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 문명의 교차로에서 ④

삭발한 개들이 저지른 야수적 살인이 남긴 것

기독교 광신주의와 고대문명의 종말

  • 송유레 서울대 HK교수·서양고대철학 esong@snu.ac.kr

삭발한 개들이 저지른 야수적 살인이 남긴 것

2/6
잃어버린 고대문명

삭발한 개들이 저지른 야수적 살인이 남긴 것

파로스 등대.

알렉산드리아는 기원전 331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건립됐고, 대왕의 사후 이집트에 수립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수도가 되었으며, 기원후 641년 아랍군에 의해 함락되기까지 천년의 고도(古都)로서 위엄을 자랑했다. 건립된 지 오래지 않아 알렉산드로스의 도시는 고대문명의 새로운 중심지로 급성장했다. 그런데 이 신흥 도시가 품어 안은 문명의 이상은 더 이상 협소한 도시국가(polis)의 테두리 안에서 전개된 고전기 그리스 문명이 아니었다. 바야흐로 인종적, 민족적, 지역적 경계를 넘어 하나의 세계 문명을 지향하는 ‘헬레니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정치사에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동방원정에 나선 기원전 334년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왕인 클레오파트라 7세가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에게 패한 기원전 30년까지의 약 300년간을 ‘헬레니즘 시대’라고 한다. 알렉산드로스의 동정(東征)으로 출현한 헬레니즘 문명은 고전 그리스문명과 고대 동방문명이 융합돼 창출된 것으로, 문명사에서 ‘유럽과 아시아의 결혼’으로 일컬어진다. 헬레니즘은 에게 해 중심의 그리스 세계를 ‘서(西)’로 하고, 이집트를 포함한 고대 오리엔트 세계를 ‘동(東)’으로 하는 동서 문명 통합의 산물이었다. 헬레니즘은 철학에서는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로, 종교에서는 제설통합주의(syncretism)로 대변된다. 실제로 헬레니즘 시기 이름난 철학자의 대다수는 그리스 본토가 아니라 시리아, 이집트 및 아랍 출신이었으며, 신들의 이름이 상호 교환되기도 했고, 이집트-그리스 신(神) 사라피스와 같이 하이브리드 신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지중해의 진주’로 불린 알렉산드리아는 헬레니즘 세계의 최대 무역항이었다. 지중해 연안 도처로부터 배가 들어왔다. 어떤 배들은 몬순 바람을 이용해 인도의 서해안에서 홍해를 거쳐 비단과 향료를 들여오기도 했다. 기원전 3세기 기록에 따르면, 배 한 척이 한 번에 향료 60상자, 코끼리 상아 100t, 흑단 135t을 실어 나르기도 했다. 인도와 중국을 ‘동’으로 하고 헬레니즘 세계를 ‘서’로 하는 확장된 의미의 ‘동서무역’은 고대인들의 세계 지평을 현저히 확대했다.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인이 이집트에 세운 ‘그리스’ 도시였지만, 그리스인 외에도 이집트인, 페니키아인, 아랍인, 누비아인 등 다양한 인종적, 민족적,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어깨를 비비고 사는 곳이었다. 이처럼 ‘고대의 뉴욕’이라 할 만한 알렉산드리아는 고대사에서 최대 규모의 유대인 공동체가 자리한 곳이기도 했다. 기원전 3세기 초엽,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그리스말을 사용하는 유대인을 위해 학자 70여 명에게 히브리어 구약 성서를 그리스어로 옮기도록 요청했으며, 그 결과 유명한 ‘70인역 성서’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클레오파트라 여왕의 패전과 자살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막을 내리고 이집트는 로마제국의 속국이 된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는 헬레니즘의 유산을 바탕으로 고대 후기 문명을 주도하게 된다. 또한 이 도시는 한때 로마 다음으로 가장 큰 도시였다. 기원후 1세기 중엽에는 인구가 100만명에 달했다. 이 시기에 성(聖) 마르코가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해 교회를 세운다. 이로써 기독교가 이교(異敎)와 유대교와 함께 치열한 문명의 각축전을 벌이게 된다.

알렉산드리아의 찬란한 고대문명을 대표하는 것으로 단연 등대와 도서관을 꼽을 수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파로스(Pharos) 등대는 고도의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40층짜리 고층 빌딩이었다. 이 고대판 마천루는 기원전 283년에 세워져 기원후 1300년대 중반 지진에 의해 쓰러질 때까지 약 1600년간 항구를 드나드는 배들을 안전하게 인도했다. 우뚝 선 파로스의 맞은편 항구 주변에 왕궁이 있었고, 바로 근처에 무세이온(뮤즈의 신전)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 안에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놓여 있었다.

삭발한 개들이 저지른 야수적 살인이 남긴 것

지중해 세계 지도.



2/6
송유레 서울대 HK교수·서양고대철학 esong@snu.ac.kr
연재

신동아 ·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 문명의 교차로에서

더보기
목록 닫기

삭발한 개들이 저지른 야수적 살인이 남긴 것

댓글 창 닫기

2022/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