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호

여야 신임 원내대표에게 듣는다

4대강 세종시 등 ‘대결’이슈 산적한 정치권에 대화와 소통 물꼬 트일까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0-05-31 17: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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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야 신임 원내대표에게 듣는다
    3월 중순.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과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사석에서 만났다. 술잔을 부딪치며 이런저런 정담을 나누던 중 박 의원이 농담 삼아 불쑥 말을 꺼냈다. “나는 5월에 원내대표 경선에 나가려고 하네, 김 의원도 한나라당 원내대표에 출마해 당선되면 둘이서 꽉 막힌 여야 관계를 잘 풀어보는 것이 어떤가.” 김 의원이 답했다. “아이고 제가 뭘, 저는 전혀 생각 없으니 형님이나 잘 하셔서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나서 농담은 현실이 됐다. 5월4일. 한나라당은 김무성 의원을 새 원내대표로 합의 추대했다. 사흘 뒤인 5월7일. 민주당에서는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박지원 의원이 새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5월11일 상견례를 겸한 첫 회동에서 두 사람은 “그때 말이 씨가 됐다”며 웃었다.

    두 사람은 각각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배출한 정치인이다. 정치 스타일 역시 정치 스승인 YS와 DJ를 쏙 빼닮았다. 김무성 원내대표가 선이 굵고 호방한 ‘덕장(德將)’ 스타일이라면, 박지원 원내대표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꼼꼼하고 치밀한 ‘지장(智將)’에 가깝다.

    출신과 정치 스타일은 서로 다르지만 두 사람은 가끔 술잔을 나눌 만큼 인간적인 친분을 유지해온 막역한 사이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이 집권여당과 제1야당 원내사령탑에 오른 것을 계기로 모처럼 정치권에 대화와 소통의 물꼬가 트일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여야 관계가 술술 풀릴지는 미지수다. 4대강과 세종시 등 ‘대화’보다는 ‘대결’로 몰아갈 대형 쟁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 원내사령탑에 오른 두 사람으로부터 각각 향후 현안에 대한 전망과 포부를 들어봤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



    “박근혜 대표와 관계 풀고, 정권 재창출에 일조하겠다”

    한나라당은 경선 없이 합의추대로 김무성 의원을 새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그동안 친이계(친 이명박 대통령 계열)와 친박계(친 박근혜 전 대표 계열)가 첨예하게 대립해온 것을 감안하면, 원내대표 합의추대는 당내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친이계의 고육책인 셈이다.

    그러나 김무성 원내대표가 1년 전 당시 주류 핵심부에서 추진한 ‘원내대표 추대 카드’를 받으려다 박근혜 전 대표와 금이 간 데다, 지난 2월에는 ‘세종시 원안 고수’ 입장을 밝힌 박 전 대표와 달리 절충안을 공개적으로 제시하면서 사실상 친박계로부터 파문을 당했다는 점에서 그의 원내대표 무혈입성을 둘러싸고 다양한 정치적 해석이 나온다.

    친이계의 친박계 와해 작업이란 해석과 함께, 친이계가 본격적으로 친박계를 끌어안기 위한 사전포석이란 견해가 있다. 물론 주류 핵심 진영에서 김무성 의원이 야당과의 관계를 푸는데 적임자라는 판단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5월11일. 국회 본청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에서 김 원내대표를 만났다. 이날 김 원내대표는 민주당 박지원 신임 원내대표와 상견례를 겸한 첫 회동을 가졌다. 두 사람은 국회 귀빈식당에서 만나자마자 의례적인 악수가 아닌 뜨거운 포옹으로 진한 우애를 과시했다.

    ▼ 민주당 박 원내대표와 가까운 사이인 모양입니다.

    “가끔 만나 술잔도 나눕니다. 사석에서는 제가 형님으로 모십니다(1951년생인 김 원내대표는 올해 59세이고, 42년생인 박 원내대표는 68세다). 저와 박 원내대표님은 각각 대통령을 배출한 정파의 정통성을 잇는다는 공통점도 있어요. 두 분 대통령에게서 정치를 배웠지요. 동교동과 상도동이 티격태격 싸우기도 했지만 양쪽 사이에는 정이 있거든요.”

