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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시대의 클래식 캐릭터 ⑦

콤플렉스로 얼룩진 어른들의 동화

신데렐라와 인어공주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콤플렉스로 얼룩진 어른들의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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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꿀수록 불행해지는 인어공주의 슬픔

콤플렉스로 얼룩진 어른들의 동화

안데르센 원작 속의 인어공주는 꿈꿀수록 불행해지는 슬픈 존재다.

한편 ‘인어공주’는 어린 시절 읽은 가장 슬픈 동화 중 하나였다. 어른들은 눈만 뜨면 ‘꿈을 크게 가지라’고 웅변하는데, 정작 내가 가장 좋아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은 꿈을 크게 가지다가 참혹하게 죽고 말았다. 인어공주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은 인어공주를 가르치고 보살피는 데 아낌없이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인어공주의 언니들은 머리카락까지 마녀에게 팔아 마지막으로 인어공주를 살릴 수 있는 방책을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어공주를 살릴 수 없었다. 왜 모두 최선을 다하는데 그녀를 구할 수 없었을까. 그렇다고 그녀의 선택을 비난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살기 위해 왕자를 찌르는 인어공주였다면 우리에게 이토록 전폭적인 ‘편애’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인어공주의 끝없는 신비는 등장인물 모두 자신의 운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완전한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는 비극적 정서에 있는 게 아닐까.

인어공주는 사랑을 얻기 위해, 그리고 ‘인간만이 얻을 수 있다는 영혼’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왕자 또한 자신을 살려준(살려주었다고 믿고 있는) 여인을 찾기 위해 분투하고, 인어공주의 언니들은 동생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마녀 또한 자신의 잃어버린 매력과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하지만 결국 아무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한다. 인어공주의 비극적 정서는 누구에게도 이 꼬일 대로 꼬인 운명의 ‘책임’을 돌릴 수 없다는 사실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닐까.

디즈니가 개작한 ‘인어공주’에서 가장 아쉬운 점 중 하나는 원작이 갖고 있는 모계사회의 뉘앙스를 완전히 삭제한 점이다. 인어공주의 멘토 역할을 하던 할머니 인어는 모계사회의 수장 격으로서 인어공주의 ‘꿈을 키워주는 역할’과 ‘꿈을 억압하는 역할’을 동시에 해낸다. 할머니를 비롯한 대부분의 인어들은 자신들이 사는 바닷속 세계에 만족하고 인간세계를 동경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잠깐 미혹되는 환상쯤으로 인간세계에 대한 동경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들과 인어공주의 다른 점은, 인어공주는 이 ‘불가능한 꿈’을 생의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점이다. 할머니와 언니들이 현실에 안주하고 위험을 배제하는 소시민적 삶을 선택하는 것에 비해 인어공주는 환상을 기어이 현실로 바꿔내려는 이상주의자이자 탐미주의자다. 그녀는 왕자의 ‘조각상’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에 반해 왕자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위험도, 그러니까 죽음도 불사할 수 있다고 믿는 이상주의자였던 것이다.

“인어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는 없나요?”



“만일 한 남자가 자신의 부모보다 너를 더 사랑해서 네 생각만 하고 오직 너 하나만 사랑한다면 가능하지. 그 남자가 신부님 앞에서 네 손을 잡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면 그 영혼이 네 몸으로 흘러들어가 인간의 행복을 함께 누릴 수 있어.”

-안데르센 글, 밀로스라프 디스만 그림, 곽노경 옮김, 안데르센 동화집, 주니어파랑새, 2005, 36~37쪽.

인어공주가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사랑은 ‘아는 동생’한테 보내는 미지근한 사랑이 아니라 가족도 신분도 모두 포기하고 오직 그녀만을 생각하고 그녀만을 바라보는, 절대적 사랑이었다. 어쩌면 안데르센은 자신이 사랑하던 ‘고귀한’ 신분의 여인들과 그 자신이 얻지 못한 사랑을 이렇게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진정으로 사랑받기 위해선 상대방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그런 사랑이 없다면 자신은 절대로 ‘그들만의 리그’에 편입될 수 없다는 것을. 빈민가 출신의 안데르센이 평생 넘을 수 없던 신분의 장벽은 ‘인어’와 ‘인간’의 차이만큼이나 높았다. 그가 사랑한 모든 사람은 높은 신분이거나 당대 최고의 유명인사였다. 그들은 안데르센의 동화에 감격했고, 안데르센의 스폰서나 열혈 독자가 되어줬지만, 안데르센을 ‘그들만의 커뮤니티’에 편입시키기를 원치 않았다.

마녀가 설명했습니다.

“넌 걸을 때마다 날카로운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낄 거야. 그래도 괜찮다면 도와주지.”

“네, 참겠어요.”

“사람이 되면 다시 인어로 되돌아올 수 없어. 다시는 언니들과 아버지가 사는 용궁에 내려올 수가 없지. 그리고 왕자가 너를 부모보다 더 사랑하고 네 생각만 하며 너를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영원한 영혼도 얻을 수 없어. 왕자가 다른 아가씨와 결혼하면 다음날 네 심장은 산산조각이 나서 물거품이 되고 말 거야.”

“그래도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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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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