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호

“연예고시 통과하면 고된 연습, 노예계약… 산 첩첩 물 겹겹”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1-02-23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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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고시 통과하면 고된 연습, 노예계약… 산 첩첩 물 겹겹”
    “키워준 게 누군데 배신이냐”(기획사) vs “일한 만큼 정당하게 대접받고 싶다”(연예인)

    인기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에 이어 ‘카라’까지 소속사와 법률 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두 그룹의 송사는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은 시점에, 계약 내용과 수익 분배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멤버 다섯 명이 2대 3으로 갈라져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꼭 닮았다. 가요계 관계자들은 “아이돌 가수들이 데뷔 전 긴 연습 기간을 거쳐야 하는 우리나라의 특성상, 앞으로도 이런 분쟁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연습생 시스템이 ‘신(新)한류’를 일군 일등공신이라는 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동방신기’의 다섯 멤버는 손가락 끝까지 맞추는 치밀한 군무를 추면서도 흔들림 없는 가창력을 선보인다. ‘카라’가 일본에서 눈길을 끈 것도 늘씬한 몸매의 다섯 미녀가 일사불란하게 엉덩이춤을 추며 라이브를 소화한 덕분이었다. 일본 아이돌이 결코 흉내 내지 못하는 이 경지 뒤에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아이돌 그룹을 탄생시킨 기획사와, 혹독한 연습을 통해 스타의 자리에 올라선 연예인이 있다.

    “예전에는 ‘지나가다 우연히’ 캐스팅 디렉터의 눈에 띄어 연예계에 데뷔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1세대 아이돌인 ‘핑클’의 성유리만 해도 학교 사생대회에 갔다가 기획사 관계자를 만나 가수가 됐죠. 요즘엔 상상도 못할 얘기입니다. 대형 기획사 공개 오디션 때마다 지원자가 수천 명씩 몰려들잖아요.”

    1990년대 중반부터 대형 연예 기획사의 매니저로 일하다 최근 독립한 제작자 A씨는 “오디션에 합격한 뒤 연습생까지 거쳐 데뷔하는 과정이 워낙 힘들기 때문에 요새는 연예인 되는 걸 ‘연예고시 본다’고 한다”고 했다.



    A씨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지난해 케이블 채널 m.net이 주최한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2’에 134만명의 지원자가 몰린 것만 봐도 우리나라에 스타를 꿈꾸는 이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연예계 데뷔를 원하는 이들이 오디션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카페 ‘별을 꿈꾸는 아이들’은 회원 수가 7만8000여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기획사 오디션을 통과하기 위해 보컬 학원·댄스 학원 등에서 사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의 1차 목표는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 등 대형 기획사의 연습생이 되는 것. 실력이 있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JYP에 따르면 가수 임정희조차 공개 오디션에서 두 번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자세를 높이 평가받아 세 번째 도전에서 합격했단다. YG의 여성 아이돌 그룹 2NE1 멤버 씨엘은 오디션 기회가 주어지지 않자 YG 사무실 앞에서 양현석 대표가 나올 때까지 한없이 기다렸다. 며칠간 기다리다 직접 데모테이프를 전달한 끝에 연습생으로 선발됐다.

    “연예고시 통과하면 고된 연습, 노예계약… 산 첩첩 물 겹겹”

    부당한 수익 배분 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소속사에 전속계약무효소송을 낸 그룹 카라.

    ‘어차피 공부 안 할 애’

    기획사의 연습생이 되면 예비 연예인 생활이 시작된다. 개인의 특성에 맞게 구성된 보컬, 댄스, 연기, 외국어 커리큘럼에 따라 아이돌 가수가 되기 위한 전문 교육을 받는 것. 중·고생의 경우 1주일에 2~3일 정도 연습실에 와서 2~3과목의 수업을 듣도록 하는 게 보통이다. 그 후 자체 평가를 통해 가수로 데뷔할 연습생을 선발한다. 연습생이 모두 가수가 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진짜 경쟁이 시작되는 건 이때부터다.

    “다들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몰라요. 학교 가서 오전 수업만 받고 연습실 오는 애들이 정말 많아요. 그러고는 하루 종일 연습하는 거죠. 기획사에서 공문을 보내주면 ‘현장학습’으로 조퇴 허가를 받을 수 있거든요. 연습생으로 뽑혔다고 하면 선생님이나 친구들도 ‘쟤는 어차피 공부 안 할 애’ 하는 식으로 여기는 거 같아요.”

    한 기획사의 연습생으로 지내다 중도 포기하고 지금은 보컬 강사로 일하는 B씨는 “주말이나 방학 때는 아예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연습생도 많다”고 했다.

    공허한 청소년기

    이들이 이처럼 연습에 매달리는 이유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데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 평균적으로 연습생 가운데 절반 정도가 데뷔에 성공한다고 한다.

