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전에 충분히 의견을 나눠 조율할 생각이다. 내가 독불장군도 아니고 국립현대무용단은 나를 위한 무용단체가 아니지 않으냐. 최대한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미처 놓친 부분을 볼 수도 있으니 여러 사람 얘기를 들어볼 생각이다. 사실 공연의 기본이 소통이다. 내가 가진 생각, 내 마음을 다른 사람도 함께 느끼게 만드는 거다.”
지방 공연 활성화에 대해서도 그는 신념을 갖고 있다. 지방 공연을 많이 다녀 서울과 지방 간 문화 격차를 줄여나가고, 한발 나아가 각 지자체가 자체 무용단을 만들어 문화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게 홍 감독의 목표다. 그에 따르면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규모가 큰 발레단 같은 무용단체를 만드는 건 인력 선발이나 비용 면에서 쉽지 않다. 반면 현대무용단은 발레단 규모의 3분의 1 정도면 충분히 창조적인 단체를 만들 수 있다.
“이미 지자체마다 좋은 문화공연시설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지자체 무용단 운영에 필요한 인력과 레퍼토리 공급은 우리 무용단에서 얼마든지 지원해줄 수 있다. 만약 지금 지자체가 현대무용단 설립을 선점한다면 홍보효과도 클 것이다.”
지방 공연, 해외 진출

8월17일 열린 국립현대무용단 설립 기념식. 현대무용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축제 형식으로 진행됐다.
“아직 현대무용에 대한 국내 관객의 경험이 많지 않으니까 어떤 작품이 좋은지 잘 모른다. 그런데 프랑스나 독일에서도 인기가 있었던 작품이라면 궁금증을 가지고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작품에 대한 이해는 잘 안되지만 뭔가 있는 것 같다, 뭔가 다른 것 같다며 관객이 현대무용에 대해 오픈마인드가 될 수 있다.”
그 결과 국내에 현대무용 시장이 만들어지면 대한민국 문화콘텐츠가 풍부해질 것이고, 나아가 생계를 걱정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현대무용수들이 좀 더 안정적으로 무용에 전념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될 것이다. 현대무용의 저변을 넓혀 우리나라 문화를 전체적으로 함께 끌어올리는 것이 홍 감독의 목표다. 한 걸음 나아가 국내 예술시장 전반을 제대로 키워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홍 감독은 경희대 섬유공학과 81학번으로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무용을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무용에 대해 아예 몰랐다. 1학년이 끝나갈 무렵 ‘지금 하는 공부로 평생을 살 순 없다’는 걸 깨달았다. 열정을 쏟아 평생 매달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건 음악이나 미술이었지만 넉넉지 않은 집안형편 때문에 시도를 못했다. 말을 꺼냈다가 부모에게 “쓸데없는 소리 말라”는 핀잔만 들었다. 무용을 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의 첫마디도 “그게 돈이 얼마나 드는데”였다. 대구 출신으로 보수적인 어른 눈에 아들이 무용을 한다는 건 얼토당토않은 소리로 들렸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