    “야당과 적극 대화하겠다”

    “협상 상대로서 박지원 원내대표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묻자 그는 양복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축하 난을 갖고 박지원 원내대표를 찾은 주호영 특임장관이 “국정 경험이 많으시니 정부를 많이 도와달라”고 인사를 건네자, 박 원내대표가 “대통령이 성공해야 나라가 산다.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협력할 것은 협력하겠다”고 화답한 내용이 담긴 신문기사였다.

    “이런 말을 하는 멋쟁이에요. 그만큼 여유가 있고, 무엇보다 국정에 대해서 잘 아는 분이죠. 권력 핵심에 오래 있으면서 대통령비서실장과 장관까지 지냈으니 저보다 큰 경험을 하셨죠. 비록 야당이지만 여당의 입장, 대통령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계시기 때문에 기대가 큽니다.”

    ▼ 개인적인 친분과는 별개로 세종시나 4대강 사업 같은 대형 이슈가 가로막고 있는데….

    “서로 입장을 이해하면 풀지 못할 현안은 없다고 봐요. 작은 문제로 기싸움을 벌일 필요는 없지요. 오늘도 서로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보자고 해서 다 풀어버렸어요. 원만한 합의를 봤죠.”

    두 원내대표는 첫 회동에서 이른바 ‘스폰서 검사’ 의혹 수사를 위한 특검 도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해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도입 문제는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 내 검찰개혁소위원회에서 논의하기로 했고, 5월 중 하루 동안 ‘원 포인트’ 국회 본회의를 열어서 시급한 민생법안을 처리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6·2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치공방은 자제한다는 합의도 있었다.

    ▼ 그렇지만 세종시 문제 같은 것은 대화를 나눈다고 풀릴 현안은 아닌 것 같은데요.

    “세종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표를 얻기 위해 만든 정책인 만큼 (현재의 야당에서도) 득실을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원안과 수정안 중간에서 절충안을 찾으면 승자도 패자도 없이 윈-윈 하는 길이 있다고 봅니다.”

    ▼ 절충안이라면 김 대표께서 일전에 해법으로 제안했던 ‘독립 성격이 강한 대법원 등 7개 정부 기관 이전’ 안을 의미하나요?

    “지금 그 안을 꼭 고집하지는 않지만, 그런 방안을 비롯해서 다 검토해야지요. 승자와 패자 없이 상생하는 것이 잘 하는 정치죠.”

    김 원내대표는 부산(남구을)에 기반을 둔 정치인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포항과도 인연이 깊다. 그의 선친은 전방(옛 전남방적)을 창업한 김용주 전 회장(1985년 작고)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초대회장, 전경련 부회장을 지낸 기업인이자 1960년대에 참의원, 민주당 원내총무 등을 지낸 정치인이다. 경남 함양 출신이지만 포항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수산업 등으로 사업기반을 일으킨 뒤 서울로 진출했다. 이 대통령이 다닌 포항 영흥초등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김 원내대표는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형인 김창성 전방 명예회장(전 경총회장)과 누나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은 포항에서 나고 자랐다. 김 이사장의 남편은 작고한 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이고, 딸(김 의원의 조카)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다.

    ▼ 이 대통령과는 포항, 현대가(家)를 통해 인연이 깊더군요.

    “일제 때 포항에는 초등학교가 하나밖에 없어 많은 한국 어린이가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했어요. 안타깝게 여긴 선친께서 젊은 나이에 재산의 반을 털어 수녀들이 운영하다가 문 닫은 학교를 인수했지요. 그 학교를 대통령께서 졸업했고요. 선친이 나중에 서울로 올라와 크게 사업을 벌였는데, 당시 포항 출신 유학생들이 주말이면 우리 집에 와서 밥도 먹고 놀다 가고 했거든요, 그때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상득이 형’(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도 그랬죠.”