    SM은 주기적으로 연습생 발표회를 열어 실력을 점검한다. YG도 2주에 한 번씩 외국어 시험을 치르는 등 꼼꼼한 평가 시스템을 운영한다. 이 과정에서 발탁된 이는 2~3년 만에 데뷔 기회를 잡는 반면, 눈에 띄지 못하는 이는 고되고 기약 없는 연습생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소녀시대 멤버들의 평균 연습기간은 5년이지만, 멤버 가운데 수영과 제시카 효연 등은 7년을 연습생으로 지냈다. 아이돌 그룹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최근에는 기대 수준이 높아지고 연습 기간도 길어지는 추세다. 2PM의 경우 데뷔 전부터 “JYP에서 덤블링하면서 라이브하는 그룹이 나온다더라”는 소문이 퍼질 정도였다.

    대형 기획사들은 연습생 등록과 동시에 이들에게 출결 카드를 지급한다. 연습실 출퇴근 시간이 기록되는 이 카드는 해당 학생의 땀과 열정을 평가하는 자료가 된다. JYP 관계자는 “원더걸스 멤버 선예는 초등학교 때 연습생으로 들어와 데뷔할 때까지 7년 동안 한 번도 연습을 빠진 적이 없다. 그런 열정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YG 소속 ‘빅뱅’의 멤버 태양도 연습생 시절 몸이 아파 병원에 실려갔다가 링거를 맞자마자 연습실로 돌아와 다시 연습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연습에 전념하기 위해 아예 학교를 그만두는 이도 늘고 있다. 현재 활동 중인 인기 아이돌 그룹 멤버 가운데서도 빅뱅의 승리와 태양, 동방신기의 영웅재중, 원더걸스의 소희 등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2NE1 멤버 공민지는 중학교 졸업 후 아예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에 우려를 표시한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또래 집단과 떨어진 상태에서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연습생들이 훗날 어떤 불안과 고통을 겪게 될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전속 계약의 덫

    “연예고시 통과하면 고된 연습, 노예계약… 산 첩첩 물 겹겹”

    SM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 분쟁으로 개별 활동을 하고 있는 동방신기 멤버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왼쪽부터)

    상시적인 스트레스도 이들을 괴롭힌다. YG 연습실에는 ‘가수가 되기 이전에 사람이 먼저 돼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SM 연습생들은 회사에서 누구를 만나든 먼저 큰 소리로 인사하도록 교육받는다. 회사 내 일거수일투족이 평가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 탈출구조차 없이 끝없는 경쟁에 내몰리는 연습생들의 유일한 목표는 “어서 빨리 연습생 생활을 끝내고 데뷔하는 것”이다. JYP에서 8년간 연습생으로 지내다 그룹 ‘2AM’으로 데뷔한 조권은 방송 인터뷰에서 “내겐 청소년기의 추억이 없다. 다시는 나처럼 오래 연습하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이돌 멤버들이 고되고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통과하는 동안, 기획사는 ‘미완의 대기’가 ‘한류 스타’로 성장하도록 지원을 쏟는다. 교육기간에 드는 레슨비와 식비, 운영비 등을 전액 부담하고, 평가를 통과한 연습생들이 새로운 아이돌 그룹 결성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면 합숙훈련비 등 추가 비용도 투자한다. 최근까지 대형 기획사에서 인기 걸 그룹의 매니저를 맡았던 C씨는 “큰 회사의 경우 성형수술까지 시켜준다. 본인이 원해서 하는 것은 본인 부담이지만, 기획사가 권할 때는 100% 회사 부담으로 하는 것이 관례”라고 했다. 팀의 콘셉트를 정하고 그에 맞게 작사가, 작곡가, 안무가, 스타일리스트, 매니저를 조합해 팀을 짜는 것, 이와 어울리는 멤버 개개인의 개성을 잡아주는 것도 기획사 몫이다. C씨는 “아이돌 그룹은 사실상 기획사의 아이디어에 따라 창조되는 일종의 상품”이라고 했다.

    5인조 걸그룹 ‘파이브걸스’의 소속사 코어콘텐츠 미디어의 김광수 대표는 “이 과정에서 들어가는 비용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파이브걸스’는 연습 기간 매달 투자비가 숙소 임차료 140만원, 레슨비 500만원, 차량 유지비 200만원, 식비 200만원, 의료비 100만원 등 1800만원에 달했다. 데뷔를 앞두고는 뮤직비디오 촬영비, 의상 제작비, 작곡료, 녹음비 등이 별도로 들어갔다. 이 그룹이 데뷔 후 실패할 경우 투자비용은 고스란히 기획자의 몫으로 남는다.

    “연예고시 통과하면 고된 연습, 노예계약… 산 첩첩 물 겹겹”

    2PM은 아크로바틱을 하면서 라이브 공연을 하는 실력파 아이돌 그룹으로 유명하다.

