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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한인시민운동 선구자 김동석

한인 유권자 결집시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끌어내고 한미FTA 비준 압박도

  • 하태원|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triplets@donga.com |

미국 내 한인시민운동 선구자 김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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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동안 진행된 2008년 정책수련회에는 비록 경선에서 패배했지만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물론이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존 뵈이너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 등 거물급의 연설이 이어졌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부부도 비공개로 방문해 AIPAC 지도부와 만찬을 했다. 현직 상하원 의원 200여 명이 참석해 지역구에서 온 유대계 인사들과 합석하고 눈도장을 찍어 장외에서는 “의사당이 통째로 옮겨온 듯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김 전 소장은 우선 한인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투표참여율은 높지만 영어에 능통하지 못한 한인 이민 1세들을 위해 유권자 등록용지와 투표용지에 대한 한국어 서비스 실시를 요청해 받아들여졌다. 해당 선거구에 특정 언어를 사용하는 유권자가 1만명 이상 거주할 경우 해당 언어로 된 안내를 실시해야 한다는 규정을 발견해낸 뒤 시 당국에 여러 차례 요청한 끝에 관철시켰다. 17~18%에 머물던 뉴욕, 뉴저지 지역 한인 유권자의 평균 투표율이 27%까지 올라갔다. 2008년 대선에서 플러싱 지역 한인유권자의 투표율은 58%를 상회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 지역의 정치인들이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뉴저지주의 스콧 가렛(공화) 하원의원이나 뉴욕의 게리 애커먼(민주) 하원의원 등에게는 특히 한인들의 결집된 표가 당락을 좌우할 정도가 됐다.

2007년 위안부 결의안에서 ‘승리’를 얻다

한인유권자센터가 존재감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낸 것은 2007년 위안부 결의안의 미국 의회 통과로 볼 수 있다.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미국 의회에 대한 일본 로비의 영향력은 막강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수행하는 이라크전쟁에 대해 가장 큰 재정적 기여를 하고 있는 국가가 바로 일본이라는 점도 당시 집권당인 공화당 의원들을 움직이는 것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다.



김 전 소장은 로스-레티넌 의원을 집중 공략했다. 쿠바 출신으로 인권문제와 여성이슈에 민감하다는 점에 착안한 것. 김 전 소장은 “접근이 쉽지 않았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는 표현처럼 로스-레티넌 의원이 가는 행사장마다 찾아다니며 집요하게 접근해서 안면을 익혔다”고 말했다. 김 전 소장의 표현에 따르면 로스-레티넌 의원은 처음엔 들어주었고, 다음엔 대화의 상대로 여겨준 뒤 결국 위안부 결의안 처리의 당위성에 동의하고 행동에까지 나섰다. 김 전 소장은 “인연이라는 게 참. 로스-레티넌 의원이 결국엔 공화당 측 의원들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설득해주고 나아가 당시 외교위원장이던 유대계 탐 랜토스 의원과 결의안 통과를 위해서 긴밀하게 협력해줄 줄은 정말 몰랐다”고 회고했다.

위안부 결의안 채택의 또 다른 중요한 분수령은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환경소위원회에서 열린 청문회였다. 앞서 마이크 혼다 의원 등 민주당 의원 5명과 크리스토퍼 스미스 의원 등 공화당 의원 2명은 2007년 1월 일본군 성(性)노예는 일본 정부가 저지른 20세기 최대의 인신매매 사건이며, 집단 강간, 강제 낙태, 정신적 모욕, 성적 학대 등으로 신체적 장애, 학살 또는 자살이 포함된 전례 없이 잔인하고 중대한 사건이라는 내용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결의안을 제출했고 아태소위는 청문회 개최를 전격 결정했다. 레인 에번스 전 민주당 의원이 1999년 처음으로 의회에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를 이슈화한 이후 세 차례나 미국 의회에 제출된 결의안이 일본 로비에 밀려 위원회에 상정되지도 못한 채 폐기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커다란 진전이었다.

결국 미 하원은 2007년 7월30일 오후 본회의에서 일본 정부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공식 시인, 사과하고 역사적 책임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상정해 단 35분 만에 만장일치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김 전 소장은 “어떤 거대한 로비도 시민들의 풀뿌리식 운동을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올해 3월에는 미국 사회에서 미주한인들의 기여를 평가하고 인정하는 결의안 가결에도 김 전 소장과 한인유권자센터가 한몫을 맡았다. 만장일치로 통과된 이 결의안은 미국 국민은 미주한인들이 미국 사회에 기여한 매우 소중한 공헌을 인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1903년 1월13일 102명의 한인 이민자가 미국 땅에 첫발을 디딘 이후의 한인 이민역사를 다루면서 6·25전쟁의 참상, 폐허와 빈곤을 딛고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향한 이민자들의 삶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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