    ▼ 대선후보 경선 때는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YS도 그렇게 권유한 것으로 아는데, 끝내 박근혜 후보 캠프를 지킨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연이야 MB와 깊고 길었죠. 물론 정치적 인연은 없었지만…. 그렇지만 저는 박 전 대표 시절의 성공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당 대표와 사무총장으로 호흡을 맞춰 일한 기간은 10개월밖에 되지 않지만 짧은 시간에 우리는 엄청난 일을 했어요. 각종 재·보궐선거에서 ‘40 대 0’의 완승신화를 이뤄냈죠. 당시 박 대표가 저를 믿고 당무를 전적으로 맡겨줘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어요. 10개월 동안 그렇게 서로 믿고 이심전심으로 깊은 정을 나눴는데, 어떻게 MB 캠프로 가겠습니까.”

    ‘우리가 왜 이렇게 됐소’

    ▼ 당시 박 전 대표가 경선에서 이길 것으로 예상했습니까.

    “처음에는 박 전 대표가 앞서나갔지만 MB의 청계천 신화가 부각되고, 북한 핵 실험의 여파 등으로 판세가 바뀌어 나중에는 MB가 완전히 역전하지 않습니까. 누구나 MB가 이길 것으로 생각했는데 저라고 몰랐겠습니까. 차라리 MB가 불리했다면 생각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죠. 오히려 박 전 대표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떠날 수가 없었어요. 양지만 찾아다닐 수는 없지 않습니까. 열심히 하다보니 박 전 대표가 선거인단투표에서는 이겼지요. 저는 이것을 기적이라고 봐요. 그런데 이런 ‘비극’이 생겨버려서….”

    그는 박 전 대표와의 관계가 틀어진 지금 상황을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감정이 격해진 듯 큰 소리로) 내 마음은 아무런 변화가 없어요. 그런데 박 전 대표와 내가 완전히 멀어졌고, 아니 멀어졌다기보다는 소원해지고, 박 전 대표는 나를 불신하고, 나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안타까운 일이에요. 기가 막힌 일이에요.”

    ▼ 박 전 대표의 주변 사람이 그렇게 만든 측면이 있다고 봅니까.

    “내 입으로 할 말은 아니죠. 주변에서 그런 말한다고 나를 못 믿으면 그 자체도 나는 섭섭하죠. 사람들이 다 (나를) 인정하는데 나를 제일 잘 아는 박 전 대표가 인정하지 않으면…. (잠시 생각하다가) 그렇지만 워낙 가까운 사이니 언젠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면 풀릴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답답한 듯 말을 이어갔다. “나는 절대 두 마음 먹는 사람이 아닙니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는지, 나는 비극이라고 생각해요. (박 전 대표와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는데, 그래도 대통령은 대통령 아닙니까. 아무리 섭섭한 게 있어도 예우하고, 개인감정을 떠나 모두를 위해, 나라와 국민, 당을 위해서도 도와야 되는 것 아닙니까. 어쨌든 박 전 대표에 대한 제 마음은 변한 것이 없는데, (주변에서) 자꾸 마음이 변했다고 하니 답답할 뿐이죠. 진정성을 갖고 한번 만나서 ‘우리가 왜 이렇게 됐소’ 하고 마음 터놓고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 세종시 절충안을 공개 제시했을 때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박 전 대표), ‘정치철학이 다르면 친박이 아니다’(유정복 의원)는 등의 모진 말을 들었는데, 스스로 지금도 친박계라고 생각하는지요.

    “내가 ‘여전히 친박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쇼하는 것처럼 보이고…. 친박이냐, 아니냐가 아니고 친박계 의원 모두 나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가까이 지내고 있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지요.”

    ▼ 개인적으로 이 대통령과 깊은 인연이 있고, 박 전 대표와는 정치적 동지였으니 여권의 고질적인 친이계-친박계 대립을 해소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생각에서) 원내부대표단에 친박계 의원을 네 사람이나 넣었어요. 앞으로 친이계와 친박계를 가리지 않고 소속 의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해요. 내 특기가 ‘술’ 아닙니까. 양쪽을 모아놓고 술 한잔하며 ‘악수해라’ 그러는 거지(웃음).”

