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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현대사의 10대 비화 ③

얼어붙은 장진호와 중국군의 참전, 그리고 기적의 흥남철수작전

  • 오세영│역사작가, ‘베니스의 개성상인’ 저자│

얼어붙은 장진호와 중국군의 참전, 그리고 기적의 흥남철수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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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장진호와 중국군의 참전, 그리고 기적의 흥남철수작전

1952년 6·25전쟁 당시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참전한 중국군 소속 수송부대 병사들이 리어카에 탄약을 싣고 줄지어 행군하고 있다. 당시 중국군은 현대식 무기보다는 인해전술로 연합군을 압박해 전황 반전을 시도했다.

“돌아간다.”

양근사는 정찰조에게 서둘러 본대 복귀를 지시했다. 그는 나중에 비학산 전투에서 폭탄을 안고 해병대 진지에 뛰어들어 자폭함으로써 중국과 북한 양국으로부터 동시에 영웅 칭호를 받는다. 미 해병들도 이제는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한 듯 잔뜩 긴장해서 경계하고 있었다. 총공세의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양근사는 이를 악물며 본대를 향해 내달았다. 일제 기습으로 완전 섬멸을 노려야 한다. 퇴로를 차단했다고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상대는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세계 최강으로 알려진 미국 해병대다.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현지인들 말로는 금년 겨울은 유난히 춥다고 했다. 양근사는 잘됐다고 생각했다. 동장군은 든든한 우군이다. 제9병단 병사들은 대부분 만주 출신으로 추위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이대로 밀어붙이면 세계 최강이라는 미 해병대를 궤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정찰조는 날 듯 본부로 향했다.

▼1950년 11월27일 유담리

키 큰 나무들 사이로 장진호가 하얗게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제재소가 눈에 들어왔다. 5연대 3대대 G중대가 맡은 정찰구역은 거기까지다. 소대장은 손을 들어 휴식을 명했다.



M1 소총을 내려놓는 잭 라이트 상병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새어나왔다. 파일캡에 셀 파카를 입은 데다 속에는 두꺼운 방한복을 껴입어서 걷기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추위가 사정없이 살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껴입어도 동상환자가 속출했다.

무전병이 무거운 M1 소총을 휴대해야 하는 것도 불만이었다. 하지만 가벼운 카빈 소총은 추위에 약해서 불발되기 일쑤니 어쩔 수 없다. 장진호의 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상대적으로 추위에 강한 M1 소총도 밖에 오래 두면 윤활유가 얼어붙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판이다. 라이트 상병은 쉬면서도 집게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방한용 벙어리장갑은 방아쇠를 당기게끔 집게손가락을 따로 내놓게 되어 있어 자주 움직여주지 않으면 동상에 걸릴 위험이 있다. 추위는 전투의 양상도 바꿔놓았다. 총은 제대로 발사되지 않았고 수류탄도 불발이 다반사였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체력이 떨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중국군의 대공세로 서부전선의 8군은 큰 타격을 입었다고 들었는데 여기는 괜찮은 걸까? 라이트 상병도 철수명령이 떨어진 것은 알고 있었다. 중국군의 전력은 어느 정도일까? 우호적인 현지민들 중에는 미 해병대를 걱정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미 해병대가 세계 최강이라 믿고 있는 라이트 상병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는 아무래도 집에서 보내기 힘들 것 같았다. 아무렴 어떤가. 이 지긋지긋한 추위로부터 속히 벗어날 수만 있다면 라이트 상병은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출발, 귀대한다.”

소대장이 기지로 돌아갈 것을 명했다. 정찰 결과 별다른 이상은 감지되지 않았다. 저들도 미 해병대의 명성을 알고 섣불리 접근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큰 어려움 없이 철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잭 라이트 상병의 바람은 거기까지였다.

중국군의 대공세

중국군 9병단은 11월27일을 기해 일제히 공세를 단행했다. 9병단 산하의 79사단과 89사단은 유담리의 미 해병 5연대와 7연대를, 59사단은 사단 사령부가 있는 하갈우리를, 그리고 58사단은 고토리의 제1연대를 향해 일제히 맹렬한 공세를 퍼부었다. 미 육군 7사단 31연대는 80사단과 76사단의 협공으로 퇴로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미 해병과 육군의 총병력은 2만5000명. 그들을 겹겹이 포위하고 있는 중국군은 13만의 대군. 거기에 미 해병대는 동장군이라는 무시무시한 적도 상대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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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역사작가, ‘베니스의 개성상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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