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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일본 총리와 미국의 악연

美군정에 파직당한 할아버지 ‘항미 DNA’ 이어받은 듯

  • 장제국|동서대학교 부총장·국제관계학과 교수 jchang@dongseo.ac.kr|

하토야마 일본 총리와 미국의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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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라”

하토야마 일본 총리와 미국의 악연

주택가에 둘러싸인 일본 오키나와 후텐마 비행장.

이렇듯 하토야마 총리의 미국에서의 경험만을 놓고 보면 그가 반미주의자가 될 만한 이유를 찾아볼 수 없다. 미국은 그의 인생항로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제공한 축복의 땅이었다. 그 역시 여러 기고문에서 미국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고 표현했다.

하토야마 총리와 미국의 악연은 그의 가문과 관련되어 있는 듯하다. 하토야마 가문이 배출한 정치가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최하가 ‘대신(장관)’이다. 외무대신을 지낸 하토야마 총리의 아버지와 최근까지 자민당 정권의 총무처장관을 지낸 동생 구니오가 그들이다. 증조부는 중의원의장을 지냈고, 할아버지는 총리대신을 역임했다.

하토야마가의 정치인들은 이런저런 모습으로 미국과 인연을 맺었다. 하토야마 총리의 증조부인 가즈오는 일본 최초의 ‘지미파’라고 불릴 정도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인물이다. 1875년에 국비유학생 1호로 선발되어 미국 유학에 올랐다. 미국 명문 사립인 컬럼비아대학에서 법학 석사를 받았고 연이어 1880년 예일대에서 만국공법을 전공하여 법학 박사학위를 받은 첫 일본인이 됐다.

그는 박사학위 취득 후 귀국해 미국에서 배운 민주주의를 일본에 이식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서 근대법치국가로 체제가 이행하고 있던 일본에 있어 무엇보다 국민 인권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했다. 그 후 그는 일본 최초의 변호사가 되어 일본변호사회를 창설했다. 유창한 영어실력은 그를 외무차관으로 일하게 했고 일본이 맺고 있던 외국과의 불평등조약을 개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할아버지인 이치로 전 총리다. 하토야마 총리 스스로 자신의 정치는 할아버지 정치의 계승이라고 말한다. 강연 때마다 할아버지를 언급할 정도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존경하는 할아버지와 미국의 관계는 악연으로 시작됐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극동미군사령부(GHQ)는 이치로를 ‘군부대에 협력한 군국주의자’로 분류해 모든 공직에서 추방했다. 이후 이치로는 시골에서 밭을 갈며 은둔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이치로의 부정적 미국관이 성립된 것으로 추측된다.

미국 눈치 안 본 할아버지

그 후 복권된 이치로는 친미정책을 폈던 요시다 시게루 정권을 강하게 몰아세워 하야시켰다. 이치로는 1954년 12월부터 1956년 12월까지 2년간 총리로 재임하면서 미국과의 관계에 불편을 초래한 대외정책을 마다하지 않았다. 1956년 소련과의 국교정상화를 실현시켰다. 또한 미국이 만들어준 평화헌법을 수정해 일본의 독립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재군비를 주장했다. 주일미군 분담금 삭감을 주장해 미국과 갈등을 초래한 바 있다.

하토야마 총리가 정치적 사표로 삼고 있는 할아버지의 미국관이 하토야마 총리의 미국관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추측을 가능케 하는 근거는 하토야마 총리의 유엔(UN) 중시 철학이다.

유엔은 이치로 전 총리에게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 이치로는 소련과 국교정상화를 성립시킨 후 일본의 유엔 가입을 성사시켰다. 이치로는 일본의 유엔가입을 위해 정열을 바쳤다. 이것은 미국으로부터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본이 유엔에 가입한 지 이틀 만에 이치로 내각은 해산됐다. 이치로는 그토록 원했던 유엔총회 참석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총리 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입버릇처럼 “할아버지가 못다 이룬 과업을 완성시키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실제로 총리가 된 뒤 유엔총회에 출석해 유창한 영어로 연설했다. 할아버지의 유업을 이뤘다는 점에서 감개무량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하토야마 총리는 2005년 출판한 저서 ‘신헌법시안’에서 “일본 군사조직의 지휘권을 국제기구에 위탁하자”면서 주권 일부의 유엔 이양을 주장할 정도로 유엔을 중시했다.

그러면 과연 하토야마 총리는 반미주의자일까. 일각에서는 일본 국내 정치현실이 현재와 같은 대미 마찰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상황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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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국|동서대학교 부총장·국제관계학과 교수 jchang@dongseo.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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