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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그림으로 전세계를 연결하는 아티스트, 강익중

“공공미술은 명랑한 혁명, 사회를 흔들어 깨우는 게 예술가 임무”

  • 뉴욕=이남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그림으로 전세계를 연결하는 아티스트, 강익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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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전세계를 연결하는 아티스트, 강익중

예술가의 길을 포기하고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한 부인 이희옥씨와 아들 기호군.

“첫 수업 시간에 담당 교수가 ‘익중, 즐길 만한가?(Ik-Joong, Are you enjoying?)’하고 묻는데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한국에서는 그림을 그린다는 게 ‘고민의 과정’이었기 때문이죠. 미국에서의 그림은 좋아해서 몰두하며 만들어지는 것이었어요.”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그림 그릴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밤에는 식료품점에서 야채를 다듬고, 아침엔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았다. 옷가게 점원과 1달러짜리 시계 노점상으로도 일했다. 지하철을 타고 일터와 학교를 오가는 때가 유일한 자유시간이었다. 어떻게 하면 지하철 안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오랜 궁리 끝에 나온 것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3×3인치’ 그림이다. 그는 지하철을 화실 삼아 작은 캔버스에 사람들의 모습과 영어 단어, 일상의 이미지를 그렸다.

변호사, 사업가로 변신한 아내

그의 20대에서 부인 이희옥(미국명 마거릿 리·49)씨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1983년 미국 웨스턴 워싱턴주립대(미술 전공) 3학년이던 이씨가 홍대에 교환학생으로 오며,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둘은 ‘UFO 클럽’을 만들어 시간을 보냈다. 엉뚱한 상상을 즐기는 두 사람의 독특한 데이트 방식이었다.

▼ 부인의 첫인상은 어땠습니까.



“작고 예뻤어요. 착하고요.”

▼ 부인 때문에 미국에 가길 결심했나요?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건 미국에서 재회한 후였어요. 1985년 결혼식을 올렸죠. 장인어른께서 저를 본 뒤 ‘밥 잘 먹는 게 마음에 든다. 어서 혼인하라’고 말씀하셨어요.”

▼ 부인이 선생님 때문에 미술을 포기하셨다고요.

“두 사람이 모두 미술에 매달리긴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아내가 양보한 거죠. 저를 위해 희생한 아내는 제가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고 지쳐 돌아올 때 가장 좋아했어요. 미술도, 사업도 200%의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게 아내의 지론이죠.”

이씨는 꿈을 포기했지만, 적성에 맞는 또 다른 일을 찾았다. 이씨는 현재 미국 부동산 개발회사 YWA의 공동파트너이자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최근 금호종금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맨해튼 AIG 빌딩을 매입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씨의 성공 뒤에는 치열한 노력이 숨어 있다. 낮에는 회사에 가고, 밤에는 브루클린 로스쿨을 다니며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 4년간 새벽 2~3시까지 공부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고생 끝에 이씨는 두둑한 배포와 협상능력을 인정받아 말단사원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파트너 자리까지 올랐다.

“아내가 처음 비즈니스 파트너들을 만나면, 상대편에서 비서라고 착각한대요. 150cm가 약간 넘는 작은 키의 동양인 여성이니까요. 하지만 아내는 첫 만남에서 상대편의 허를 찌른다고 합니다. ‘5분 스피치’로 기선을 제압하는 거죠.”

사실 이씨의 집안에도 유명한 인물이 있다. 1940~50년대 조선 최고의 주먹으로 통하던 시라소니(본명 이성순)가 그의 작은할아버지다. 강세황과 시라소니의 후예가 지금 ‘맨해튼을 움직이는 셀러브리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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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남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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