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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숙제까지 해주는 수행비서, 레슨비·의상비 요구 땐 거부 못해

말 많고 탈 많은 예체능계 도제교육 실태

  • 김수영| 자유기고가 futhark@hanmail.net

자녀 숙제까지 해주는 수행비서, 레슨비·의상비 요구 땐 거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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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폭행은 잘하라는 격려?

자녀 숙제까지 해주는 수행비서, 레슨비·의상비 요구 땐 거부 못해

김인혜 전 교수는 시어머니 팔순 잔치에 제자들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1대1 수업은 도제식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이다. 비싼 학비를 내는 것도 바로 이 실기수업을 받기 위해서다. 다소 폐쇄적인 이 실기수업이 사실은 전공 교육의 핵심이다. 그러나 가위를 집어던지거나, 인신모욕을 하거나, 의자를 발로 차거나, 물건을 얼굴에 집어던지는 등 스승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교수가 수업을 할 경우에는 그 폐쇄성이 독이 되어 나타난다.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 교수님 방에서 1대1로 전공실기 수업을 받아요. 일반 과에서 수십 명이 강의실에서 와글대며 수업을 받는 것과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어요. 1대1 수업에서 교수님의 권위는 절대적이죠. 자존심을 긁으며 야단을 치든, 욕을 하든 묵묵히 받아낼 수밖에 없어요. 물리적인 폭행은 없었지만 언어로 하는 폭행은 폭행이 아닌가요? 울면서 나온 적도 있어요.” (연세대 음대 졸업생 B씨)

독설로 유명한 교수, 학생을 무시하는 듯 차가운 분위기로 수업하는 교수, 뺨 때리기를 일삼는 교수, 음담패설을 즐기는 교수 등 학생들 사이에는 대학별로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

무용수업에서는 음악보다 신체접촉이 더 빈번하다. 관행 중 하나는 머리채 잡아 올리기다. 교수는 제자의 자세를 교정하기 위해 정수리 부분의 머리카락을 위로 잡아당긴다. 그러면 반사적으로 척추를 쭉 펴기 때문이다. 자세가 나쁠 경우 척추를 따라 손바닥으로 때리는 방법도 동원된다.



“대학에 올 정도의 애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트레이닝을 받아왔기 때문에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지 않고 말로 해도 충분합니다. 목을 젖히지 말라고 앞으로 꺾어버리거나 등이나 배를 멍이 들지는 않지만 아플 정도로 치는 것, 고함을 치며 욕설에 가까운 말을 하는 건 무식해서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서울 모 대학 무용과 재학생 L씨)

일반대에서 통하는 ‘교수의 상식과 품위’가 왜 예체능계에서는 통하지 않을까? 음대 강단에 서기도 하는 한 전시기획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다.

“어린 나이부터 트레이닝만 받다 보니 일반적인 공부를 통해서 얻는 사회경험이 없어요. 아티스트로서의 명성이 곧 교수로서의 명성이라고 생각하는 교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부당한 대우에 대해 학생들이 항의하지 않다 보니 교수 자체가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성찰해볼 기회조차 없어요. 괴팍함이 지나쳐 폭행 등 범죄행위에 가까울지라도 ‘교수로서의 권위’나 ‘예술가로서의 카리스마’라고 인지하는 경우도 많죠.”

교수의 행동이 가르치기 위한 불가피한 접촉인지, 감정이 실린 행동인지 모르는 학생은 없다. 그런데도 교수들은 여전히 학생들이 아무 소리 못하는 것에 대해 “나는 이만큼 제자들에게 권위를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예체능계 학생의 고난은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절정을 맞는다. 이때는 그야말로 ‘소수정예 수행비서’나 ‘교수의 플래티늄 카드’가 된다. 대학원에 가는 경쟁은 학부 때 이미 시작된다. 그간 학부에서의 행적을 토대로 ‘받을 만한 학생’만 입학시킨다.

서울 소재 무용과를 졸업하고 지방에서 작은 학원을 경영하는 B씨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원 2년까지 도합 4년을 지도교수의 수행비서 노릇을 했다. 운전을 도맡아 하는 건 물론, 식성이 까다로운 교수를 위해 초밥 도시락 배달도 했다. 얇은 무대의상 때문에 떨고 있는 교수에게 코트를 갖다주고, 보온병에 건강음료를 챙겼다. 발과 다리를 안마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의가 모자랐는지 교수의 공연 무대에 번번이 오르지 못했다.

‘2009년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공연’이란 한 줄의 약력을 이력서에 올리기 위해 무용이나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지불하는 비용은 1000만원을 넘길 수도 있다. 교수의 무대 끝 순서에 슬쩍 제자를 끼워 넣거나 다른 제자의 무대에 더 어린 제자를 끼워 넣는 식이다. 무대에 얼굴을 비치는 것은 사실상 몇 분에 불과하지만, 이 경력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 자체가 교수의 추천서이기 때문이다.

“교수님 무대에 오르려면 안무비와 함께 감사비를 드립니다. 무대에 오르려면 내 작품이 있어야 하니까 안무를 받아야 하는 거죠. 감사비는 무대를 준비하시느라 힘드시니 드리는 거고요. 교수님 레벨에 따라서, 무대가 얼마나 크냐에 따라서 액수가 달라지죠.”

전통무용을 전공해 지금은 안무가로 일하는 A씨는 4년 동안 제법 큰 무대에만 4~5차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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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자유기고가 futh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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