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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크로스(CROSS) 인문학 ④

이수현과 체 게바라를 추억하며 진정한 이타주의 세상을 기다린다

  • 장석주| 시인 kafkajs@hanmail.net

이수현과 체 게바라를 추억하며 진정한 이타주의 세상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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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는 혁명가답게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를 이끈 정치지도자들의 책, 쿠바혁명에 관련된 책들을 즐겨 읽었다. 그런 도서목록은 그의 이력과 부합한다. 그가 물리학과 수학 책들, 프랑스 시와 네루다의 시들을 애독했다는 사실은 좀 의외의 일이다. 뒷날 많은 사람이 증언하고 있듯 그는 마르크스주의적인 교조적 관점에 갇힌 사람이 아니다. 게릴라 생활을 할 때도 그는 배낭 속에 마르크스와 레닌의 책과 더불어 프로이트의 책들을 함께 갖고 다니며 읽었다. 그는 인류학과 사회학, 심리학, 철학 등 다양한 책을 읽으며 삶과 세계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 유연한 사유, 더 높은 수준의 도덕 감정으로 진화한 사람이었다.

이타주의, 인류의 꿈

모든 생물은 자기 생존의 이익에 부합하는 행동 원칙을 따른다. 이런 행동 원칙에 따르는 것은 그게 생명을 보존하고 제 유전자를 닮은 후손들을 퍼뜨리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게 종족 보존과 번식의 숭고한 사명을 띠고 태어난 생명체의 숙명이니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이수현과 체 게바라는 자기를 죽여 남을 고통과 죽음에서 해방시킨 사람들이다. 즉 이기주의와는 정반대의 길을 간 사람들이다. 이타주의는 자기 이익보다 다른 사람의 이익을 우선한다. 이타주의(altruism)라는 말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851년에 오귀스트 콩트가 처음 만들어 썼는데, 그 뿌리는 이탈리아어 ‘altrui(다른 사람)’이다. 이타적 행동은 자기 이익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이 행해진 행동 일반을 가리킨다. 타자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 행위자에게 이익이 돌아온다면 그것은 엄격한 뜻에서 이타주의 행동이라고 할 수 없다. 전우의 목숨을 살리려고 자신을 희생하는 건 이타적 행동의 전형적인 사례다. 사회생물학에서는 자신의 생존에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하게끔 하는 유전자가 자연선택되고 후대에 전달된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반면에 자신의 생존에 불리한 행동을 하도록 촉진하는 유전자는 불가피하게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사회생물학에서 이타성에 대해 “행동하는 생물에게는 분명하게 해가 되면서, 동시에 밀접하게 연관되지 않은 또 다른 생물에게는 이익을 주는 행동”(로저 트리그, 앞의 책)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어떤 생물 개체군에서 자신의 생존 이익에 부합하는 이기적 행동을 이끄는 유전자들이 자신의 생존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도모하는 이타적 유전자보다 그 개체군을 선점하고 후대에 전해질 가능성이 보다 높아지는 게 당연할 것이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드킨스는 유전자의 층위에서 이기주의와 개체 수준의 이기주의를 분리해서 받아들인다. 그는 “개체 수준의 이타성이 유전자 수준의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일 수 있다”(리처드 도킨스, ‘무지개를 풀며’)고 말한다.

이런 이타주의는 다른 동물에게서는 희귀하고 상대적으로 사람에게서 자주 출현하는 특질이다. 사람은 어떻게 포식자와 피식자들이 경쟁을 하는 이 지구 생태계에서 일반적인 생물학적 본성, 즉 남을 죽여 자기를 살리는 행동을 넘어서서 자기를 죽여 남을 살리는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만이 생물학적 본성을 넘어서는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회생물학에서는 어떤 종의 개체들이 종종 저와 같은 종의 개체들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종의 생물들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하는데, 그게 제게 이익이 되지 않을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이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행동과 선택들이다. 이것을 사회생물학자들은 자연선택과 호혜적 이타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궁극적으로 이것들은 저마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보다 항상적으로 더 좋은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에 그런다는 것이다. 다른 곤충이나 동물들에게 자기 종에 전혀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행동과 선택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종의 번식이라는 주어진 본성을 배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수현과 체 게바라의 의로운 행동의 삶을 회고하며, 진정한 이타주의에 관해 생각 한다. 그들의 이타주의는 생물학적 본성론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 본성으로 모든 인간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과 인간 본성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어떤 행동도 그것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주장은 팽팽하게 맞서 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 생물학적 본성론으로 풀어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수현은 제 조국도 아닌 일본에서 생판 모르는 한 일본인을 구하려는 행동 때문에 제 생명을 잃는다. 그는 분명 그런 위험을 인지하면서도 자발적으로 그런 행동을 취했다. 체 게바라는 자기를 위해 살기보다 자신도 잘 모르는 라틴 아메리카의 고통받는 민중을 위한 삶을 선택한다. 그들은 진정한 이타적 행동을 한 것이다.



이수현과 체 게바라를 추억하며 진정한 이타주의 세상을 기다린다
장석주

1955년 충남 논산 출생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입선

동덕여대, 경희사이버대 출강

저서: ‘느림과 비움의 미학’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몽해항로’ 등


이타주의는 분명 인류의 유전자에 있는 형질이고, 그것은 살아남아 복제되고 진화되어야만 할 우성 형질이다. 나는 더 많은 이타주의자와 함께 살고 싶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자크 아탈리는 미래의 세계는 이타주의자들이 지배한다고 예언한다. 이타주의 인간은 더 진화된 인류의 꿈이자 꼭 와야만 할 당위적 미래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 마이클 S. 가자니가 | 윤리적 뇌 | 김효은 옮김 | 바다출판사, 2009

● 강영안 | 타인의 얼굴 | 문학과지성사, 2005

● 장 크로미에 | 체 게바라 평전 |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2000

● 로저 트리그 | 인간 본성과 사회생물학 | 김성한 옮김 | 궁리, 2007

신동아 201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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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 kafka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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