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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전문기자의 중국 미래권력 심층해부 ⑧

개방성·개혁성 과시하는 ‘퇀파이’의 차세대 유력인사 5인

  • 하종대│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전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개방성·개혁성 과시하는 ‘퇀파이’의 차세대 유력인사 5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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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력 역시 칭하이 일색이다.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74년 9월 칭하이성 구이더(貴德) 현 허둥(河東) 향 궁바(貢巴)대대(大隊)에서 지식청년으로 일하기 시작한 그는 1975년 7월 칭하이성 상업청 통신원을 거쳐 1977년 2월 베이징대에 입학하기 전까지 칭하이성에서 지냈다. 대학 졸업 뒤에는 또다시 칭하이성 시닝으로 돌아와 1980년 1월 성 상업청 정치처 간사, 1984년 12월 칭하이성 우진자오뎬(五金交電) 화공공사 당위 서기, 1986년 4월 성 상업청 부청장, 1991년 2월 상업청 청장 등 줄기차게 칭하이성에서 경력을 쌓았다. 1993년 2월 성장 조리(助理)로 승진한 그는 1994년 7월 부성장, 1999년 8월 대리성장을 거쳐 2000년 1월 마침내 칭하이성의 최고 행정직인 성장을 거머쥐었다.

당시 그는 만 42세10개월로 전국 성장 가운데 최연소였다. 1987년 1월 랴오닝성장에 임명된 리창춘(李長春) 정치국 상무위원은 만 42년11개월로 그보다 1개월 늦다. 리커창 부총리는 만 43세 때 대리성장을, 만 44세에 성장을 달았다. 40대의 나이로 중국 공산당 최고정치권력기구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상무위원이 된 것도 개혁개방 이후 후 주석이 처음이다.

칭하이성의 대리성장과 성장, 당 서기를 거치는 8년간 그는 칭하이성의 발전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가 성장 및 당 서기로 재직하던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칭하이성의 지역총생산(GRDP)은 263억위안(약 4조4439억원)에서 784억 위안(약 13조2472억원)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그가 성장만을 중시한 것은 아니다. 그는 급속한 성장보다 지속적인 발전을 더 원했다. “동부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반복하지 마라.” 그는 칭하이성 간부들을 모아놓고 자주 이렇게 강조했다. 그가 원한 것은 초고속 성장보다 환경과 성장의 조화였다. 그는 소득증대에 도움이 되더라도 공해산업은 최대한 억제했다. 대신 칭하이성의 천연지형을 이용한 수력발전과 소금, 관광업에 치중했다. 그는 2005년 7월 한국의 이수성 전 총리가 칭하이성을 방문했을 때 “환경을 보호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킨 한국의 경험을 배우고 싶다”고 말할 만큼 환경과 성장의 조화에 애착을 보였다.

그래서인지 2000년 전국 31개 성 가운데 21위였던 1인당 GDP는 2006년 23위로 되레 떨어졌다. 인구의 20%가량은 여전히 절대빈곤선 아래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전국 정협) 회의가 열리던 2006년 3월 그는 기자들과 만났을 때 갑자기 ‘쾌락지수’ 얘기를 꺼냈다. “칭하이성은 소득도 적고 여러 가지 조건도 안 좋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항상 즐겁게 하려 합니다. 높은 고원에서 마음까지 유쾌하지 못하면 병을 얻기 쉽지요.” 그는 기자들에게 “칭하이성은 비록 경제적으로는 못 살지만 각 소수민족과 촌락, 가정이 모두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고 소개했다.



그가 이처럼 고속성장보다 환경보호를 더 중시한 것은 칭하이성은 자원의 보고로 환경을 훼손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키지 않아도 발전 잠재력이 무한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칭하이성은 ‘중국의 물탱크’로 불릴 만큼 수자원이 많고 매장 석유 2억2000만t, 천연가스는 1575억㎥에 달한다.

하지만 그는 이제 산시성의 발전을 책임지고 있다. 산시성 시안(西安)은 그의 조적(祖籍)이 있는 곳이다. 출생지가 칭하이성이라면 출신지는 산시성인 셈이다. 그는 지난해 3월 산시성 당 서기로 부임한 직후 가진 직원과의 상견례에서 “앞으로 전력을 다하겠다”며 출신지 발전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지방 당 서기 중에서 표준 중국어인 푸퉁화(普通話)에 약한 유일한 사람이다. 사회 경력 역시 칭하이성을 제외하고는 산시성 서기가 전부다. 후 주석과 같은 퇀파이지만 중앙 무대로 진출하기가 쉽지 않고 중앙으로 진출하더라도 역할이 크게 제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인구 560여만명의 칭하이성에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 그지만 인구가 6.8배 많은 산시성에 가서는 별다른 정치적 업적을 쌓지 못하고 있는 점도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자오 서기는 2002년 10월에 열린 제17차 당 대회 당시에도 중국 정계에서 중앙정치국 위원 후보로 집중 거론됐지만 끝내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1년 뒤로 다가온 제18차 당 대회에서는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중앙정치국 진입이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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