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가장 근래의 인사동. 기념품 가게인 ‘한국의 미’를 빼놓을 수 없다. 내 친구 박윤주가 만든, 소산당의 누비소품들을 사러 나는 그곳에 들르곤 했다. 고등학교 동창인 그녀가 디자인한 화려한 색상의 누비지갑들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우리나라 전통떡살 문양으로 수를 놓은 컵받침과 통장지갑, 명함지갑들을 그녀로부터 이미 여러 차례 받았지만, 그동안 신세진 주위 사람들에게 하나 둘 선물하다보니 금세 없어졌다. 필요할 때마다 친구에게 달라고 말하기가 미안해, 해외에 나가거나 신간을 출판해 선물 보낼 곳이 많아지면 내가 직접 매장에 가서 물건을 골랐다. 그런데 최근에 친구로부터 ‘한국의 미’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화장품가게가 들어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 관광객들에게 싸고 품질 좋은 국산 화장품이 인기를 끌며, 인사동 거리에서 고미술품이나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는다니. 시대에 따라 거리풍경도 변한다지만, 섭섭한 일이다.
인사동 골목을 나와 종로통에 번창하는 커피점들의 간판을 세며 나는 절망한다. 서울사람들은 물 대신에 커피를 마시나. 불과 몇 년 사이에 스타벅스의 서울 지점이 100개로 불었다는 기사를 보고 나는 내 나라가 부끄러웠다. 이건 좀 비정상이다. 이쯤 되면 그들이 파는 것은 단지 커피가 아니라 아메리카 대중문화다. 반미 촛불 시위의 한켠에서 미국의 커피 체인점이 번성 중인 이 희한한 사태를 어찌 설명할꼬. 물론 나도 한여름에는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스타벅스에서 책을 읽으며 더위를 피하곤 했다. 커피가 아니라 생수를 마시며, 춘천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시간 보내기에 거기보다 좋은 장소를 알지 못하기에.
구닥다리 시인의 푸념
나는 친미주의자도 반미주의자도 아니지만, 서울의 국제화가 지나쳐서 뉴욕보다 스타벅스 간판이 더 많이 눈에 띄는 서울을 보고 싶지는 않다. 아침부터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펴놓고 게임을 하는 젊은 애들을 보노라면, 이상하게 온몸에 힘이 빠진다. 책을 읽지 않아도 좋으니, 친구와 하루 종일 쓸데없는 수다를 떨어도 좋으니, 제발 컴퓨터게임은 말아다오.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구닥다리 시인의 푸념을 조금 더 늘어놔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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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첨단기술이 아이들을 망치는 주범이다. 전자제품들과 반도체산업이 우리를 그동안 먹여살렸지만, 동시에 우리의 교육을 피폐화시켰다. 컴퓨터게임과 인터넷에 빠져, 휴대전화를 만날 손에 쥐고 사는 애들이 크면 장차 이 나라는 어찌 되려는고. 아이들의 미래가 나는 걱정된다. 부동산과 골프의 공화국. 아시아의 부자나라 대한민국. 뉴욕보다 파리보다 더욱 새것에, 새 물건에, 새 기술에 열광하는 바로 그것이 촌스러움과 교양 없음의 표지(標識)임을 사람들은 왜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