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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관광통역안내사의 그늘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못하는 ‘관광 한국’의 얼굴

“하루 10시간 뼈 빠지게 일해도 일당 1만2000원, 사고라도 당하면 쫓겨나는 신세”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못하는 ‘관광 한국’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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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 관광에 2만6000원

가이드 경력 7년차 D씨는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치열하게 물건을 팔아야 한다”고 했다. 중국 관광객 전문 프리랜서로 일하는 그의 안내수당은 맡는 팀의 인원수에 따라 달라진다. 관광객 한 명당 30위안. 현재 환율로 따지면 4800원쯤이 가이드 팁으로 배정된다. 10명 단체를 받으면 4만8000원이다. 이 가운데 3분의 1은 중국에서 한국까지 손님을 데려오는 TC(tour conductor)의 몫. 기사팁은 하루 2만원으로 고정돼 있다. 하루 종일 10명의 관광객과 씨름하면 1만2000원을 받는 셈이다.

“패키지 투어를 해본 분은 아시겠지만 일정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계속되잖아요. 이 돈은 손님들 호텔에 모셔드리고 집까지 택시 타고 가기에도 부족한 액수죠. 여행사라고 그 사실을 모르겠어요? 결국 이 돈 주는 건 ‘어떻게든 쇼핑, 옵션을 창출해라. 너 먹고살 돈은 스스로 벌어라’라는 메시지인 겁니다.”

실제로 각 여행사가 산출하는 여행상품원가 구성항목에는 관광통역안내사 임금이 아예 빠져 있다. 여행상품 가격을 어떻게든 낮추고 보는, 고질적인 덤핑 판매 관행 때문이다. 안내사협회 강 사무국장에 따르면 일본 신주쿠나 오사카 대로에서 판매하는 한국 여행상품 가격은 보통 1만8000엔(23만6000원)에서 3만엔(39만3500원) 사이다. 2만엔짜리 상품이 팔리면 항공료와 일본 여행사 몫으로 1만8000엔이 나간다. 한국 여행사는 판매가의 10%에 불과한 2000엔(2만6000원)으로 2박3일 동안 관광객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관광도 시켜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적자를 메울 방법은 쇼핑·옵션 판매수수료밖에 없다.

“해외여행객은 동선 하나하나마다 수수료가 걸려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상당수가 외국 관광객을 자기 시·도로 데려오면 1명당 1만원 정도씩 수수료를 줍니다. 대형 면세점들도 관광객이 가게에 들어오기만 하면 여행사에 1만원 정도의 입점수수료를 줘요. 매출이 발생하면 그에 따라 별도의 판매수수료를 지급하지요. 여행사 입장에서는 아무리 덤핑 판매를 해도 관광객이 수수료 지급 업체를 하루에 몇 군데씩 방문해주기만 하면 상품의 기본 단가를 맞출 수 있게 됩니다.”



국제시장 빈대떡 집도 지정업소

4박5일간 관광객들이 비행기를 5번 타게 만드는 여행 상품은 이런 구조에서 탄생한다. 중국전문 가이드 E씨는 “비행기를 5번이나 타는 이유는 나흘 사이에 서울, 부산, 제주도를 다 둘러봐야 하기 때문”이라며 “수속을 기다리고 곳곳의 면세점에 다 들르면서 이분들이 한국의 어떤 모습을 기억하게 될지 솔직히 미지수”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입점수수료는 관광통역안내사에게 오지 않는다. 이들은 판매수수료 가운데 일정 비율을 받을 뿐이다. 면세품 가격의 3%, 비면세품 가격의 7%가 가이드 몫. 그래서 쇼핑 사이사이 남는 시간에는 옵션을 판매해야 한다. 역시 여행사와 수수료 계약을 맺은 업체를 이용한다. 난타 공연, 워커힐쇼, 땅굴 견학, 한국식 마사지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은 여행사와 가이드가 나눠 갖는다. B씨는 “일본인 관광객 한 명이 난타 공연을 보면 2만원 정도가 회사에 떨어진다. 가이드는 그 가운데 3000~5000원을 받는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관광통역안내사의 개성과 전문성은 발휘되기 어렵다. 여행사가 지정한 장소, 지정한 옵션을 최선을 다해 판매하기에도 힘이 부치기 때문이다. 여행사와 사전에 계약을 맺지 않은 장소로 여행객을 데려갔다가는 벌금 등 페널티를 받는다. 심지어 계약해지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사라진 ㄷ여행사에서 팀장으로 일하던 F씨는 2004년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았다. 팀원 가운데 한 명이 관광객을 회사에서 지정하지 않은 사우나로 안내한 게 화근이었다.

“마침 그날 폭설이 내려서 손님이 차를 타고 멀리 가야 하는 사우나는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대요. 호텔 주변에는 회사가 지정한 업소가 없었고요. 결국 이 가이드가 독자적으로 판단해 근처에 있는 사우나를 소개했는데 그게 문제가 된 거죠. 저는 그 회사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한 상태였기 때문에 후배를 지켜주겠다는 마음에 ‘제가 대신 책임을 지겠다’고 했어요. 결과는 해고였죠.”

F씨는 소송 끝에 복직했지만, 그때 받은 마음의 상처는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D씨는 “요즘엔 회사에서 프리랜서에게도 ‘지정업체를 안 가면 벌금 O만원’하는 식으로 업무지시서를 보낸다. 우리는 관광안내원이 아니라 회사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며 돈을 벌어다주는 ‘앵벌이’일 뿐”이라고 했다. A씨는 “부산 사격장 화재사건은 여행사가 가이드에게 특정 옵션을 강요하는 풍토에서 발생한 사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연 어떤 업체들이 여행사와 수수료 계약을 맺을지 생각해보세요. 여행사한테 돈 안 줘도 관광객이 알아서 찾아오는 곳은 굳이 그런 계약을 맺을 필요가 없거든요. 좋은 공연, 대형 면세점도 옵션에 들어가 있긴 하지만, 이번에 사고 난 사격장처럼 노후하고 위험한 곳도 적지 않아요. 고객이 사격장에 가길 원하면 가이드는 여행사가 가라는 곳으로 모셔가는 겁니다. 심지어 부산 국제시장의 빈대떡 집 중에도 지정업체가 있습니다. ‘이 집이 가장 맛있다’고 데리고 들어가면, 나중에 빈대떡 값 일부가 여행사로 송금되는 거예요.”

이제는 여행객들도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관광통역안내사의 한마디 한마디를 의심하고 ‘속지 않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경력 7년차 영어가이드 G씨는 “공항에 나가면 솔직히 손님 관상부터 본다는 가이드가 많다. 저 사람은 얼마짜리인가 속으로 따져보는 거다. 나는 여행객을 볼 때 그들의 눈부터 바라본다. 10명 중 7~8명의 눈에서 ‘너한테 안 속을 거야’라는 메시지를 읽을 때면 숨이 턱 막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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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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