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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시대의 클래식 캐릭터 ⑥

희대의 독학자들, 길 위에 방을 만들다

버지니아 울프와 황진이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희대의 독학자들, 길 위에 방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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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독학자들, 길 위에 방을 만들다

황진이의 뛰어난 예술적 성취는 현대의 예술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황진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국악밴드 공연.

아버지의 생일. 그는 오늘로 96세, 그렇지, 96세가 되셨을 것이다. … 그가 살아계셨더라면 나의 삶은 완전히 끝났을 것이다. 어떻게 되었을까? 어떤 글쓰기도, 어떤 책도… 상상할 수도 없다.

-아버지의 생일,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중에서

딸들에게 정규교육 기회를 주지 않은 보수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버지니아 울프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고든 스퀘어로 이사를 가고 거기서 블룸즈베리의 지식인들을 만난다. 그녀는 블룸즈베리의 자유롭고 활달한 분위기에 매혹됐으며, 이 모임을 통해 화려한 지적 성장의 계기를 마련한다. 지독한 애증의 뿌리였던 아버지의 죽음 이후, 평생의 지적 자양분을 얻은 셈이다. 울프는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떤 글도 출판하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녀가 ‘공적인’ 글쓰기를 시작한 출발점이 됐다. 아버지의 죽음과 고든 스퀘어로의 이사, 블룸즈베리 활동은 울프에게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서곡이 되었다. 황진이의 창작 에너지가 ‘교과서 없이, 스승 없이, 친구들과 함께 놀기’였다면 울프의 창작 에너지는 ‘아버지의 통제 없이, 남자 눈치 보지 않고, 오직 자기만의 방 갖기’에서 나온 셈이다.

그녀들의 고독은 ‘사람을 밀어내는’ 고독이 아니라 끊임없이 ‘내 마음에 맞는 친구나 스승을 찾기 위한’ 고독이었다. 대중에게 알려진 버지니아 울프의 전형적 이미지는 ‘자폐와 우울과 광기에 사로잡힌 천재 아티스트’지만 그녀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오히려 평생 동안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나고 적극적으로 사람을 찾아다니는 열정적 측면이 많이 발견된다. 버지니아 울프는 ‘지음(知音)’의 벗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예술가와 인연을 맺었다. 말년에는 프로이트와도 만났다. 그녀는 누구보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과 더불어 숨 쉬고 자 한 예술가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평범한 독자’의 창조적 읽기와 쓰기 능력에 대해 당시로서는 아주 획기적인 시각으로 분석했다. “나는 평범한 독자와 의견이 같을 때 즐겁다. 왜냐하면 난해함을 단련하고 학문을 교리화한 끝에 지니게 되는 문학적 편견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독자의 상식에 의해서 시적 영예에 대한 권리가 마침내 결정되기 때문이다.” 울프는 지식을 대중에게 나누어주거나 타인의 의견을 정정하기보다 자기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독서하는 사람, 즉 ‘평범한 독자’야말로 자신이 가장 교감하고 싶은 독자라고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의 눈은 감옥

버지니아 울프는 단지 예술과 대중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아니라 대중 그 자체에서 예술성의 근원적 추진력을 찾아내려 했다. 대중의 공감이라는 개념은 그녀에게 상업적인 요소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예술의 동력’이자 보편적이고 예술적인 공감의 원천이었다. 여기에 독자를 향한 아첨이나 미디어에 대한 눈치작전은 낄 틈이 없다. 권위나 전문성에 호소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열망과 열정으로 글을 읽는 독자들, 그들의 아마추어리즘이 지닌 순정한 열정이야말로 전문가나 권위자가 흉내 내기 어려운 집단적 재능임을 버지니아 울프는 일찍이 감지했다. 그녀는 선구적인 ‘독자반응비평’의 대가이기도 했던 것이다. 어떤 보상이나 인정도 바라지 않고 그저 독서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버지니아 울프의 창작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할 제 쉬어감이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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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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