    정가에서는 1년 전과 마찬가지로 김 원내대표가 합의추대되는 과정에 주류 핵심 인사가 개입했다는 말이 나돈다. 그가 원내대표 경선 출마 의사를 밝히자 그 때까지 출마를 검토했던 친이계 핵심들(이병석·정의화·안경률 의원)이 줄줄이 뜻을 접어 그 같은 관측에 무게가 실렸다. 정치권 일각에서 추측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다.

    ▼ 1년 전이나 지금이나 원내대표에 나설 결심을 혼자 한 것인지, 누구에게서 권유를 받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상득 전 부의장 이야기도 나오고요.

    “그런 말이 오해를 만드는 겁니다. 1년 전에는 당시 박희태 대표가 이 대통령과 상의를 끝내놓고 나에게 (원내대표를) 맡아달라고 했어요. 그전까지 나는 그 누구와도 원내대표 문제를 논의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박 전 대표 주변에서는 SD(이상득 전 부의장)하고 미리 논의했다고 하더군요. (목소리가 다시 커지면서) 마치 내가 원내대표 하고 싶어서 목을 맨 것처럼. 박희태 대표는 ‘언론계를 비롯해 100이면 100 모두 김 의원을 추천한다. 이상득 의원과 이재오 전 의원에게도 물어보니 좋다고 하더라. 맡아달라’고 하더군요. 그전에는 그 누구에게서도 전화 한 통 받은 적 없습니다. 김학송 의원이 증인이죠. 원내대표 경선이 있을 시점에 나와 김학송 의원은 터키로 출장 갈 일정을 잡아놨었는데, 경선에 출마할 사람이 외국에 가려고 했겠습니까.”

    친이 핵심 삼고초려하며 제의

    ▼ 이번에는 어땠습니까.

    “마찬가지로 나는 전혀 생각이 없었어요. 다른 사람이 출마를 권유했지요.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친이 핵심에서 맡아달라고 했어요. 거절했죠. ‘내가 나가면 원내대표 하려고 박 전 대표와 갈라섰다’는 말을 들을 것 아니냐. 또 친이계 의원들에게 표 달라고 가야 하는데,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했죠.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이 왔더군요. 그 사람에게도 똑같은 이유를 대고, 여기에 더해서 ‘내가 나가면 오래전부터 출마를 준비한 의원들의 밥그릇을 뺏는 것 아니냐, 안 하겠다’고 했지요. 세 번째 제의가 왔을 때는 ‘대통령이 임기 중반기를 맞아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에 추동력을 잃을 수 있는데, (대통령의) 제일 중요한 정치파트너인 원내대표를 비주류 중 비주류인 내가 해낼 자신이 없다’고도 했지요.”

    ▼ 결국 친이 핵심에서 삼고초려를 한 셈인데, 마지막에 나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여러 이유를 댔지만 그래도 꼭 해야 된다고 강권하다시피 하더군요. 주변에서는 다들 ‘독배’라며 마시지 말라고 했죠. 그렇지만 사람의 마음은 양면성이 있지 않습니까. 나중에는 ‘아, 운명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공적인 사명감이 발동한 거죠. 하고 싶은 거만 할 수 있나, 내게는 크게 어려운 일이지만 ‘역사의 독배’라면 죽을 때 죽더라도 마셔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 원내대표 제의를 했던 친이 핵심부의 명분은 무엇이었습니까. ‘당의 화합’이었나요?

    “맞아요. ‘당신밖에 할 사람이 없다’, 그런 말이었어요.”

    ▼ 고흥길 의원을 정책위의장 러닝메이트로 짝을 지은 것도 주류 쪽의 권유였겠군요.

    “그렇죠. 주류 쪽에서 이야기하기에 ‘나도 좋다’고 했어요.”

