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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명, 北 후계자를 찾아라!’ 국정원과 군 정보당국의 10년 첩보전쟁

김정남 거처 잠입해 서류가방 서울 공수…졸업논문 제목으로 ‘김정은 후계수업’ 확인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특명, 北 후계자를 찾아라!’ 국정원과 군 정보당국의 10년 첩보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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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김정은으로의 세습 가능성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는 사실은, 이 무렵 외부에서 김정철 후계자설이 대세였던 것과 비교하면 사뭇 뜻밖이다. 2002년 8월 조선인민군출판사가 만들어 2003~04년 전방부대에 배포한 ‘학습제강’의 내용이 확인되면서 학계와 언론에서는 김정철의 후계자 지명이 기정사실화한 바 있다. ‘존경하는 어머님’의 김 위원장을 향한 한없는 충성심을 강조하는 학습제강의 배포는 사실상 고영희를 우상화하는 내용이었고, 이는 자연스레 고영희가 나은 첫아들인 김정철 후계설을 급부상하게 만드는 계기였다.

더욱 강도 높은 ‘증거’도 레이더망에 걸렸다. “정철 동지를 당 조직부 실무학습기간이 끝나면 6개월간 고급 당학교 과정을 거치도록 하라고 하셨다”는 김 위원장 서기실(비서실)의 일보(日報)가 공개된 것. 2003년 3월 작성된 것으로 전해진 이 일보의 내용은 김정철로의 후계구축 작업이 내부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하는 것이었고, 이후 이 자료가 일본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 김정철 후계설은 정점을 찍었다.

관련 첩보들이 쏟아지면서 국정원 내부에서도 김정철 후계 의견이 제기됐지만, 그러나 최종적인 평가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당시 국정원 고위 관계자들은 전한다. 우선 해당 자료의 신빙성도 의심스러웠고, 진본이라 해도 이 문장만으로는 후계체제 구축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 오히려 후계를 둘러싸고 권력층 내부에서 벌어지는 기선잡기나 충성경쟁의 산물일 가능성도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국정원은 이 시기 “김 위원장의 아들 가운데 누구도 공식직위에 임명된 바 없으며 후계구축에 대한 공식절차는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평가를 청와대와 국회 정보위원회에 공통적으로 제출한 것으로 확인된다.

김정남의 ‘마지막 싸움’

오히려 후계 문제와 관련해 국정원을 가장 당혹하게 했던 것은 2000년대 후반 들어 급격히 활발해진 김정남의 움직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4년 봄 실각했던 장성택 전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2006년 1월 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재기에 성공한 것이 첫 번째 신호였다. 앞서 설명한 e메일 해킹을 통해 정보당국은 김정남이 장성택의 실각 기간 그의 가족들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음을 확인한 상태였다. 장성택-김경희 부부의 딸로 당시 프랑스에 머물고 있던 장금송이 사촌관계의 김정남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특기할 만한 징후는 김 위원장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 불거졌다. 심혈관 장애가 발생했던 2007년 5월에는 김정남이 이를 치료할 독일 의료진을 섭외해 함께 평양에 들어간 사실이 국정원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2008년 10월말에는 역시 아버지를 치료할 프랑스의 뇌신경외과 전문의를 만나기 위해 파리를 찾은 김정남이 일본 언론의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아버지의 건강 이상을 계기로 김정남이 평양을 드나들며 후계자 지명의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 배경이었다. 이를테면 ‘최후의 싸움’이었던 셈. 정부 내부에서는 김정남의 후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던 군 정보당국의 평가가 마지막으로 힘을 얻은 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장기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김 위원장의 선택은 3남이었고, 2009년 1월에는 김정은으로 후계체제를 구축하라는 교시가 당 조직지도부에 하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남이 중국 베이징에서 언론과 만나 “후계문제는 아버지만이 결정하실 일”이라고 언급하며 ‘금기의 선’을 넘은 것이 바로 이 무렵의 일. 이후 ‘김정은 체제 구축’을 위한 헌법개정과 조직개편, 핵심간부 인사와 내부 선전작업 등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올해 9월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임명으로 공식화됐음은 잘 알려진 바와 같다.

최근 정부 내부에서는 김정은 후계가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정보당국의 ‘실수’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그간 그의 이름을 ‘김정운’으로 알고 있었던 것은 대북(對北)정보가 부실한 탓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그간 청와대와 국회에 제출된 국정원의 보고가 일관되게 ‘김정운’을 사용해온데다, 심지어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국정원에서 올린 대통령 친견용 회담 준비자료에도 ‘김정운’으로 돼 있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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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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