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무스라는 술의 이름은 1786년 이탈리아의 카르파노(Antonio Benedetto Carpano)라는 사람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압생트의 원료로 사용되던 쓴쑥(wormwood)이 첨가된 독일 와인에 깊은 인상을 받고, 새로운 방향성 와인에 쓴쑥을 의미하는 당시 독일어 ‘Wermuth’를 붙인 것이다. 이 때문에 현대 독일어의 ‘Wermut’는 술 Vermouth와 식물 wormwood를 모두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영향 때문인지 이 술의 명칭에 ‘버무스’와 ‘베르무트’를 혼용하고 있다. 버무스가 개발될 당시 술에 각종 약초를 혼합한 것은 사실 기본 원료였던 값싼 와인의 저급한 향을 숨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버무스에는 크게 드라이 버무스와 스위트 버무스 두 종류가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스위트 버무스는 앞서 소개한 카르파노가 처음 만들었다. 이후 19세기에 이탈리아에는 친자노(Cinzano), 그리고 오늘날 세계 최대 버무스 회사로 자리 잡은 마티니 앤 로시(Martini · Rossi) 등 유명 회사들이 속속 등장했다. 스위트 버무스는 식전에 마시는 아페리티프로 사용되거나 칵테일 ‘맨해튼(Manhattan)’의 재료로 사용된다.
스위트 버무스는 영화에서 리타가 주문한 것처럼 얼음과 트위스트를 넣어 마시면(sweet vermouth on the rocks with a twist) 참맛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트위스트는 칵테일을 장식하는 기법의 일종으로 라임 또는 레몬의 껍질을 벗긴 다음 트위스트 모양으로 만든 것을 가리킨다. 트위스트는 장식으로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술에 특유의 풍미를 더한다. 스위트 버무스는 색깔에 따라 레드와 화이트로 나뉜다.
마티니 주재료 드라이 버무스
반면 맑은 색깔의 드라이 버무스는 19세기 초 프랑스에서 처음 개발되었고, 진과 더불어 칵테일의 제왕 마티니(Martini)를 만드는 주재료다. 마티니를 만들 때 진과 드라이 버무스의 비율은 보통 3대 1에서부터 시작해 취향에 따라 버무스의 양을 줄여나간다. 최근에는 버무스의 양을 많이 줄이고 드라이한 마티니를 마시는 것이 일종의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버무스가 첨가된 복합적인 맛을 유지하면서 되도록 진의 순수한 맛을 즐기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너무 드라이한 마티니를 고집하다보면 자칫 칵테일이 아닌 칵테일, 그러니까 버무스의 향이 지나치게 미미해 마치 진 단독 제품인 것 같은 술이 될 수도 있다. ‘초드라이 마티니’ 애호가들은 이런 단순성이야말로 정말 만들기 어려운 마티니의 최고급 경지라고 주장한다.
한편 스위트 버무스가 이탈리아 버무스(Italian Vermouth)로 널리 알려져 있고, 드라이 버무스는 흔히 프랑스 버무스(French Vermouth)로 불리고 있으나 현재 두 국가 모두 두 종류의 버무스를 다량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분류라고 보긴 어렵다. 독자 여러분도 즐거운 일로 가득 찬 하루를 마무리하며 영화에서처럼 스위트 버무스 한잔을 얼음, 레몬 트위스트와 함께 마시면 어떨지. 영화와 달리 아름다운 하루가 일생 동안 반복되는 행운이 따를지도 모를 일이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는 옛말이 우리를 망설이게 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