    김 원내대표는 친이-친박 화합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묻자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친이든 친박이든 다 감정이 있겠지요. 그런데 총선 때 (친이계가 주도한) 공천도 받지 못한 내가 다 풀겠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이 못 풀 이유가 없어요. 지금은 친이도 모두 그때 공천이 잘못됐다고 인정합니다. 친박계는 물론이고 그동안 소원했던 친이계 의원들도 모두 만날 겁니다. 기회 되면 박 전 대표도 만나서 풀어야죠. 그래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최대 임무인 정권 재창출에 일조하겠습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

    “4대강 사업에 군대까지 투입하다니…무슨 혁명하나?”

    여야 신임 원내대표에게 듣는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결선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다른 정치인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영(榮)’과 ‘욕(辱)’을 두루 맛봤다.

    젊은 시절 그는 미국에 장기간 머물면서 사업가로 큰 성공을 거뒀다. 1980년대에는 뉴욕 한인회장을 지냈는데, 당시 미국에 망명 중이던 DJ를 알게 돼 인품에 매료됐다. 1984년 DJ가 설립한 인권문제연구소 등의 후견인을 맡았고,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DJ가 사면복권되고 정계에 복귀하자, 미국 영주권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1992년 14대 총선 때 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995년 민주당 후신인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을 맡아 ‘명 대변인’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1996년 15대 총선에서 당시 신한국당의 김문수 후보에게 패하는 아픔을 겪었다.

    1998년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자 그는 권노갑 · 한화갑 전 의원 같은 쟁쟁한 동교동계 실력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김대중 정부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DJ가 퇴임할 때까지 청와대 공보수석,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그가 DJ에게 직접 받은 임명장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

    하지만 그는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대북송금 사건 의혹으로 구속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건강도 급속도로 악화됐다. 그의 정치생명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18대 총선에서 전남 목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민주당 복당 후에는 정책위의장을 맡아 당내 정책통으로 활약했고, 원내대표로 선출됨으로써 이번에는 민주당의 원내전략을 진두지휘하게 됐다.

    파란만장한 정치역정을 걸어온 박 원내대표를 5월12일 오후 국회 본청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만났다. 그는 외부에서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가량 늦게 나타났다.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목소리에는 특유의 자신감과 여유가 묻어났다.

    ▼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를 대표하는 현역 의원이 야당과 여당의 원내대표를 맡아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각자 두 분(DJ와 YS)을 모시고 정치를 했으니, 변화된 시대흐름에 맞춰 (양김 정치의) 장점을 잘 살려나간다면 우리나라 정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말로 하겠다”

    ▼ 김무성 원내대표와의 호의적인 관계가 여야 대화정치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거란 기대가 큽니다.

    “김 원내대표는 오랫동안 정치를 했고, 국정운영 경험이 있으니 대화가 잘 되리라고 봅니다. 선이 굵고 바른 정치를 하시는 분이죠.”

    ▼ 취임 일성으로 ‘반대만 하는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세종시와 4대강 같은 대형 쟁점에 대한 입장 차이가 여전하지 않습니까.

    “나만 아니고, 김 원내대표도 ‘야당에 잘하겠다’‘청와대의 지시만 받지는 않겠다’고 했지요. 좋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국민들께서 민주당에 ‘왜 반대만 하느냐, 왜 장외투쟁하고 강경하게만 나가느냐’는 지적을 하고 있고, 시대도 많이 변했죠. 그렇기 때문에 야당뿐 아니라 청와대와 한나라당도 변해야 합니다. 우리가 변하겠다는데, 거대 집권 여당이라고 야당을 인정하지 않고 몰아붙이기만 하면 나라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한마디로 ‘싸우지 말고 국회에서 말로 하자’ 이겁니다.”

    ▼ 너무 대화를 강조하다보면 투쟁력이 떨어져서 당내 386세대 중심의 강경파로부터 비판을 받지 않을까요.

