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호

“명분 없는 희생의 반복 패권 유지 위한 고집만 남았다”

위키리크스, 펜타곤 페이퍼, 그리고 미국의 전쟁

  • 글·멜 거토프| 포틀랜드주립대 명예교수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입력2011-02-22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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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 ‘뉴욕타임스’에 펜타곤 페이퍼를 유출한 장본인인 대니얼 엘스버그는 이라크와 아프간전쟁 관련 기밀문서에 접근할 수 있는 정부 관리들에게 자신의 당시 결단을 따르라고 종용해왔다. 그리고 지난해 7월 미 육군 소속 병사 한 명이 결국 그의 선택을 따랐다. 위키리크스는 이를 뉴스 매체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공개했고, 결국 당시의 엘스버그가 그랬듯 이 병사 역시 현재 기소된 상태다. 이번 유출사건에 관련된 모든 당사자의 목표는 하나였다. 미국이 더 이상 참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막고 현재의 상황을 뒤엎는 것이다.

    물론 아프간전쟁이 제2의 베트남전쟁은 아니며 펜타곤 페이퍼와 위키리크스 문서도 성질이 다르다. 위키리크스 문서는 현장에서 바라본 전쟁에 대한 견해를 보여줌으로써 미국 정부의 아프간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전쟁으로 인해 현지의 민간인들이 치르고 있는 대가를 부각하고 있다. 반면 펜타곤 페이퍼는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이 작성한 고급 비밀문서였고, 특히 정부 지지율이 날로 추락하는 가운데 막대한 손해만 야기하던 베트남전에 관해 당시의 최고위급 관료들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한눈에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두 문서가 갖고 있는 분명한 공통점은 미국 정부 관료들이 국내외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쉽게 패배를 인정하고 전쟁을 중단할 수 없는 곤란한 상황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 문서들은 미국 대외정책의 현주소와 미래에 관해 일곱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반복되는 거짓말

    “명분 없는 희생의 반복 패권 유지 위한 고집만 남았다”

    ‘펜타곤 페이퍼’의 유출자 대니얼 엘스버그 전 미 해군 중령(오른쪽)과 위키리크스 문서의 유출자로 의심받고 있는 브래들리 매닝 미 육군 일병.

    첫째, 미국의 지도자들이 대중 앞에서 과시하는 낙관주의는 전쟁의 실상을 들여다보고 나면 거짓임이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여러 지표를 종합해볼 때 상황은 비관적이라는 사실을 지도자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전황과 전쟁수행 전망에 대해 국민이나 의회에 거짓말을 일삼는다. 펜타곤 페이퍼를 통해 드러났듯 당시 베트남에 있던 미국의 최고위 관료들은 모두 유례없는 미군의 파상공세 속에서도 베트콩이 성공적으로 신병을 모집하고 있으며, 사기 또한 높고, 점차 점령구역을 넓혀가고 있음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관료들 중 누구도 언론과 의회 앞에서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은 남베트남 정부가 쇠락하고 있음을 솔직하게 밝히려 하지 않았다.



    똑같은 상황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고스란히 반복된다. 미국의 정부 및 군 고위관계자들은 최종적인 승리를 낙관하고 있지만, 유엔이나 NGO 등 현지에서 활동하는 중립적인 관찰자들은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군이 주장하는 상황 호전의 지표는 베트남 전쟁 당시와 놀랍도록 흡사하다. 지도상의 안전지대 범위가 확대되고 있으며, 훈련을 받은 아프간 정부군의 수가 늘고 있고, 반군세력의 사상자 수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립적인 소식통에 따르면 탈레반 반군의 수는 증가하고 있고 공격빈도 또한 더욱 잦아졌으며, 거의 모든 지역에서 군사활동이 활발하다. 예전에는 안전했던 지역이 관료들의 왕래가 위험할 정도로 변했다는 것이다.

    둘째, 이렇듯 만연한 낙관주의는 미국의 개입을 끝내는 문제와 관련해 잘못된 예측을 낳는다.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개입한 이래 남베트남 정부가 몰락할 때까지 전쟁에 관한 주된 정치적 논리는 확전이었다. 패배하는 순간까지 철군은 선택사항이 아니었고 이를 건의했던 소수의 정부관료는 배척당했다. 전쟁 상황이 악화될 때마다 ‘적정’ 수준의 증파와 더 많은 폭격이 대세로 떠올랐다.

    아프간전쟁의 양상도 유사하다. 2009년 2월 병력 1만7000명 증파를 결정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3만명 추가 증파를 결정했다. 이로써 2010년 겨울 현재 아프간에 주둔 중인 미군 병력은 대략 7만8000명에 달하고 사상자 수는 1300명을 넘었다. 이후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중순까지 조속히 철군하겠다고 밝혀왔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실제로 2010년 5월 오바마 대통령 본인이 기자회견을 통해 “2011년 7월에 미군이 아프간에서 갑자기 철군하지는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베트남전쟁 당시의 미국 대통령들처럼 오바마 대통령도 미군의 동맹군인 아프간 정부군이 미국의 자리를 대신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장담컨대 2012년에도 미국은 여전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5만 규모의 병력을 유지할 것이고, 이들이 부대 내에서 편하게 군사적 조언이나 해도 무방한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다.

