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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의 북한 잠망경 ⑦

시장과의 힘 겨루기에 나선 북한, 최후의 승자는?

화폐개혁 막전막후, 2010년 1월 북한의 현주소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시장과의 힘 겨루기에 나선 북한, 최후의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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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당분간 화폐 발행권을 쥔 국가의 권한은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근로자들의 직장 복귀를 유도하기 위해 월급을 화폐개혁 이전 액수 그대로 새 화폐로 지급했다. 이 때문에 화폐개혁을 통해 주민 통제력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화폐개혁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이번 조치가 북한 경제의 숨통을 터줄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화폐개혁을 계획경제의 회복으로 성공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물자의 공급이라는 결정적 조건이 뒤따라야 한다.

북한 당국의 노림수는 주민들을 직장에 복귀시켜 상품을 생산하게 하고 이 상품을 다시 국가 유통망에 공급해 주민들이 구매하게 하는 사회주의식 경제 순환 시스템을 복구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근로자들이 직장에 출근해봤자 자재가 없어 일할 수가 없다. 북한이 공장 기업소에 자재를 얼마나 공급할 수 있을지가 결국 화폐개혁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생산 원자재 보장 문제뿐 아니라 장마당이 아닌 국가 유통망을 통해 물품을 어느 정도 유통시킬 수 있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그래야 돈이 장사꾼들의 주머니가 아닌 국가 은행을 거치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해 북한 당국은 화폐개혁 직전에 중국에서 엄청난 양의 물품을 들여와 국가 유통망을 통해 팔고 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중국에서 팔리지 않고 쌓여 있는 재고상품들이 원조 형식으로 북한에 들어간다는 주장도 있다.



장마당 ‘큰손’과의 정면승부

하지만 북한이 아무리 물품을 많이 들여와봤자 한계가 있다. 지금은 평양 몇몇 상점에 공급하기에도 버거운 수준이다. 그래서 북한 당국은 지방을 통제하기 위해 기존에 도매시장 구실을 했던 초대형 장마당들을 몇 달 안으로 폐쇄하고 여기서 유통되던 상품들을 국가 유통망을 통해 위탁 판매하도록 강제조치를 취하려 하고 있다.

화폐개혁 이후 기존 시장 세력과의 제2라운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화폐개혁으로 큰 타격을 입은 상인들은 국가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있다. 경험상 국가가 하라는 대로 해서 시장 세력이 득보는 일은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의 생계에 필요한 물품들을 장마당에 공급하던 시장의 일명 ‘큰손’들은 화폐개혁 이후 물품을 깔고 앉아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깔고 앉고 싶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화폐개혁 직후 워낙 물건 가격이 요동치기 때문에 적정 가격을 알 수 없어 지켜보는 이유가 더 크다. 또 시간이 가면 물건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타산이 있기 때문이다.

큰손들이 물품을 조달하지 않자 북한에서는 물품 품귀 사태가 발생하고 있으며 쌀이 제대로 유통되지 않아서 굶는 세대도 나오고 있다. 이를 의식해 당국은 주민들에게 일정한 양의 식량을 배급했지만 일회성에 그치고 말았다. 당국은 또 평양을 중심으로 미리 확보해두었던 상품을 국영상점을 통해 파는 노력도 하고 있다.

결국 시장 큰손들이 하던 역할을 당국이 대신 맡아 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역부족이라는 증거는 벌써부터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당국이 이런 노력조차 몇 달 지속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 북한 큰손은 1월 초 통화에서 “장마당에 물건을 넘길 수 없어 창고 3개에 곡물과 물품을 가득 쌓아놓고 때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 북한의 창고마다 지금 이처럼 큰손들이 깔고 있는 상품들이 가득 차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국가가 지쳐 물러나는 순간 가격이 폭등할 것으로 보고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국가가 큰손의 자리를 비집고 차지했지만 국가가 패배하는 순간 이 역할은 다시 큰손들에게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역설적으로 계획경제 회복을 위해 단행한 화폐개혁이 오히려 북한 대외개방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낳게 하고 있다. 북한이 시장 세력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대외관계 회복을 통한 물품조달에 매달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 당국이 시장 세력에게 패배를 당하지 않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기도 하다. 이제 패배하면 체제의 존립조차 장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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