의 힘”

김 교수가 자신의 주도로 수술을 한 것은 교수가 된 1986년부터다. 그간 수많은 수술을 했다. 가슴 아픈 사연도 많았다. 그는 의술은 인술(仁術)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환자가 의사의 가장 큰 스승이죠. 과거엔 환자를 병으로만 대했습니다. 흉부외과의 경우 워낙 환자의 병이 무겁고 바쁘기 때문에 더욱 그랬죠. 많은 의사가 병 고치는 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젊은 시절엔 병만 고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다릅니다. 병을 떠나 환자의 내면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외래를 볼 때도 어떻게 지냈는지,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물어봅니다. 그러면 환자가 사적인 이야기도 하고 직업 얘기도 합니다. 요즘은 환자와의 관계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인상 깊었던 수술사례를 말해달라고 하자 정맥류 환자 얘기를 꺼냈다. 60대 여성인 이 환자는 정맥류가 심해 다리에 새끼를 두른 것처럼 혈관이 울퉁불퉁 불거져 나왔다. 게다가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남편이 옆에서 ‘통역’을 해줘야 했다. 정맥류를 앓은 지 오래됐으나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아 수술시기를 마냥 늦춰온 환자였다.

환자의 의식이 깨어 있는 국소마취 수술을 하는 경우 의사는 환자에게 그때그때 상황을 말해준다. 지금 마취주사를 놓습니다, 조금 따끔합니다…. 그런데 이 환자는 귀가 잘 안 들리는 환자가 아니던가.



“수술조수에게 종이를 준비하라고 말했습니다. 수술진행 상황을 글로 적어 환자에게 보이도록 한 거죠. 나중에 수술조수가 말하기를, 환자가 수술을 받으면서 눈물을 흘리더라는 겁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 나도 고맙더군요. 내 노력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또 하나 놀랐던 건, 나는 그 환자가 미적인 데는 전혀 관심 없을 줄 알았어요. 그토록 오랫동안 고통을 느끼면서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참아왔으니. 그런데 수술이 끝나자 환자가 수술대에서 일어나면서―그때 수술장에 있던 사람들이 다 즐겁게 웃었습니다―큰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이제 치마를 입을 수 있겠죠?’ 이 환자는 치마를 입는 게 소원이었던 겁니다. 그때 다시 한 번 느꼈죠. 아, 환자를 병으로만 치료할 게 아니구나. 요즘 저는 지나칠 정도로 환자와 대화를 많이 합니다. 간호사가 뭐라고 해요. 너무 잘해주면 환자가 고마움을 모른다, 너무 잘해줘도 곤란하다고. 하지만 저는 잘해주고 싶어요.”

그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세월의 힘이고 인생의 힘”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세월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 용서심도 커지고 이해심도 많아진다고 하잖아요. 그런 게 맞물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병 플러스 알파가 있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병 치료보다 중요한 건 인간관계

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를 강조한 그가 기억 속에서 오래된 사건 하나를 끄집어냈다. 17~18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다.

“서너 살짜리 아기였어요. 심장수술을 받았는데 이후 수술 부위가 감염돼버렸습니다. 몸 상태가 계속 안 좋아졌죠. 악순환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가 없어요. 몇 달간 계속 나쁜 코스로 치달았습니다. 결국 결과가 안 좋았죠. 사실 감염은 누구 잘못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30대였어요. 아빠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것 같고. 몇 달 동안 아이 돌보느라 생활도 내팽개치고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아이가 죽고 난 후 저한테 찾아와 고마움을 표시하더라고요. 그들을 붙잡고 함께 울었습니다.”

그의 눈가가 젖어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티슈가 놓인 탁자 쪽으로 가서 안경을 올리고 티슈로 눈가를 닦았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윽고 가슴 깊은 곳에서 간신히 기어 나오는 듯한 목멘 소리로 얘기를 마무리했다.

“애도 안됐고, 부모도 안됐고…. 그래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흉부외과에는 워낙 위험한 환자가 많습니다. 결과가 그렇게 됐는데도 원망하지 않고 고맙다고 하니…. 의사가 병으로만 치료해서는 안 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죠.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치료하는 동안 부모와 많은 대화를 나눴거든요. 그들은 그 애가 가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얘기했고 저는 의료진이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설명했습니다. 정말 고마운 일이었죠.”

심장수술 후 감염으로 사망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상존한다. 그 가능성이 0.1%라 해도 당사자에게는 100%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감염에 따른 사망사고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가 든 사례는 의사와 보호자가 마음이 잘 통한 경우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다. 수술받은 환자의 사망은 종종 의료분쟁의 대상이 된다.

“나는 아직까지 심각한 분쟁을 겪은 적은 없습니다. 거친 항의를 받은 적은 몇 번 있지만 물리적 폭력을 당해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동료의사들이 그런 일을 당하는 건 더러 목격했지요. 칼, 심지어 엽총으로 위협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요즘은 그런 물리적 폭력 행사보다는 재판으로 가는 경우가 많지요. 수술이 위험할수록 의료분쟁의 소지가 커집니다. 수술은 다 힘들지만 과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성형외과 수술을 받다 죽으면 대체로 의료진 과실 탓입니다. 하지만 흉부외과의 경우 의료진 과실 외에도 변수가 많습니다. 핵심 장기를 다루기 때문이죠. 심장수술은 ‘safety margin(安全域)’이 작아요. 다른 장기는 재수술이나 재조정이 가능하지만, 흉부외과 수술은 조금만 잘못돼도 치명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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