    누구의 지지도 얻지 못하는

    셋째, 미국은 이러한 전쟁에서 외로운 보안관 역할을 맡고 있다. 항상 함께 싸울 동료들을 찾아다니지만 정치적·군사적 전략의 절대적인 주도권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미국은 이들의 돈과 병력이 필요할 때만 협의(를 가장한 압박)에 나서곤 한다. 이러한 동맹관계는 결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영국군과 네덜란드군은 아프간에서 철수했고 캐나다군과 독일군 역시 곧 철군할 예정이다. 최근 공개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가 추가적인 군사지원을 고려하고 있다고 하지만, 1979년 아프간을 침공해 1989년까지 이 나라를 통치했던 러시아가 다시 아프간 문제에 개입하는 상황을 현지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넷째,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 테러리즘(혹은 공산주의)을 종식시켜 평범한 현지 주민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선사한다는 미국의 현란한 수사는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지지하는 현지 정부들은 부패했으며 국민과 소통하지 못한 채 파벌싸움을 일삼는다. 이 때문에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 지도자들은 베트남 정부에 대한 믿음 없이 전쟁을 이어나갔고, 백악관의 계속된 개혁 압박은 번번이 실패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은 아프간에서도 반복되는 듯하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친척들이 부패 메커니즘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를 개혁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전쟁 승리라는 목표 앞에서 뒷전으로 밀리고 만다. 또한 카르자이 대통령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역이용할 수 있는지도 명확히 알고 있다. 미국이 전쟁 수행을 위해 신뢰하지도 않는 정부와 협조해야 하는 이러한 상황은 파키스탄에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지고 있다.

    다섯째, 미국은 전략 이행을 위해 번번이 비밀 군사작전을 활용한다. 펜타곤 페이퍼는 1954년 직후부터 미국이 북베트남과 이웃국가들을 상대로 수행한 각종 비밀작전의 역사를 열거한 바 있다. 이러한 작전은 의회에 거의 보고되지 않았지만 전쟁을 지속, 확대,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위키리크스 문건 또한 과거 미군과 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이 수행한 암살 작전이나 준(準) 군사행동을 폭로하고 있다.

    사라진 전쟁의 명분

    여섯째, 전쟁이 진행될수록 미국의 국익과 이상 사이의 괴리는 점점 커진다. 펜타곤 페이퍼는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잃어가던 당시 미국 관료들이 점차 베트남전을 미국의 의지를 시험하는 장으로 인식하게 됐음을 잘 보여주었다. 해당 국가 국민이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본래의 명분 대신, 세계 패권국이자 자유세계의 지도국으로서 미국의 명성을 지켜나가는 것이 전쟁 개입의 주된 목표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강경노선만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라는 위상에 걸맞으며 이를 위해 게릴라들에 대한 강도 높은 보복 폭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백악관 핵심참모들의 입에서 공공연히 거론된다. 1965년 3월 존 맥노튼 당시 국방장관 보좌관은 “베트남전쟁의 목표 가운데 70%는 미국의 치욕스러운 패배를 피하기 위함이고, 20%는 (남베트남) 영토를 중국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함이며, 10%가 베트남 국민에게 보다 자유로운 삶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對)아프간 정책에서도 미국의 명성이나 이미지, 국제적 리더십은 여전히 매우 중요한 고려대상이다. 이를 위해 카르자이 정부가 아무리 형편없는 국정을 편다 해도, 아무리 많은 자원이 전쟁 수행에 투입된다 해도, 탈레반을 패퇴시키는 일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목표가 돼버렸음을 2010년 5월 발표된 미 국가안보전략보고서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전 때와 마찬가지로, 아프간전에 대한 계속되는 재정 투입에 반대함으로써 이러한 전쟁목표에 반기를 드는 의원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곱째,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언론의 자유는 다시 공격받는다. 펜타곤 페이퍼가 공개됐을 당시 닉슨 행정부 관료들은 펜타곤 페이퍼는 단지 지나간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은밀히 불법행위를 감행하고 유출 관련자들을 재판에 회부하는 등 이 문서의 출판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지금 오바마 행정부의 일부 관료들은 위키리크스 문건이 단지 뉴스용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하고 있지만 역시 다른 한편으로는 연루된 미군 병사와 위키리크스 주요 관계자들의 위신을 깎아내리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해당 미군 병사의 성적 취향이 언론의 추측기사 소재로 등장했을 정도다. 위키리크스의 창립자에게 벌어졌던 일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매우 잘 알고 있다. 문서에 담긴 내용이 마치 어제 일이나 다름없이 엄청난 현재적 함의를 갖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 관료들은 사실을 솔직히 털어놓기보다는 베트남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중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논쟁의 틀을 바꾸는 데 주안점을 둔다. 유출된 문서를 통해 확인된 정책의 문제점이 아니라 유출 자체로 인해 국가안보에 어떤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 속에서 미 국방부는 위키리크스에 보유한 문서를 반납하라고 요구하고 동시에 언론사들에도 문서 공개를 거절하라고 요구한다. 물론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미국 측 정보원들의 이름이 밝혀지면 피해가 발생하겠지만, 그러한 실수가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했던 오판이 오늘날 고스란히 재현되게 만드는 구실로 작용해서도 안 될 것이다.

