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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철녀들 26

상처를 ‘아름다운 힘’으로 빚어낸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

돌 쪼고 나무 깎고 천 꿰매며 균형과 용서와 치유를 배우다

  • 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상처를 ‘아름다운 힘’으로 빚어낸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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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아름다운 힘’으로 빚어낸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

부르주아에게 바늘과 천은 여성적 정체성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재료였다. ‘부부’라는 이 작품은 두 몸을 감싼 사슬처럼 운명적 사슬로 묶여 있으되 얼굴은 없는 부부라는 운명의 슬픈 그림자를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수학이나 기하학의 세계는 그녀의 구원처가 되지 못했다. 그녀는 대학시절 내내 자신이 진정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몰라 방황을 거듭한다. 그리고 방황 끝에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어릴 적 태피스트리를 수선하면서 집안일을 돕느라 낡아 없어진 부분들의 그림을 드로잉하면서 경험하던 심적인 편안함이 자연스럽게 미술의 세계로 이끈 것이다. 그녀는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 Arts)와 에콜 드 루브르(Ecole du Louvre)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몽마르트 화가들의 스튜디오에서 훈련을 받았다.

‘색채는 언어보다 강하다. 그것은 인간의 잠재의식에서 소통한다. 파란색은 평화와 명상, 그리고 탈출을 의미한다. 빨간색은 어떤 반박이나 공격에 대한 긍정을 상징한다. 검은색은 비탄, 회한, 죄책감, 후퇴를 말한다. 하얀색은 처음으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그것은 새로운 출발이다. 분홍은 여성적이다. 자신의 자아에 대해 호의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작가의 말 중에서)

그녀에게 그림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치유책이었다. 초창기 그녀의 그림들에서 볼 수 있는 성적 정체성의 문제는 그런 의식세계를 반영한다.

당시 그녀가 그림에서 표현한 것은 여성으로서 느끼던 억압이었다. 여인의 얼굴을 집으로 대체하고(여자는 집을 지키는 존재라는 것을 상징한다) 팔다리만 그려놓은 ‘집-여인’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여성의 누드와 집이 결합된 이 시리즈에서 신체의 주요부위인 머리 부분에 집을 배치함으로써 여성의 정체성이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제한됨을 암시한다. 그녀에게 가정은 보호와 동시에 억압을 상징한다. 그의 작품에 표현된 여성의 신체는 때로는 다리를 가지런히 모은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포즈로 어떤 한계상황에 굴종하는 모습이고, 또 때로는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며 가두려는 집이라는 공간으로부터 탈출하고자 사지를 뒤트는 저항의 몸짓으로 몸부림친다. 이런 성적 정체성에 대한 비판적 의식은 50이 넘은 나이에도 간간이 작품에서 발견된다.

상체는 온데간데 없고 길고 가느다란 두 다리만 늘어져 있는 ‘다리’(1986)라는 작품이나 뱀이 임신부를 친친 휘감은 듯한 형상의 ‘나선형의 여인’(1984) 등을 통해 부르주아는 ‘여인인 나는 자아의 존재감을 상실한 채 단지 집을 지키는 존재이자, 두 다리를 갖고 있지만 그것마저 너무 길고 가늘어 나설 수도 없는 상태이며, 아이를 내 몸속에 길러야만 한다는 숙명은 마치 뱀이 몸통을 조여놓은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외치는 듯하다.



조각으로 돌아선 이유

1938년 부르주아는 미국인 미술사학자인 로버트 골드워터와 결혼해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인생의 전기를 맞는다(그녀는 당시 골드워터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바람을 피울 것 같지 않아서’라고 말해 부정을 저지른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그녀를 오랫동안 지배했음을 보여줬다).

사실 그녀의 뉴욕행은 비정상적인 가족생활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했다. 그녀 어머니의 경우처럼 프랑스에서 기혼여성들이 남편의 정부(情婦)를 묵인하는 관행에 절망했던 그녀는 미국에서 진정한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회복하려 했다.

기대와 희망으로 시작한 뉴욕의 거대한 빌딩 숲과 거리를 비롯해 모든 것이 그녀에게 새롭고 신비한 것으로 다가왔다. 뉴욕 거리에 내버려진 가구에서 아파트 전체가 버려진 듯한 강한 인상을 받았다는 그녀는 프랑스에서는 느끼지 못하던 자유를 만끽하면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그림에서 조각으로 이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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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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