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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시대의 클래식 캐릭터 - 마지막회

‘만족’을 모르는 욕망의 무한 질주

보바리 부인 vs 채털리 부인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만족’을 모르는 욕망의 무한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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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근원적 결핍의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

영원히 만족하지 못하는 여자, 평범하고도 너무 ‘시골스러운’ 자신의 삶에 절망해 불륜을 저지르고 쇼핑 중독에 빠지는 여자 엠마 보바리는 이후‘허영과 사치’를 묘사하는 수많은 작품의 원조가 되었다. 엠마처럼 욕망의 결핍을 영원히 긍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늘 ‘과대망상증’ 환자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욕망의 근원적인 결핍 그 자체를 긍정할 수 있다면, 그의 ‘증상’은 ‘또 다른 나를 향한 지나친(?) 사랑’ 쯤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보바리 부인은 쇼핑 중독, 신상 중독에 걸린 현대 여성의 ‘바람직하지 못한’ 롤모델이기도 하다. 쇼핑 중독의 근저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욕망, 인간의 속물근성이 자리 잡고 있다. 르네 지라르는 인간의 속물근성이란, 자기의 진정한 존재가 의식의 영역에 나타나지 못하게 하고, 자신으로 인정하고 싶은 더욱 잘생긴 인물이 끊임없이 거기 나타나게 하기 위해 사용된 방법들의 집합이라고 말한다. 속물근성의 밑바닥에는 ‘보다 마음에 드는 자기 이미지’를 향한 서글픈 환상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보바리 부인’과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모두 ‘욕망’과 ‘육체’의 대명사로서 보이지 않는 커플처럼 맺어졌지만, 실은 두 작품의 분위기는 정반대로 흐른다. 보바리 부인이 끊임없는 결핍과 불만, 아슬아슬한 살얼음판 같은 치명적인 욕망의 충족 과정을 격정적으로 보여준다면, 채털리 부인은 삶의 근원적 결핍을 해소하는 따스한 평화로서의 성, 보다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세계의 회복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엠마는 그녀가 ‘욕망의 발톱’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조용히 인내해주길 바랐던 사람들 사이에서 외롭게 죽어가지만, 콘스탄스는 산지기와의 사랑을 통해 완전히 다시 태어나는 기쁨을 맛본다.

‘보바리’의 에로티시즘이 도저히 결핍을 모르는 격정, 어떤 자극으로도 완전히 충족되지 않는 치명적인 결핍을 시사한다면, ‘채털리’의 에로티시즘은 궁극적인 원시적 평화, 아담과 이브가 추방되기 전의 잃어버린 낙원을 찾으려는 인류의 원초적 욕망을 상징한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작가 로렌스는 자신이 공들여 완성한 필생의 역작이 ‘풍기문란’이라는 명목으로 제대로 출판도 되지 못하고 재판에 회부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는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는 그곳’이야말로 자신이 예술의 타깃으로 삼아야 할 그 부분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탄식한다. “빌어먹을, 코니(콘스탄스)와 멜러스의 몸을 나뭇잎으로라도 가려야 한다니 얼마나 끔찍스러운 일인가!”



보바리 부인의 불안이 더 완벽한 남자, 더 아름다운 물건을 향한 욕망의 결핍에서 우러나온다면 채털리 부인의 불만은 문명화와 상품화로 만족될 수 없는 원초적 삶을 향한 그리움, 생명의 원시적 카니발이 숨 쉬는 태고의 세계를 향한 그리움이다. 두 여인은 모두 현대인이 문명사회에서는 결코 만족시킬 수 없는 근원적인 욕망을 대변하는 존재다. 보바리 부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결핍을 치유할 수 없었고 늘어나는 빚을 청산하지 못해 결국 죽음을 선택했다면, 채털리 부인은 세련되고 지적인 남편의 감옥 같은 단정함이 아니라 사투리를 즐겨 쓰는 촌뜨기 산지기의 원초성과 육체성을 선택함으로써 자기 안의 해방을 만끽한다. 보바리와 채털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욕망에 민감한 현대인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행복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현하는 현대인에게, 아무리 채워도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근원적 결핍을 상기시키는 존재가 아닐까.

우리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비극인 것조차 모르고 있다.

- D.H. 로렌스, ‘채털리 부인의 사랑’ 중에서

신동아 201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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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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