    반대자들의 입을 막으려는 정부의 관행은 그 역사가 유구하다. 이는 단지 유출문서의 공개를 금지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베트남전 초기 케네디 행정부는 전장 상황과 관련한 정부의 공식설명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들을 썼던 언론인들을 현장에서 쫓아내고자 시도한 바 있다. 정부 관점에 충실한 기사를 쓰는 순종적인 기자를 찾는 경향은 당시는 물론 현재도 일반적인 일이다. 언론 검열이 강화되거나 국가안보라는 명목으로 새로운 형식의 규제책이 도입되는 최근의 흐름도 마찬가지다. 위키리크스 건만 해도 연루된 병사 외에 기밀 정보를 다루던 두 사람의 다른 내부 고발자들이 간첩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현재 국방부는 정부가 이미 출판을 허가한 바 있는 아프간전 관련 전직 정보부 요원들의 회고록을 모두 사들이려 하고 있다. 쿠바 관타나모의 미 해병대 기지에서 열린 군사재판 1심에서 4명의 기자가 말도 안 되는 근거로 추방조치를 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터널의 끝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희생당하는 것은 진실만이 아니다. 전장 한가운데에 갇힌 민간인들과 죽거나 부상당한 군인들이야말로 가장 큰 희생자다. 전쟁의 와중에서 ‘마을을 구하기 위해 마을을 파괴하는’ 일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과 맞먹는 양의 폭탄을 일주일 만에 베트남에 퍼붓는가 하면 고엽제를 뿌려 정글을 고사시킴으로써, 베트남전은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으로 남았다. 1965년부터 1975년까지 남베트남 국민 40만~100만명이 사망했다. 라오스와 캄보디아, 북베트남 사망자까지 합치면 숫자는 200만명으로 늘어난다. 미군 사망자 수만 해도 5만2000명에 달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무인정찰기의 공중폭격, 비밀 특공작전, 보안용역업체의 작전 수행과정에서 판단 착오로 사망한 민간인의 수는 2004년부터 6년간 2만명에 달한다. 그간 보도된 것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이로 인해 많은 아프간 사람이 당초 해방군으로 불렸던 미군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탈레반과 알 카에다가 초래한 민간인 인명피해 또한 만만치 않다. 참전군인들 또한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해 막대한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당했다. 한 예로 미 육군은 2008년 9월부터 1년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살한 현역 군인의 수가 160명이며 이는 앞서 미국이 참전한 어떠한 전쟁 때보다 많은 수치라고 밝힌 바 있다.

    펜타곤 페이퍼 유출 사건이 베트남전의 종전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위키리크스 유출 문건 또한 아프간전쟁을 끝내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펜타곤 페이퍼 사건은 베트남전이 결코 이길 수 있는 전쟁이 아니며 잘못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 가장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라는 점을 확인시켜 줌으로써 반전운동의 정당성을 증명했다. 오늘날의 상황은 다르다. 반전운동은커녕 대중은 아프간전쟁을 국가의 최우선 논의과제로 인식하지도 않는다. 지금 미국의 중심 화두는 일자리와 경제이고, 2010년 10월 ‘뉴욕타임스’와 CBS가 공동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프간전쟁을 중요한 국가적 이슈라고 꼽은 국민은 전체의 3%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위키리크스 유출 문서는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40년 전 펜타곤 페이퍼가 보여주었던 진실과 똑같은 교훈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의 어두운 터널 끝에 빛은 없으며 새로운 국가를 건립하겠다는 계획은 실패했다. 안보는 풍전등화의 위기상황에 처했고, 미군은 너무 오래 머물고 있으며, 미국이 지지하는 현지 정부는 간신히 권력의 끈에 매달려 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사이의 협상을 성사시키는 것뿐이지만, 현실은 어떠한 합의도 아프간 국민에게 실질적인 평화와 경제적인 기회를 가져다줄 가능성은 없다는 우울한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 ‘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문제 전문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과정을 주목한다’는 기조하에 아시아 지역 주요 현안에 관한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의 공론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웹사이트는 http://globalasia.or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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