    기획사와 아이돌 그룹 멤버가 전속계약을 맺는 것은 이처럼 아직 미래가 불투명할 때다. 동방신기 멤버 시아준수는 초등학생 때 SM 연습생으로 선발돼 트레이닝을 받다가 중학생 때인 2000년 전속계약을 맺었다. 계약기간은 데뷔 후 10년으로 정하고, 그 사이 계약을 해지하려면 투자액의 3배와 예상 이익금의 2배를 지불하기로 했다. 시아준수와 SM 사이의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세종의 임상혁 변호사는 “나중에 계약 내용을 변경해 계약기간을 데뷔 후 13년으로 늘렸다. 사실상 남자 아이돌 가수가 활동할 수 있는 전 기간을 계약기간으로 잡은 것이다. 위약금 액수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연습생 시절, 기획사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데뷔에 목마른 상황에서 어떻게 그 계약을 거부할 수 있었겠나”라고 했다. 이런 계약은 동방신기 사례에서 보듯 아이돌 그룹이 성공한 뒤 분쟁의 불씨가 된다.

    동방신기의 경우 “계약기간 중 SM의 판단으로 결정되는 일을 성실하게 해야 한다”는 조항도 문제가 됐다. 스케줄 거부권이 없는 동방신기는 하루 사이에 한국과 일본을 왕복하는 등(표1) 무리한 스케줄을 강행해야 했다. ‘SM 불공정 계약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 정해임 대표는 “팬들이 동방신기의 스케줄을 조사한 결과, 멤버들은 68개월간의 활동기간에 지구 여섯 바퀴 반을 돈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 일본을 거점으로 하고 중국 대만 등 범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하느라 휴식 기간은 1년에 2주일도 안 됐다”고 주장했다.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연예고시 통과하면 고된 연습, 노예계약… 산 첩첩 물 겹겹”
    이 과정에서 수익 배분에 대한 불만도 쌓였다. 동방신기 전속계약서에 따르면 각각의 멤버들은 연예활동으로 발생하는 모든 수입 중에서 운영비를 제외한 수입의 12%를 받는다. 이때 운영비는 연예활동을 위한 모든 경비, 즉 ‘교통비 및 숙박비, 식대, 메이크업 및 코디네이터 비용, 무용단 및 필요 무대인원 비용 등 실제 연예활동시의 일반적인 필요비용과 매니저 및 로드매니저의 월급, 숙소에서의 모든 생활비와 연예활동을 위한 트레이닝비’ 등이다. 수익에서 이 모든 비용을 제외한 금액의 40%를 기획사가 가져가고, 멤버들은 나머지를 5분의 1씩 나눠 가진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예계 인사는 “해외 활동이 많아지면서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방송 출연 같은 스케줄로 한국 일본 중국을 오갈 경우, 고되게 일하고도 수입은 마이너스가 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동방신기는 활동 중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을 오갈 때는 머리에서 서로 다른 스위치를 켜야 한다. 언어가 다를 뿐 아니라 방송 환경과 우리가 부를 노래, 안무도 전혀 다르다”고 한 적이 있다. 이처럼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부담이 되면서 정작 실익은 없는 스케줄이 반복되는 데 불만이 쌓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C씨는 “기획사는 동방신기가 방송에 출연함으로써 얻을 게 많다. 후배 가수를 함께 출연시킬 수 있고, 홍보도 된다. 하지만 멤버들 입장에서는 ‘회사가 우리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 수도 있다”고 했다.

    ‘드디어 해외에서 대박을 만들어 상상치도 못한 실적을 올렸단 소리에 가벼운 걸음으로 급여 날 회사로 들어갔어. … 그때 받은 정산서엔 실적이 마이너스 4000만원이. 내가 본 것이 잘못 본 거라 생각하고 다시 확인을 해보니 모든 것이 경비다 젠장, 그 많던 게 다 경비로 빠졌다.’

    SM엔터테인먼트에 전속계약부존재확인소송을 낸 동방신기의 세 멤버가 발표한 ‘이름 없는 노래 part 1’의 가사다. 카라 역시 기획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며 “지난해 상반기 ‘루팡’으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멤버 1인에게 돌아온 수익은 월평균 14만원에 불과했다”고 수익 배분에 대한 불만을 내비쳤다. 또 “허리 골절상을 입은 멤버를 무리하게 무대에 세웠다”며 무리한 스케줄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한 계약 내용도 문제 삼았다. 반면 두 사건 모두에 대해 기획사 측은 “연예인 지망생을 스타로 만들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서로 합의에 따라 계약을 맺었는데 인기가 올랐다고 해서 이를 무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아이돌 그룹 계약을 둘러싼 분쟁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려면 아이돌 시스템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는 “당장 계약서 안에서 불공정한 내용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거대 기획사를 통하지 않고도 스타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아이돌 연예인들이 ‘상품’이 아닌 ‘인간’으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학과 공부를 하고 친구를 사귀며 나이에 맞는 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할리우드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에는 ‘만 7세 이상 미성년자는 하루 8시간 이상 일할 수 없고 그중 3시간은 학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내용이 법에 명시돼 있다. 영국 노동법도 ‘16세 이하 연예인은 9시간30분 이상 촬영장에 있을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김동민 한림예술고등학교 교사는 “어린 청소년들이 연예계 데뷔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게 만드는 시스템은 오래갈 수 없다. 우리 연예 사업의 중심에 있는 10대 연예인들이 이후의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공부와 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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