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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부록 | 명사의 버킷 리스트

황승경 국제오페라단 단장

삶에 활력 주는 나만의 감성 버킷 리스트

황승경 국제오페라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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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 국제오페라단 단장

로마 바티칸 광장.

그런데 지금 나는 파고다공원을 지나며 감동하지 않는다. 그때는 파고다공원을 거니는 사람들이 차림새와 상관없이 모두 위대함의 그림자를 지닌 독립운동가처럼 여겨졌는데, 지금 파고다공원을 배회하는 많은 사람이 갈 곳 없는 초라한 사람들임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단지 파고다공원 앞을 지나갔을 뿐인데 그렇게 만족하고 뿌듯했던 그 시절의 나, 그렇게 순수하고 맑았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그런 나는 영원히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일에 바빠서 잠시 잊어버렸을 뿐일까! 파고다공원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나는 어느새 이렇게 변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변해버린 내가 무섭다.

1년에 두세 번 파고다공원의 정문, ‘삼일문’이라 적힌 한글 현판이 선명하게 보이는 카페로 약속을 잡는 것은 과거의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날의 그 감동할 줄 아는 아이가 그리워서다.

그런 순간은 분명히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난생 처음 영화관에 갔던 날일 수도 있고, 대학입학의 순간일 수도 있다. 지금은 너무 당연하고 시시해 보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절절했던 순간! 그곳을 다시 찾아서 맑고 순수했던 동심의 나를 찾아 겸허하게 되돌아보는 시간을 추천하고 싶다. 단, 지나치면 감동이 희석되니 너무 자주 찾지는 말 것!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기쁨의 시간

어릴 적 나의 꿈은 하루라도 무남독녀로 태어나 부모님의 관심을 듬뿍 받으며 살아보는 것이었다. 차녀였던 나는 부모님은 언제나 언니만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초등학교 2학년 때 막내 남동생이 태어난 후에는 남동생만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1남3녀의 형제와 이모, 삼촌 등 여러 식구가 항상 바글대는 가운데 부모님은 나에게 많은 관심을 쏟기가 어려웠고 거기에 대항해서 나는 의도적인 장난과 말썽으로 이목을 끌며 자랐다. 그렇게 스스로를 미운 오리새끼라 생각하며 자란 탓이었을까? 다 자란 후에도 부모님과 참으로 오랫동안 서먹한 관계가 지속됐다. 셋이 있으면 늘 무언가 허전했고 딱히 할 말이 없어 눈치를 보는 분위기 속에서 살았다. 공통의 주제를 찾기가 어려워 대화를 나누는 일도 어색했고, 서로 선호하는 TV채널이 달라서 무엇을 볼 것인지 정하기도 어려웠고, 함께 어딘가를 가는 것도 불편하기만 했다. 운동을 해도 서로 다른 체력 탓에, 식사를 해도 서로 달라진 입맛 탓에, 쇼핑을 해도 서로 다른 취향 탓에 어긋나기만 했다.



그러다 부모님께 연극 공연티켓을 전하기 위해 극장 입구에 갔다가, 정해져 있던 이후의 약속이 취소되는 바람에 함께 공연을 관람하게 됐다. 연극은 일반 대중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상투적인 것이었지만 부모님이 몹시 즐겁게 보았기 때문에 나 역시 덩달아 즐겁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며칠 동안은 부모님의 기쁨과 내가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렸다는 기쁨이 어우러져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분위기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약효는 무한하지 않아서 사흘 정도가 지난 후에는 다시 이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왔지만 부모님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소중한 체험이었다. 함께하는 작은 기쁨이 가족의 행복을 창조한다는 것을, 그것을 소중하게 여길 때 관계의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참으로 뒤늦게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 연극, 오페라, 뮤지컬 등 다양한 공연에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취향에 구애하지 않는 가족영화, 가족연극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신동아 201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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