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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원색의 화가 최동열

뉴욕을 놀라게 했던 무학(無學)의 예술가, 날 선 뜨거움으로 돌아오다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원색의 화가 최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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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색의 화가 최동열
‘안 하면 모를까, 일단 하면 제대로 하는’ 그는 그림을 제대로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미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화가들의 삶은 알았다. 제 귀를 잘라버린 고흐처럼, 그렇게 뜨겁게 살아야 했다. 지프를 몰고 엘디와 함께 삶의 극한까지 달려보기로 했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 히말라야, 인도, 아프리카 곳곳까지 세계를 헤매고 다녔다. 작품에 표현하는 자연의 색과 향을 그는 책이 아닌 현장을 통해 익혔다. 거칠고 뜨거운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마침 1980년대 중반 뉴욕 이스트 빌리지는 신표현주의가 득세하는 참이었다. 입체감이나 원근법을 무시한, 투박하지만 강렬한 그의 작품은 주목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야생 화가들의 방목장’ 같던 당시 뉴욕에서 ‘야생마’ 같은 그의 작품은 정규 교육의 재갈을 문 이들이 결코 시도할 수 없는 파격으로 눈길을 끌었다.

밖이 보이는 안

이번 전시작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노랑, 빨강, 초록, 보라의 강렬한 대비는 이미 그때부터 그의 서명(署名)과도 같은 스타일로 굳어졌다. 자신의 체험보다 더 ‘쎈’ 작업을 통해 그는 조금씩 좌절과 공포의 상처를 치유했다고 털어놓았다.

▼ 특히 호평 받은 작품이 있나요.

“지금 제 침실에 걸려 있는 ‘Pig‘s pain(돼지의 고통)’이 떠오르네요. 멕시코에서 나와 엘디가 키우던 돼지의 도살 장면을 그린 작품인데, 보는 사람마다 걸작이라고 했지요.”



아쉽게도 이 작품은 직접 보지 못했다. 하지만 최동열의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수도 시설이 없는 멕시코 사막지대에 살던 시절, 그들은 돼지 몇 마리를 사서 우리를 만들고 그곳을 화장실로 썼다. 제주도의 변소와 비슷한 시스템이다.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기려니 식구처럼 지낸 돼지들의 처리가 문제였다. 도리 없이 돼지잡이들을 불러 처분하기로 했다. 혈기 왕성한 도살꾼들은 올 때부터 이미 신이 나 있었다. 한 명은 돼지를 몰고, 다른 한 명은 붙잡아 눕히는데, 돼지가 비명을 지를수록 살기가 등등해졌다.

“저는 베트남에 있었으니까 그 느낌을 알죠. 신이 나서 찌르는 그들의 눈빛. 그걸 보는 순간 과거의 공포가 생생히 살아났어요. 캔버스에 선인장 조각을 붙이고 오일을 발라 돼지우리처럼 거칠고 번들거리게 만든 뒤 그림을 그렸죠. 이 작품은 정말 쎄요. 이 이상 쎈 걸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배경은 역시 선명한 노란색이라고 했다. 돼지의 피는 아마 더욱 선명한 빨간색으로 칠했을 것이다.

“대담할 정도로 거리낌 없는 원색의 구사, 굵은 선과 명암법을 거부하는 면 처리, 단순하면서도 견고한 구도, 야성의 분위기.”

미술평론가 윤범모가 설명하는 최동열 작품의 특징이다. 멕시코 사막 한복판에서 그는 이처럼 펄펄 끓는 잔인함을 직면하는 작업을 했다. 예의 ‘밖이 보이는 안’ 시리즈를 시작한 곳도 멕시코다. 이번엔 유카탄 정글에 움막을 치고 살던 시절의 일이다. 최동열은 집 안과 밖이 명확히 갈라지지 않는 묘한 분위기에 매료됐다. 천 하나로 이뤄진 주거 공간의 특성상 내부는 자연스레 외부와 연결되고, 문을 열지 않아도 밖을 내다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안에서 밖을 바라다본다는 경계만큼은 허물어지지 않은 채 선명했다. 안과 밖이 더불어 있으면서도 명확하게 구별되는 작품은 이렇게 탄생했다. 최동열은 몇 년 후 뉴욕으로 돌아가 밤거리를 걸으며 이 주제를 좀 더 확장시켰다. 환하고 따뜻한 집 안과 어둡고 차가운 밤 풍경의 대비다.

이후 그의 작품 속에서 방은 보통 실팍한 몸피의 여성이 누드로 앉아 있는 공간이 된다. 당당히 허리를 곧추세운 주인공은 고개를 돌려 방과 맞닿아 있는 밤의 도시(nocturnal city)를 내다본다. 처음 언급한 ‘dancing urns and nocturnal city’에서 둥그런 항아리가 여성의 나체를 대신하는 것처럼 작품마다 조금씩 변주가 일어나긴 하지만, 환한 실내와 어두운 도시의 대비, 그 중심을 이루는 단단한 주체의 어울림은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패턴이다.

유목민의 삶

▼ 방 안에 앉은 여성이 밖을 내다보는 연작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안과 밖은 다르다는 거죠. 가끔 ‘그 사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죠. 저는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려요. ‘그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뭐든지 할 수 있지 않나, 이게 내 생각이에요. 나는 그를 이해할 수도, 바꿀 수도 없어요. 방 안에서 거리를 내다보듯, 그저 바라볼 수 있을 뿐이죠. 제 그림 속에서 방 밖의 세상은 방 안과 완전히 달라요. 어둡고 차갑고, 건물들은 비틀거려요. 하지만 방 안의 여성은 두려워하지 않죠. 허리를 딱 펴고 내다봐요. 색상이 밝으니까 사람들이 예쁜 그림이라고 속는 것 같은데, 실은 이거 무서운 얘기예요. 여전히 ‘쎈’ 그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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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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