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보시다시피. 이거 관리하고, 책 쓰고, 그림 그리고, 시간 나면 이거저거 사러 다니고 그럽니다.”
▼ 명함에 ‘뽈랄라수집관’ 관장이 빠진 걸 보면 이 일로는 돈을 못 버시나봐요.
“못 버는 정도가 아니라 이거 운영하느라 생계가 위험할 지경이지요. 문 연 지 1년 됐는데 매일매일 적자가 쌓입니다. 이거 없을 때는 룰루랄라 살았는데….”
▼ 그런데 이걸 왜 하시는 거예요?
“한 10년 잡동사니를 모았거든요. 그동안 연희동 창고에 쌓아뒀는데, 수집한 걸 한번 정리할 때도 된 것 같아서 전시장 겸 작업실을 꾸민 거예요. 그런데 웬걸, 쌓인 짐 정리하는 데만 1년이 걸렸고, 아직도 연희동엔 여기 전시한 것보다 훨씬 많은 잡동사니가 남아 있어요. 내가 그동안 뭘 얼마나 많이 모아왔는지 나도 몰랐던 겁니다. 결국 이거 만들면서 월세는 두 군데서 나가게 됐고, 그동안 정리한 거 아까워 문은 못 닫겠고…. 완전히 판단미스였어요.”
▼ 창고에 쌓여 있는 것도 다 이런 물건들인가요?
“그렇죠. 성냥갑, 양초 같은 것도 있고, ‘사기의 기법’ 같은 특이한 책들, 장난감, 조립식…. 뭐 온갖 게 다 있어요.”
▼ ‘뽈랄라’가 그런 뜻인가요? 남들 안 모으는 잡동사니?
“그런 건 아니고, 나 좋아하는 거 남 눈치 보지 말고 하자는 뜻으로 제가 만든 말이에요. ‘포르노 랄랄라’를 줄여서, 하고 싶은 대로 살자, 뽈랄라~ 뭐 그런 거죠.”
잡동사니 천국, 문방구

‘최첨단 홍대 앞의 서브컬처 명소’ 뽈랄라수집관 전경.
현씨의 수집벽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 미대 공예과를 졸업한 그는 당시 홍대 앞에 ‘신식공작소’라는 공방을 열고 초록색 때밀이 타월로 만든 핸드백, 돈을 넣으면 감격한 듯 움직이는 ‘감격의 저금통’, 돈을 넣고 지퍼를 잠그면 입을 다무는 ‘입닥쳐 지갑’ 따위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원래 ‘시시껄렁한’ 걸 좋아하는 성미인지 모른다. 그때 바로 옆 가게는 한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문방구였다(표준어는 ‘문구점’이지만, 현씨는 모든 어린이가 ‘문방구’라고 부르던 그 공간을 이렇게 부르고 싶어했다. 이 글에서는 학교 앞에서 꼬맹이들을 상대로 학용품, 장난감, 불량식품 등을 파는 잡화가게를 ‘문방구’라고부르기로 한다). 왔다갔다 인사나 드리던 차에 어느 날 할아버지가 가게 문을 닫는다며 필요한 게 있으면 싸게 가져가라고 했다. 33㎡ 남짓한 공간을 뒤적이다 그는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물건들을 만났다. 반갑고 신기했다.
▼ 그때부터 수집가의 길로 들어선 건가요?
“그때는 그냥 ‘재밌다’ 하고는 말았어요. 제대로 모으기 시작한 건 훨씬 뒤부터죠. 1998년 IMF가 오면서 하던 일이 끊기고 돈벌이가 시원찮아졌을 때예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아내와 함께 석 달 동안 해외여행을 떠났다가, 미국 캐나다에서 우연히 앤티크 장난감 가게에 들렀어요. 반듯하고 깔끔한 신식 가게에서 온통 구닥다리 물건을 파는 모습이 신선하데요. 내가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장난감들은 어디로 갔을까,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