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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전문기자의 중국 미래권력 심층해부 ③

一人之下 萬人之上 리커창 국무원 부총리

최연소 승진 거듭한 ‘리틀 후’ 주석 안 부러운 ‘파워 총리’ 굳히기

  • 하종대│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전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一人之下 萬人之上 리커창 국무원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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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人之下 萬人之上 리커창 국무원 부총리

2009년 4월13일 중국을 방문한 오세훈 서울시장과 환담하는 리커창 부총리.

왕쥔타오는 “리커창이 관직에 진출한 뒤 비록 세상사에 물들었지만, 사상은 여전히 과거와 같이 날카로웠고 도량은 넓었으며 개방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고 평했다. 그러나 왕쥔타오는 중국의 자유주의자이자 톈안먼 사태의 주역이다. 따라서 중국의 현 정치체제에서 ‘사상이 여전히 날카롭고 개방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는 그의 찬사는 리커창에게 가점보다는 감점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왕쥔타오의 이런 평가와는 달리 올해 리커창의 전기를 펴낸 훙칭은 “리커창은 상급기관이나 상급자의 지시에 매우 잘 복종하는 사람”이라고 촌평했다.

본가·처가 모두 관료, 정치인

리커창은 1955년 7월 안후이성의 성도 허페이(合肥)에서 출생했다. 조적(祖籍·원적)은 출생지 허페이에서 북쪽으로 100㎞ 가까이 떨어진 딩위안(定遠)이다. 조적과 출생지가 모두 안후이성으로 안후이방(安徽幇)에 속한다. 딩위안은 안후이성의 동부지역으로 안후이성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면적도 가장 넓은 현이다.

중국 공산당 중앙지도부에서 안후이방은 막강하기 그지없다. 우선 권력서열 1인자인 후 주석이 안후이성 지시(績溪)현 출신이다. 후 주석은 상하이에서 태어나 장쑤(江蘇)성 타이저우(泰州)에서 자랐지만, 그는 자신을 소개할 때면 늘 ‘안후이성 지시현’을 강조했다. 안후이성과 장쑤성은 청나라 초기만 해도 같은 성이었는데, 인구가 너무 많아 강희(康熙)제 6년인 1667년 두 성으로 분리됐다. 우방궈(吳邦國·69)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역시 안후이성 페이둥(肥東) 출신이다. 제5세대 지도부로는 2012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한 왕양(汪洋·55) 광둥(廣東)성 서기 겸 중앙정치국 위원이 쑤저우(宿州) 출신이다. 또 중앙정치국 입성이 예상되는 왕민(王珉·60) 랴오닝성 서기도 화이난(淮南) 출신이다.

리커창의 부친 리펑싼(李奉三)은 문재(文才)가 뛰어나고 문무를 겸비한 지방 정부의 중급 간부였다. 항일 무장투쟁 시절 공산혁명에 뛰어들어 전투에 참가한 적도 있다. 사회주의 중국이 세워지자 1951년 8월 고향 딩위안의 북쪽에 인접한 펑양(鳳陽)현 현장에 임명됐다. 이어 안후이성의 원롄(文聯·중국문학예술계연합회의 약칭) 근무를 거쳐 안후이성 방부(蚌埠) 시의 중급법원장을 지냈다. 1975년 안후이성 당 위원회 문사(文史)판공실 주임을 거쳐 1980년대 초 안후이성 지방지(地方志)판공실 주임을 끝으로 퇴직했다. 그는 매우 청렴한 관리이자 엄격한 아버지였다.



모친 차오리쥔(曺麗俊)은 안후이성 펑양현 출신. 리펑싼은 펑양현 현장으로 있을 때 그녀를 알게 돼 결혼했다. 이들 사이에서 누나 리샤오칭(李曉晴)과 리커창, 남동생 리커밍(李克明) 2남1녀가 태어났다. 그런데 리펑싼에게는 전처가 있었다. 전처와 사이에 낳은 아들이 리커창과 15살 가까이 나이차가 나는 리커핑(李克平)이다. 리커핑은 안후이성 계획생육위원회 부주임을 지냈다. 리펑싼이 왜 첫째 부인과 헤어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리커창의 장인 청진루이(程金瑞)는 공청단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퇀파이 인물이다. 당초 산둥(山東)의 해방구에서 일하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초기 허난성으로 옮겨왔다. 1953년 허난성의 성도 정저우(鄭州)시의 공청단 서기로 선출됐다. 이후 1957년 5월에 열린 중국신민주주의청년단(당시엔 중국공산주의청년단을 이렇게 불렀다)의 제3차 대표대회에서 63명의 후보위원 중 33위를 차지했다. 당시 공청단의 제1서기는 후야오방(胡耀邦)이었다. 1963년 10월 허난성 공청단 부서기까지 올랐던 그는 이후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퇴직했다. 하지만 지금도 국무원 푸핀반(扶貧辦·빈곤층 돕기 판공실) 고문을 맡고 있다.

장모 류이칭(劉益淸)은 신화사 허난 분사 기자였다. 1980년 5월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가 신화사에 위탁해 창간한 잡지 ‘반웨탄(半月談)’의 총편집실 부주임까지 지냈다. 이 잡지는 1985년부터 무려 360만 부씩 팔려 ‘중화 제1의 잡지’란 명성을 얻었다. 그는 퇴직 이후에도 1993년 6월 국무원의 지도 아래 설립한 전국적 사단조직인 중국푸핀(扶貧·빈곤층 돕기)개발협회 상무이사를 맡고 있다.

누나 리샤오칭은 국무원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약칭 國資委)의 안후이성 정보중심의 주임이며, 남동생 리커밍은 국가연초전매국 부국장이다. 리커창의 형제·누이를 포함한 본가, 처가 모두 행정관료이자 정치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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