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꾼은 좀체 입을 열지 않는다. 자신의 얘기는 되도록 빼달라고 한다. 보이는 그대로의 삶이지 더 이상 숨은 철학이 있을 리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우리(사진기자와 나)를 그 마을에 데려다준 택시기사가 이렇게 말했다.
“취재하러 간다꼬예? 저렇게 많이 배운 사람이 농사짓고 사는 것은 장려할 일이 아니지예. 배운 사람은 배운 사람대로 도시에서 할 일이 따로 있는 거잖아예. 큰 공부해놓고 농사지으면 학비가 아깝잖아예.”
그 말에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는데 아이들의 밥상을 보고 있자니 답이 절로 정리된다. 머릿속의 생각을 제 삶 속에서 직접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백번 선언하고 구호를 외치는 것보다 한걸음 실천이 시급하다는 것을 말없이 보여주려는 것이다. 논농사가 수월치 않음에도 고집스럽게 논을 부쳐 스스로 만들어낸 식량으로 아이를 키우겠다는 것이 나무꾼의 철학임을 나는 어렵지 않게 납득한다.
돌배나무의 선물

막내 찬유와 함께 한 햇살.
우린 날마다 화학비료, 제초제, 방부제, 착색료, 조미료, 방사선이 범벅된 밥상 앞에 앉게 됐다. 이런 식품을 공급하는 거대 곡물회사와 식품회사, 유통회사에 피땀 흘려 번 돈을 갖다 바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이건 목숨의 존엄에 대한 모독이다. 그러나 개인의 힘으론 좀체 그 사슬을 끊기도 어렵다.
나무꾼이 비료 없이 퇴비만 줘서 키운 무는 크기가 그저 갓난아기 팔뚝만했다. 서울서 씨름선수 장딴지만한 무만 보던 내 눈에 그건 미니어처처럼 장난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맛은 기가 막혔다. 달고 야물고 향긋했다. 그건 배추도 마늘도 깨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제초제 안 쓰고 멀칭도 안 해요.”(나무꾼)
“멀칭이 뭐예요?”(나)
“비닐 씌우는 농법이지요. 그것 하면 김매는 품이 안 들지만 잡초 뽑기 싫으면 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둬요.”(나무꾼)
“인제 한 10년 했으니 베테랑 농부가 됐나요?”(나)
“아니요. 아직 얼치기예요. 농사는 어릴 때부터 몸에 배지 않으면 진짜 꾼이 되긴 힘들어요.”(나무꾼)
햇살네 집 앞엔 늙은 거목이 여러 그루 있다. 아무렇게나 솟은 품이 누가 일부러 심은 게 아니라 어디선가 씨가 날아와 절로 솟아난 것 같다. 물론 햇살 가족이 이 마을에 들어오기 전부터 뿌리박고 자라던 놈들이다. 뽕나무는 여름에 오디를 무진장 쏟아내고 돌배나무는 가을에 탱자만한 열매를 비처럼 뿌려준다.
“오디는 한번 털면 20㎏는 족히 떨어져요. 한 해에 대여섯 번 하니까 아마 100㎏쯤 수확할 걸요.”
아이들의 좋은 간식이지만 다 먹을 순 없으니까 햇살은 가마솥에 불 때서 오디잼을 만든다. 그걸 알고 몇 해 전부터 여기저기 친구들이 이 야생 오디잼을 주문해온다.
돌배도 마찬가지다. 그냥 먹긴 알이 잘지만 돌배열매를 잔뜩 주워 읍내의 즙 내리는 곳에 가져다주면 겨우내 아이들 마실 음료가 된다. 야생열매이니 과수원 배보다 효능이 좋을 것도 확실하다.
“돌배를 줍자 하면 아이들이 무척 좋아해요. 큰아이 현승(맑음)이가 동생들 데리고 단숨에 두 박스쯤은 거뜬히 주워요. 물론 찬유는 두 개 주워 넣고 세 개는 밖으로 버리지만….” 돌배나무 진액은 정말 달콤했다. 따로 노동하지 않고도 절로 자연이 내미는 선물을 아이들과 함께 받아 안는 것이 지금 햇살이 지리산에서 누리는 특혜다. 게다가 돌배나무엔 그물 침대를 매어놓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오후엔 거기 누워 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