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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괴짜들 ⑨

신들린 사진가 장국현

“내 작업 공간은 염력(念力)과 영감으로 이뤄지는 4차원 세계”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신들린 사진가 장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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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고생해도 좋은 사진을 찍으면 모든 어려움이 잊히나요.

“고생이라고 하는 건 3차원 세계의 생각이에요. 나는 하나도 힘들지가 않거든. 두 달 못 씻고 못 먹고 다녀도 날마다 천국에서 노는 기랑 한가집니다. 우리 집사람은 그걸 이해를 못 했지. 늘 ‘당신 사진 찍는 건 좋은데 다른 사람처럼 적당히 하면 안 되나’ 안달을 했어요. 나는 거지같이 해가지고 사진 찍고 사는 게 여기서 온갖 보물 갖고 품고 있는 것보다 더 좋다 캐도 그걸 끝내 못 알아듣고….”

▼ 사모님이 마음고생 많이 하시겠네요.

“그래서 지금 저승 가뿌렸다 아닙니까. 11년 전에 죽었어요.”

위암이었다. 그가 사진에 미치기 전에는 언제 어디든 함께 다닐 정도로 금슬 좋던 아내를 장씨는 요즘도 가끔 생각한다. 영감이 떠오르면 불쑥 산에 들어가버리고, 그렇게 한번 집을 떠나면 몇 달씩 연락도 없는 자신 때문에 무척이나 속을 썩였을 게다. 하지만 다시 아내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산을 찍을 때는 산 외에 모든 생각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일념을 이뤄야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게 그의 확고한 믿음이다.



결정적 순간

“우리 예술 하는 사람이 평생 명심해야 하는 기 하나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하신 말씀인데 ‘예술은 아흔아홉까지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지만 하나가 보태져야 완성된다. 그 하나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데 있다’ 이기지요. 그 하나가 바로 영감이고 하늘의 은총입니다.”

그는 이것을 얻기 위해 하루 중 가장 기운이 맑은 오전 2~3시, 별과 달을 우러러보며 기도를 한다. 사방에 정성껏 세 번씩 절을 하고 산아합일(山我合一)의 무아경(無我境)에 들었을 때 오는 느낌을 따른다. 한번은 가을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단풍을 찍고 싶었다. 그 마음을 따라 원하는 장소에 서고 트라이포드를 펼치자 이내 거짓말처럼 날씨가 갰다. 비에 흠뻑 젖은 단풍이 햇살을 받으니 그 어느 때보다 해맑았다. 기막힌 사진이 나왔다.

▼ 그런 건 거의 신기(神氣)라고 할 만한데요.

“어떻게 표현하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실제로 그렇게 된다는 기지요. 한낱 메뚜기도 내일 태풍이 불지 안 불지 아는데 인간이 왜 모르겠습니까. 영감을 받아들일 줄 몰라 놓칠 뿐이에요. 처음 몇 번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저도 기적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점점 이것이 자연의 원리이고 예술의 원리라는 걸 알기 됐지요. 기도를 계속 하믄 어이 되는지 압니까. 내 마음속에 어떤 풍경이 떠오르면, 그 장소에 미친 듯이 가고 싶어져요. 그리고 그곳으로 달려가면 내가 생각한 장면이 그대로 나타나는 기지요. 처음엔 아니어도 계속 사진 찍으면서 생각을 모으면 결국 그대로 된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자연 사진은 사람이 찍는 기 아닌 걸 알았어요. 누군가 결정적 순간을 허락해줘야만 가능한 기지요.”

바로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그는 인간의 도리를 다한다. 자연이 허락할 때까지 심신을 다해 매달리고 기다린다. 어느 해 겨울 한라산의 독특한 설경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거라는 영감이 왔을 때는 만사 제치고 제주도로 달려갔다. 열흘간 내린 폭설로 한라산 입산이 통제된 상태였지만 그는 산에 올라야 했다. 이른 아침 눈보라를 뚫고 흔적 없는 등산로를 헤집으며 걸었다. 온종일 사투를 벌인 끝에 저녁 무렵이 돼서야 해발 1750m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했다.

“내가 무거운 장비 이고 지고 눈사람이 돼 딱 나타나니까 거기 직원이 기겁을 해요. 그래도 어쩌나, 그 밤에 도로 내려가라 할 수도 없고. 오죽했으면 여기까지 올라왔겠느냐고 어르고 사정해 하루를 묵을 수 있었지요. 그런데 바로 다음날 아침, 열하루 만에 눈이 그친 깁니다.”

아무도 밟을 수 없는 환상적인 눈세계에서 그는 홀로 자유로웠다. 필름이 떨어질 때까지 5일간 미친 듯이 사진을 찍었다. 장씨가 보여준 작품 속에서 한라산 나무들은 켜켜이 쌓인 눈에 덮여 흡사 거대한 설인(雪人)처럼 보인다. 드넓게 펼쳐진 눈밭은 아침 햇살을 받아 사막의 모래 빛으로 반짝인다. 숨 막히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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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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