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택 원장이 집무실에서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현재 국내 과학기술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면 과학자의 의견이 효과적으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예산인데 이 예산 배분이 공무원들의 머릿속에서 이뤄집니다. 예를 들어 수많은 연구 프로젝트 가운데 집중과 선택의 결정을 내리는 의사결정 구조 속에 과학자의 참여가 크지 않습니다. 차라리 과학자들에게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고 정부부처나 담당 공무원은 예산이 낭비되지는 않는지, 더 투자하거나 중단할 것인지 등을 판단하는 견제 역할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대원칙이 우리나라에도 적용돼야 합니다.”
▼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입니까.
“다수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사례를 들고 싶습니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산하에 80여 개 연구소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중복연구에 따른 예산낭비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중복연구가 우리의 경쟁력이다’라는 겁니다. 중복연구를 통해서 도출된 가장 우수한 연구 성과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이를 세계적인 연구 성과로 이어간다는 의미입니다. 과제명이 비슷하기만 해도 중복연구니, 예산낭비니 하는 우리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개념을 적용하는 셈이죠. 한 사람의 연구자나 하나의 연구조직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연구자, 여러 연구조직의 연구 결과물 중 가장 우수한 것을 찾아내는 것이 산술적으로도 합리적인 것이 아닌가요.”
박 원장은 여기서 “독일에서의 원칙은 ‘정부는 연구 자금을 지원하지만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는 미국과 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원칙”이라며 “간섭을 하지 않는 대신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기관을 통해 각 연구자, 연구조직, 연구기관에 대한 평가를 하고 문제가 있다면 해당 기관장을 해임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 현재 출연연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국내에서 정부출연연구기관 형태로 본격적인 연구개발이 이뤄진 것이 40~50여 년에 불과합니다. 물론 이 기간에 많은 성과물을 이뤄냈습니다. 문제는 기초과학과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이러한 성장이 적용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응용기술이나 산업기술 등에서는 국내에서 개발하지 못한 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것으로 우회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기초과학은 첫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더욱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출연연들은 다른 공기업과 같은 취급을 받으며 구조조정이며 예산삭감 등과 같은 부침(浮沈)에 시달려왔습니다. 물론 출연연이 각종 정부시책의 무풍지대가 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자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과 투자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과학기술계 컨트롤 타워 부재
▼ 과학기술정책에 과학자의 의견을 효율적으로 반영하는 대안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교육부와 과기부의 통합으로 독자적인 소관부처가 없는 상황에서 부처나 기관 차원에서의 대안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청소년들의 이공계 진학 기피현상에서 보듯이 현재 우리의 현실은 과학자가 존경받는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과학자가 존경받고 과학자의 의견이 과학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정부차원의 이해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과학기술계의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지적을 많이 합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활성화, 청와대 교육문화과학수석을 교육문화 및 과학수석으로 이원화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게 대부분 과학자의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