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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교수가 쓰는 ‘시대정신과 지식인’ ②

중국식 유교질서 추구한 사대주의자 김부식…한민족의 역사적 정체성 구현한 민족주의자 일연

김부식과 일연

  • 김호기│연세대 교수, 사회학 kimhoki@yonsei.ac.kr

중국식 유교질서 추구한 사대주의자 김부식…한민족의 역사적 정체성 구현한 민족주의자 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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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유교질서 추구한 사대주의자 김부식…한민족의 역사적 정체성 구현한 민족주의자 일연

고려시대 대표적 역사서인 삼국사기(왼쪽)와 삼국유사.

이 가운데 민족주의는 의식 및 가치의 중핵을 구성해 자본주의와 국민국가를 포함한 사회 전 영역에 대한 영향이 심대했다. 특히 식민지 시대를 경험했던 비서구 사회에서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에 맞서서 민족해방운동을 이끈 이념적 토대였으며, 식민주의로부터 광복된 이후에도 새로운 국가와 사회의 건설에 중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민족주의란 한마디로 민족의 자율성 및 독립성을 특권화하는 이념적·정치적 기획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모더니티가 시작된 이후 민족주의는 산업화, 민주화와 함께 가장 강력한 시대정신을 이뤄왔다. 특히 식민지 시대의 경험은 민족주의에 결코 쉽게 훼손할 수 없는 가치를 부여했으며, 광복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른바 ‘산업화 민족주의’나 ‘민족적 민주주의’와 같은 말들이 이를 단적으로 웅변한다.

민족주의와 관련된 문제 중 하나는, 그렇다면 이러한 민족주의가 과연 언제부터, 그리고 어떻게 형성돼왔느냐에 있다. 사회이론에 따르면, 민족주의 이론은 크게 영속주의적 시각과 현대주의적 시각의 두 흐름으로 나뉜다. 영속주의적 견해가 민족을 과거로부터 이어진 영원하고 불변적인 존재로 본다면, 현대주의적 견해는 민족을 ‘모더니티의 발명품’으로 간주한다. 달리 말해, 민족의 기원을 고대나 중세에서 찾는 게 영속주의라면, 근대화가 민족주의를 만들고 이 민족주의가 민족을 창조했다는 것이 현대주의다.

구조사적 시대정신으로서의 민족주의

민족과 민족주의를 둘러싼 사회학적 토론을 검토하는 게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이 글의 관심은 과연 우리 사회에서 시대정신으로서 민족주의가 갖는 역사적 기원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있다. 서론이 다소 길어진 감이 있지만, 신라 시대 원효와 최치원에 이어 고려 시대 김부식(金富軾)과 일연(一然)을 다루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부식과 일연은 각각 우리 고대사를 대표하는 역사서인 ‘삼국사기(三國史記)’의 편찬자이자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저자다. 김부식이 전형적인 유학자라면 일연은 대표적인 불교 승려다. 김부식이 고려 시대 중기에 활약한 지식인이라면, 일연은 고려 시대 후기에 활동한 지식인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자주 비교되듯이, 두 사람의 특징 및 삶의 배경 또한 흥미로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먼저 김부식의 일생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김부식의 본관은 경주, 자는 입지(立之)이고, 호는 뇌천(雷川)이며,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국자좨주 좌간의대부 근(覲)의 셋째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제인 부일, 부필과 함께 문명을 날렸다. 그가 주로 활동한 시기는 숙종과 인종 때였다. 1096년(숙종 1년) 과거에 급제했으며, 인종 시대에 와서 여러 관직을 두루 맡았다.

우리 역사에서 김부식이 널리 알려진 것은 두 번의 사건을 통해서다. 첫째, 1135년(인종 13년) 묘청, 정지상, 백수한 등 이른바 서경 세력이 난을 일으키자 김부식은 이를 평정하는 원수로서 삼군을 지휘했다. 반란군을 진압한 공로로 그는 공신에 책록되고, 이름도 긴 검교태보·수태위·문하시중·판상서이부사·감수국사·상주국 겸 태자태보로 승진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최정점에 도달했다.

김부식이 우리 역사에서 이름을 뚜렷이 남긴 두 번째 일은 ‘삼국사기’를 편찬한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김부식은 묘청의 난에서 함께 활약한 윤언이와 갈등을 빚으며 결국 사직하게 됐다. 바로 이 시기에 그는 인종의 명을 받아 ‘삼국사기’를 편찬했다. 사관들이 삼국의 역사에 대한 사실을 기록했지만, 김부식은 체재를 작성하고 사론을 직접 집필함으로써 ‘삼국사기’의 대표 저자가 됐다. 만년에 불교 수행을 하기도 했던 그는 1151년(의종 5년)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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