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 정몽헌 일가와 함께. 왼쪽부터 변중석, 정몽헌, 정지이, 현정은, 정주영
변 여사에 관한 자료를 찾다보니 유독 여성지에서 다룬 기사가 많았다. 남편이 생전에 워낙 화제를 뿌린 인물이었던 데다 대통령선거에도 출마해 미디어의 관심을 받았던 때문일 것이다. 변 여사 인터뷰 기사 중에서 ‘여성중앙’이 1985년 2월호 특집으로 게재한 ‘변중석 여사 스토리’가 변 여사의 진면목을 가장 잘 보여준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6시, 청운동 집을 찾은 기자는 우선 건설 재벌이라는 명성을 무색하게 하는 소박한 콘크리트 2층 양옥집에 놀란다. 지은 지 20년이 넘었다는 2층 슬래브 주택이었다. 다음은 기자와 변 여사가 나눈 문답의 일부다.(편의상 문장을 일부 축약했다)
▼ 여느 때도 이렇게 일찍 일어나십니까?
“다섯 시면 모두 일어나지요. 회장님이 아무리 늦게 들어오시는 날이라 해도 아침이면 꼭 5시에 일어나십니다.” (아침 준비를 하느라 꽤 부산스러울 텐데도 집안은 조용하다.)
▼ 이 집에 사시는 분이 몇 분이십니까?
“회장님하고 나하고 둘밖에 없어요. 여태까지 막내가 있었는데 공부(미국유학)하러 갔어요. 손주들이 요 앞에서도 살고 저 건너에서도 사는데 회장님 뵐 시간도 없고 하니까 아침마다 오라고 해 2층 식당에서 식사를 같이 하지요. 며느리들이 와서 거듭니다. 다들 워낙 바쁘시니까 모두 모일 때가 참 드물어요.” (마침 산책을 마친 정주영 회장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들어섰다.)
“(정 회장) 난 어제 밤 1시에 들어오는 바람에 오늘 이 약속을 저 사람에게 알리지도 못했어. 옛날에 내가 서울 처음 올라와서 밥 얻어먹던 쌀집 아주머니가 올해 아흔이셔. 그리고 나한테 돈 꾸어주던 오윤근씨도 아흔이신데 이 두 분을 모시고 저녁이나 대접하려고 했는데 오씨가 보름 전에 돌아가셨어. 그래서 쌀집아주머니랑 그 집 며느리, 아들들, 그리고 그때 쌀집에서 같이 일하던 이원재씨라고…, 한데 모여서 이야기하느라고 어제는 1시에 들어왔어. 그러느라고 오늘 이 약속을 얘기도 못했는데…. 저 사람 늘 ‘몸뻬’에 쉐타 차림이더니 오늘은 한복으로 되게 차리고 나왔군.”(일동 웃음)
▼ 이렇게 두 분 모시기는 더욱 어려운데 잘 됐습니다. 한 달에 생활비는 얼마나 쓰십니까?
“글쎄요…, 저는 월급도 없고요(이때 정 회장이 “내가 매달 들여오는 월급이 당신 월급이지 뭐야” 해서 일동 다시 웃음), 여기저기서 모아 가져오시는 돈이 200만원가량 되는데 먼저 얼마를 쪼개 저축에 넣고 살림에 쓰지요.”
▼ 직접 회장님한테 타서 쓰십니까? 아니면….
“사무실에서 보내주지요. 큰며느리와 상의해서 살 것 사고 쓸 것 쓰고…, 가계부를 적지요.”
▼ 회장님 식사는 손수 지으십니까?
“서로 하지요. 며느리하고 일하는 아줌마하고….”
▼ 회장님이 워낙 바쁘신 분이시니까 남편감으로는 낙제점수 아닙니까?
“옛날부터 손님 같으시니까요.(웃음) 아침식사 때만 만나니까요.” (정 회장은 회사일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