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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가족의 초상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21세기 가족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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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당시 스물네 살의 김애란이라는 작가가 쓴 화제작 ‘달려라, 아비’(2004)의 한 구절이다.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에 이어 나온 한국 소설 속 가족의 풍경이다. 프로이트는 현실의 가족, 그러니까 현실의 부모를 부정하고 상상 속의 부모를 동경하는 욕망이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보고, 그것을 가족 로망스라고 했다. 지난 세기 한국 소설 속의 부모들, 특히 아버지들은 아들에 의해 부정의 대상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피할 수 없는 대결 구도가 그것이다. 아버지의 유무에 따라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양상을 띠는데, 집안의 절대자인 아버지가 세상에서 성공한 권력자의 경우, 둘째는 절대자 아버지가 세상에서 패배한 낙오자의 경우가 그것이다.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나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의 아비들은 패배자의 초상이다. 한 집안에서 아비의 위상은 세상에서의 성공 여부에 따라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지난 시대 우리의 아버지는 ‘아비는 종이었다’로 통칭되는 계급사회의 희생자로 나타나기도 하고, ‘아비는 남로당이었다’로 통칭되는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로 등장하기도 하고, ‘아비는 개흘레꾼이었다’로 통칭되는 이데올로기와 자본의 희생자로 까발려지기도 했다. 계급도, 이데올로기도 한갓 맹탕 헛것이 되어버린 2000년대 젊은 작가들에 의해 호출된 가족의 초상에서 아비는 술에 취한 채 아들에게 흠씬 얻어맞고 자기 방으로 기어들어가거나, 어딘지도 모른 채 쉼 없이 뜀박질을 하고 있다. 소설은 인간 사회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장르다. 급속도로 변화하고, 다양하게 전파되는 삶의 양태 속에 가족의 정체성을 소설적으로 문제 삼는 이유는 소설이라는 종자가 인간과 인간 삶의 환경을 대상으로 하는 인간학이기 때문이다. 21세기 한국의 가족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김영하, 김애란의 소설들은 바로 이 지점의 현상들을 적나라하게 묘파해내고 있다.

평균 나이 49세

그리고 여기 또 한 가족이 있다. 홀어머니와 삼남매가 한집에 살고 있다(엄밀히 말하면, 삼남매와 군식구인 십대 손녀). 이들이 한 지붕 아래 가족으로 모여 살고 있다는 것은, 일반적인 경우, 자식들이 어머니의 보호를 받아야 할 만큼 미성년자, 또는 미혼 연령임을 의미한다. 삼남매의 연령은 쉰을 넘겼거나, 쉰을 바라보는 나이. 큰아들(오한모)은 120kg 거구로 강간 전과자이자 백수고, 딸(미연)은 바람을 피우다 두 번째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혹처럼 딸을 달고 들어와 눌러앉았고, 그리고 ‘나’는 전직 영화감독으로 처음 찍은 영화가 흥행에 참패하고, ‘그해 최악의 영화’로 낙인찍히면서 10년이 넘도록 충무로 영화판의 낭인으로 떠돌다 노숙자로 내몰릴 막다른 순간에 어머니의 집으로 기어들어온 늙다리다. 이쯤 되면, 이 글의 첫 문장은 수정되어야 한다. ‘여기 한 가족이 있다’가 아니라 ‘여기 되는 것 하나 없는 한심한 콩가루 집구석이 하나 있다’고. 작가 천명관 왈, ‘고령화 가족’.

엄마는 여전히 별말이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어쩌다가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대신 화장품을 팔러 밖으로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와중에도 꼬박꼬박 끼니를 챙겨주었다. 나는 누에처럼 엄마가 차려놓은 밥을 먹고 다시 방으로 기어들어가 잠을 잤다. (중략) 우리는 마흔 넘은 자식들이 줄줄이 노모 앞에 엎드려 밥을 얻어먹게 됐다는 사실이 눈치가 보여 어떻게든 미연만은 따로 내보내 살게 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태도가 분명했다. 여자 혼자 밖으로 내보내 살게 할 수 없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옛날엔 이보다 더한 것도 견뎠는데 뭐가 문제냐며 6·25 때 얘기를 들려주었다.-천명관, ‘고령화 가족’, 문학동네, 2010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에 이르면 아비는 교통사고 보상금을 제 목숨 값으로 남기고 죽고 없고, 평균나이 49세로 세상의 낙오자들인 자식새끼들이 홀어머니에게 들러붙어 연명한다. 이들은 한때 어미 아비의 부정한 관계로 태어난 자식들로, 주인공 ‘나’를 중심으로 보면 형과는 이복(異腹)이고 여동생과는 이부(異父)인, 우리네 삶에서 복잡하다면 복잡하고,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관계다. ‘고래’라는 환상적인 장편소설로 수많은 독자를 웃고 울게 만들었던 개성적인 이야기꾼인 천명관 작가는 이번에는 사회의 패배자이자 문제아들인 늙은 아들딸들을 그저 묵묵히 끼니를 챙겨주는 늙은 어미의 품으로 불러들인다. 그런데 전통적인 문법을 거부하고 누구보다 낯선 이야기, 낯선 공간을 소설 속에 창출했던 작가가 새삼스럽게 웬 가족 타령인가? 라고 의문이 들 법도 하다. 영화 ‘북경반점’과 최근 개봉한 영화 ‘이웃집 남자’의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천명관의 소설적 화두는 지금-이곳, 21세기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고령화 가족의 문제를 풍자적으로 그려 보이는 데에만 있는 게 아니리라. 그는 어쩌면 점점 사라져가는 순수한 모정(母情), 불모의 땅으로 변해가는 이 세상을 지속시키고, 또 황폐한 영혼을 구원할 영원한 초록의 생명력인 여성성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어머니를 불러낸 것은 아닐까.



자식들이 장성해 머리가 희끗해져가는 중년이 되었어도 엄마 눈엔 그저 노란 주둥이를 내밀고 먹을 것을 더 달라고 짖어대는 제비새끼들처럼 안쓰러워 보였을까? 그래서 비록 자식들이 모두 세상에 나가 무참히 깨지고 돌아왔어도 그저 품을 떠났던 자식들이 다시 돌아온 게 기쁘기만 했을까? -천명관, ‘고령화 가족’에서

신동아 201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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