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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특파원의 아이티 현장취재

죽음보다 더한 산 자의 고통… 희망의 싹을 뿌려 주소서

  • 신치영│동아일보 뉴욕특파원 higgledy@donga.com │이진한│동아일보 교육복지부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동아일보 특파원의 아이티 현장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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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로를 통해 아이티로 들어가는 방법은 여의치 않았다. 모두 빠져나오려는 판국에 위험한 아이티로 안내해줄 사람이 없었다. UN 항공기 사정도 녹록지 않았다. UN은 도미니카 현지 여행사로부터 헬리콥터나 소형 비행기를 수배해 되는 대로 각국에서 도착하는 구조대와 구호물자 등을 실어 보내고 있었다. 지진 이후 미 공군 관제사들이 포르토프랭스 공항 통제권을 넘겨받아 UN 등 구호 관련 비행기에 한해 제한적으로 이착륙을 허용하고 있는 터라 항공기 수송이 원활치 않았다. 적십자 등 국제 구호팀, 의료단, 각국 구조대 등도 비행기에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10시간 정도 비행장에서 대기했지만 결국 UN 수송기를 타지 못했다. UN 관계자는 “내일 다시 와서 대기해달라. 내일도 비행기에 태워준다는 보장은 없다”고 했다. 이러다 결국 포르토프랭스행이 무산되는 것은 아닐까. 초조해졌다.

그런데 이날 저녁 예기치 않은 도움의 손길이 나타났다. 현지 한국식당에 식사를 하러 들렀다가 다음날 새벽 버스로 포르토프랭스로 들어간다는 선교단을 우연히 만난 것이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과 도미니카에서 활동하는 선교사 등 10여 명이 의약품과 구호품을 싣고 간다며 버스에 자리가 있으니 태워줄 수 있다고 했다. 망설일 이유도 없었다.

다음날 산토도밍고에서 구호품을 모두 실은 버스는 오전 10시경 국경을 향해 출발했다. 버스에서 점심을 해결하면서 달리기를 7시간. 국경도시 히마니(Jimani)에 도착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주유소였다. 아이티에서 나온 사람들이 기름을 사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이들은 아이티에서 휘발유 품귀현상이 벌어져 도미니카로 넘어와 휘발유를 사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름을 수입하는 아이티에서 지진으로 수송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휘발유를 구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도미니카 당국은 아이티 사람들이 생필품을 살 수 있도록 비자가 없어도 히마니까지는 들어올 수 있도록 국경을 개방하고 있었다.

오후 6시20분경 국경을 통과한 버스는 2시간을 더 달려 목적지인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했다. 지진으로 포르토프랭스 공항이 폐쇄되지만 않았다면 미국 뉴욕에서 비행기로 4시간 정도면 닿을 곳인데 뉴욕에서 비행기에 오른 지 만 이틀 넘게 걸린 셈이었다.

포르토프랭스 외곽은 상황이 그렇게 심각해 보이지는 않았다. 정전 때문에 촛불 하나를 켜놓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고 거리에는 인적도, 차량 통행도 거의 없었다. 간혹 담벼락이 무너져내린 집들도 보였지만 예상과는 달리 큰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하룻밤을 지낸 뒤 다음날 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들어갈수록 참혹한 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아팠을까

현장은 참혹했다. 도심은 마치 전쟁이라도 휩쓸고 간 듯 성한 건물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건물 밑에 깔려 있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서울의 명동쯤 되는 대표적인 번화가인 델마(Delmas)를 둘러봤다. 큰길 양쪽 편에 2, 3층 되는 건물들이 줄지어 내려앉아 있었다. 얼마 전 개장했다는 삼성 대리점도 눈에 띄었다. 무너져내린 건물 잔해 사이로 보이는 ‘SAMSUNG’이라는 로고로 그곳이 삼성 대리점이 있던 자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빈민층이 많이 모여 사는 라 빌(La Ville)의 상황은 더 끔찍했다. 다닥다닥 붙은 소규모 주택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됐다. 거리에는 무너진 건물에서 꺼낸 시신이 수십 구씩 나뒹굴었다. 사람들은 손이나 옷깃으로 코를 막고 시신 옆을 지나다녔다. 거리를 돌아보고 있는데 한쪽에서 굴삭기가 시신들을 트럭에 옮겨 싣는 모습이 보였다. 현지 주민의 말을 들어보니 인근 화장터로 실어 나르는 것이라고 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시신 더미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는 모습이었다. 바로 옆에서 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고 심지어 음식을 해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통령궁으로 발길을 옮겼다. 흰색 건물인데 가운데 원형 지붕을 만들어 미국 백악관과 외관이 흡사했다. 울타리 쪽으로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원형 지붕이 있는 건물의 가운데 부분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건물은 철골 뼈대를 드러내고 있었고 콘크리트 조각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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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영│동아일보 뉴욕특파원 higgledy@donga.com │이진한│동아일보 교육복지부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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