    “부딪칠 수도 있죠. 그러나 당내에서 많은 대화를 해서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그가 ‘대통령이 성공해야 나라가 산다’고 한 말에 김 원내대표가 감동을 하더라고 전했다. 박 원내대표는 그 말의 의미를 분명한 어조로 설명했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을 모시고 청와대에 있을 때부터 계속해서 ‘대통령이 성공해야 나라가 산다. 실패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우리가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김영삼 대통령이 실패하니까 IMF 외환위기가 오지 않았나요.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도록 모두가 애국심을 갖고 열심히 해야 합니다. 선거 때는 치열하게 싸우지만 일단 대통령에 당선되면 대통령 아닙니까. ‘우리’ 대통령이죠. 그렇다면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다만 대통령도 야당의 협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셔야 되는 거죠.”

    그는 인터뷰 다음날인 13일 오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명박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 대통령의 ‘촛불시위 반성 요구’ 발언에 대해 “대국민사과를 하고 ‘광화문 촛불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던 이명박 대통령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또 “대통령 스스로 거짓 사과였고 악어의 눈물이었다”고 일갈해 한나라당의 역공을 받았다.

    ▼ 세종시와 4대강 논란에는 어떻게 대처할 생각인지요.

    “세종시는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원안 고수 의견이 많지 않습니까. 이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부터 수도 없이 약속한 사안이니 지켜야지요. 국민들이 대통령의 말과 약속을 믿지 못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도 원안대로 가야 합니다. 4대강 정비 문제만 해도 그래요. 야당은 물론 4대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에서 국토가 결딴나고 환경을 훼손하니까 안 된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밀어붙입니까. 군인까지 동원했더군요. 지금이 무슨 국가비상사태도 아니고…. 혁명입니까?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지금 장마철이 오기 전에 빨리 공사를 추진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큰 사고가 나면 ‘야당이 반대하는 바람에 홍수피해가 났다’, 그럴 겁니까? 괜한 구실을 만들지 말고 중단해야 합니다.”

    “막후에서도 대화할 것”

    ▼ 지금까지 여야가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너무 공식 채널에만 의존한 것도 한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여당과의 막후 채널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과거에 국민들이 ‘막후 정치’라고 하면 으레 돈이 오가는 거래로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봤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여당과) 막전은 물론 막후에서도 대화할 겁니다.”

    ▼ 막후 채널 가동 필요성을 인정하는 군요.

    “그렇죠.”

    박 원내대표는 5월7일 원내대표 경선에서 김부겸(경기 군포), 강봉균 의원(전북 군산)과 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2차 투표까지 가긴 했어도 비교적 무난한 승리를 거뒀다. 여기에는 세 번째 원내대표에 도전한 강력한 라이벌 김부겸 의원이 경북 상주 출신으로 경북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사실이 약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박 원내대표는 당선 인사말에서 “당내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도마다 최고위원을 두자”고 제안하고 “김부겸 의원을 최고위원으로 지명해 대구·경북 텃밭을 갈고 다니면 지지율을 8~10% 상승시킬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소통부족과 지역구도

    ▼ 민주당의 문제 가운데 하나가 지역편중인데요. 명실상부한 전국정당을 지향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지금 민주당의 큰 문제는 소통부족과 지역구도입니다. 사실 민주당이 지역적으로 편중돼 있다는 말은 맞지 않을 수도 있어요. 민주당은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3곳에만 지역구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했지만 한나라당은 6곳에서 내지 못했죠. 그러면 어느 쪽이 전국정당입니까. 그러나 현실은 현실대로 봐야지요. 민주당이 지도부를 구성할 때 취약지역에 최고위원을 안배할 필요가 있어요. 강원, 충청, 대구·경북, 부산·경남, 제주, 이 5곳의 현역 국회의원을 최고위원으로 지명하면 그 지역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겠습니까. 그 지역에서 최고위원들의 노력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상승하면 그것이 당에 큰 힘이 되는 것이죠. 가령 선거 때마다 우리는 대구·경북에서 5~10%의 득표밖에 하지 못하는데, 10~15%로만 올라가도 그게 곧 승리하는 겁니다.”

    ▼ 다음 전당대회에서 그런 방안을 추진할 계획인지요.

