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경로로 수집된 첩보를 바탕으로 군 정보당국은 2005년 초부터 2006년 중반까지 “김정남이 후계에서 완전히 탈락했다는 외부평가는 사실과 다르며, 여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여러 차례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다. 유교사회 특유의 장자 우선 사고방식이나 아직 후계를 거론하기에는 이른 정철·정은의 나이도 고려한 판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군 정보당국의 김정남 ‘밀착 마크’에 대해 국정원 측은 수차례에 걸쳐 항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군사정보에 한정돼 있는 해당기관의 업무범위를 넘어선 월권행위라는 골자였다. 국정원 측은 해당 분야 실무진을 통해 김정남의 e메일 등에 접근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관련 자료를 이첩하라고 요청하는가 하면, 군 정보당국이 확보한 신디의 신병을 공동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해 관철했다는 후문이다.
국정원이 날카로웠던 이유

김정은이 다닌 것으로 알려진 스위스 베른 쾨니츠 구의 힐데스가르트슈트라세의 리베펠트 슈타인횔츨리 공립중학교.
같은 해 여름에는 군 정보당국이 북한측의 해킹을 역추적해 그간 우리 측 안보부처 주요 인사들의 e메일 아이디와 패스워드가 상당수 북측에 노출된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를 보고받은 청와대가 사이버보안 매뉴얼 강화와 대대적인 방어시스템 구축에 나서는 등 사안이 크게 불거지자, 북측의 해킹 공격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던 국정원 실무 담당자들이 인사상 책임을 지는 사태가 줄을 이었다. 이 무렵 국정원 관계자들로부터 “군 정보당국이 군사문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분야까지 업무를 확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남북 간 유화국면 조성에 주의를 기울인 당시 정부의 특성상 로열패밀리 주변에 너무 깊게 접근하는 공작이 평양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러한 종류의 정보활동을 국정원 상층부나 청와대에서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음은 당시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부분. 김정남에 대한 남측 정보기관들의 강도 높은 추적이 만에 하나 평양으로 새나갔다면 후폭풍을 선뜻 가늠하기 어려웠으리라는 것이다.
제도적으로만 보자면 ‘국가종합정보기관’인 국정원은 ‘부문정보기관’인 군 정보당국에 대해 압도적 우위를 갖는다. 군 정보당국이 수집한 정보도 국정원의 종합분석 과정을 거쳐 청와대에 보고하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 군 정보당국이 추진하는 주요 공작사업은 국정원장에게 보고해 부호를 발급받아야 하며, 부호를 받지 못한 이른바 ‘비인가공작’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불법이다. 군 정보당국이 공작사업을 위해 사용하는 자금 역시 국정원 예산에서 나오므로 국정원은 해당 기관에 감사권도 갖고 있다. 쉽게 말해 구조적인 종속관계인 셈이다.
그러나 이론은 이론일 뿐, 역대 정권은 정보의 교차확인이나 권력집중을 방지하기 위해 중앙정보기관과 군 정보기관 사이의 경쟁을 내심 방조해왔던 것이 사실이다.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갈등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음은 잘 알려진 일. 이렇듯 장시간 누적돼온 긴장관계 탓인지, 국정원이 여러 차례 이의를 제기한 뒤에도 후계와 관련한 군 정보당국의 정보활동은 계속된 것으로 전한다. 이 시기 군 정보당국이 김정남에 관해 수집한 정보들은 국정원을 거친 다음 청와대에 보고되는 대신 별도의 경로를 통해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된 후에야 공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