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건 소스코드 독립

장쩌민(왼쪽) 당시 중국 국가주석에게 한중 간 원자력협력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종훈 의장.
“반대로 그 과정에서 곤혹도 많이 겪었습니다. 컴버스천엔지니어링에 밀린 웨스팅하우스 쪽에서 이걸 정치문제로 비화시키는 바람에 국내에서도 당시의 계약이 정치자금 조달과 연계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일이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1987년 민주화 바람을 거치면서 반핵 여론이 확산되기도 했고요. 여러 가지 상황이 맞물리면서 국회에서 국정감사도 열고 두 달에 걸쳐 검찰 수사도 받아야 했습니다. 결국 문제가 없는 것으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어려운 시점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최근 사례로는 노무현 정부 당시 신고리 원자력발전소의 실시승인이 지연되던 상황을 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원자력에 대해 비판적인 분이 정부 안에 많았던 까닭인지 정부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는 겁니다. 결국 2005년 1월에 업계 원로 72명이 서명을 해서 이해찬 당시 총리에게 탄원했죠. 효과가 있었는지 결국 정부 승인이 나오고 착공이 이뤄졌습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원자로가 바로 APR-1400입니다. 신고리가 하염없이 미뤄졌다면 APR-1400은 검증받지 못한 원자로로 남았을 테고, 당연히 이번 UAE 수출도 불가능했을 거라고 봅니다.”
▼ 말씀을 듣다보니 한국의 원자력 기술발전사는‘어깨너머로 배워 우리 것으로 만드는 일의 연속’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한국의 기술수준은 이제 배우는 단계는 넘어선 것인가요. 이번 수출과 관련해 APR-1400이 우리 기술로 개발됐다지만, 여전히 해외에 지급해야 하는 로열티에 관한 지적이 있었는데요.
“아직 우리가 자립하지 못한 것이 크게 세 가지인데, 우선 독자적인 소스코드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컴버스천엔지니어링에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는 소스코드말고 직접 우리 나름의 소스코드를 만들어내야 하는 거죠. 현재는 2012년까지 자체적으로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고, 또 성공할 거라고 봅니다. 그렇게 되면 원자로 본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로열티를 지급할 필요가 없어지죠.
다음으로 냉각재펌프와 원전제어계측장치 정도가 아직 해외에서 구매해오는 부분인데, 냉각재펌프의 경우에는 기술 자체가 고차원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개발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워낙 대용량인데다 자체생산이 경제성이 별로 없기 때문에 안 만드는 거죠. 원전제어계측장치도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경쟁력이 있는 IT 시스템 분야이므로 충분히 국산화가 가능하다고 보지만, 역시 경제성이 별로 없습니다. 이미 만들고 있는 외국업체에서 들여오는 게 훨씬 싼 거죠. 개인적으로는 요즘 같은 국제화 시대에 국산화를 너무 고집할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휴대전화나 자동차가 100% 국산이 아니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