    “제가 당 대표가 아니니 뭐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헌·당규를 개정할 때 그런 부분들이 반영되도록 건의할 생각입니다.”

    그는 주류와 비주류로 확연히 갈라져 있는 민주당에서 ‘무(無)계파’‘초(超)계파’로 분류된다. 야당 고위 인사는 “박 원내대표는 현재 중립지대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김무성 원내대표처럼 계파 화합의 적임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여전히 민주당에는 주류-비주류의 충돌이 심합니다. 당 화합을 위한 복안이 있는지요.

    “예를 들어봅시다. 지난 번 대표 경선 때 추미애 의원이 정세균 대표에게 패배했지요. 이후에 당내에서 추 의원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고,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당 대표와 최고위원 경선을 분리해서 생긴 현상입니다. 분리경선을 하지 말고 통합경선을 실시해서 최다 득표자가 대표를 맡고 차점자 순으로 최고위원 역할을 맡기는 게 바람직합니다. 대신 당헌·당규상의 대표 권한을 강화해야지요. 그러면 계파 간 소통도 원활해지겠죠.”

    ▼ 그런 차원에서 집단지도체제 도입도 강조했는데요.

    “소통이 문제가 되고 주류-비주류의 알력이 심화돼 있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는 방법은 대권을 꿈꾸는 우리 민주당의 훌륭한 지도자들이 지도부에 다 참여해서 집단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의견을 결정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는 취임 직후부터 원내 대책뿐만 아니라 당내 문제인 소통과 화합, 지역구도 타파를 외치며 활동 공간을 넓혀나가고 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선 ‘원내대표 역할 공간을 넘어섰다’‘뭔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돌고 있다.

    대통령은 측근이 원수

    ▼ 정치적인 목표는 뭡니까.

    “지금은 원내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제 좌우명이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당이 잘되도록 하는 것이죠. 제가 뭘 더 하겠습니까.”

    ▼ 김대중 이념을 당내에 뿌리내리는 일은요.

    “민주당은 분명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정신을 이어받고 있기 때문에 따로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 진보진영이 다시 정권을 찾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당 지도부에 대권주자들이 포진해서 서로 경쟁하고 노력하면 국민에게도 그런 모습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단결해서 잘나가면 밖에서도 좋은 인재들이 민주당에 들어오거든요, 대권주자들끼리 당내에서 소통하려고 노력하면 잘 풀릴 겁니다.”

    ▼ 차기에 가장 경쟁력을 갖춘 민주당 인물은 누구라고 봅니까.

    “아직은…. 지방선거 후에 전당대회를 치르면 그때부터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저 사람이면 되겠다’ 하는 국민적 합의가 형성되겠지요. 그러면 당원들도 국민의 지지를 받는 후보를 선택할 수 있고요. 또 우리가 잘하고 있으면 당 밖의 인사들도 훨씬 용이하게 영입할 수 있기 때문에 첫째는 우리가 잘해야 된다는 것이죠.”

    ▼ 한나라당의 유력 차기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한나라당 후보라는 생각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정치는 생물이니 두고 봐야죠. (웃으면서) 과거에 이회창 전 총재가 9년10개월 동안 1등을 했지만 마지막 한두 달을 잘못해서 두 번이나 떨어지더라고요. 이인제 의원도 그런 경우고요. 반대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세요.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이 말 끝에 박 원내대표는 해석하기에 따라선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권력역학이란 문제도 있지 않습니까. 권력이란 것은 대통령한테 잘못 보이면 살 수 있지만 (대통령) 측근한테 잘못 보이면 죽는 겁니다. 그래서 두고 봐야죠. 권력이란 게 참 이상해요 대통령은 측근이 원수고, 재벌은 핏줄이 원수입니다.”

    정치판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박 원내대표에게 ‘정치철학’이 뭐냐고 물었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그것을 존중하면서 정치를 해야 합니다. 박지원이 잘되는 게 아니라 민주당이 잘되도록 하는 것, 그리고 민주당이 집권하도록 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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