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호

예능 프로그램 대세 ‘오디션’ 열풍

개인의 성장 서사에 감동, 획일화된 문화 뒤집기에 쾌감

  • 위근우│10아시아 기자 eight@10asia.co.kr

    입력2011-04-20 09: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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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능 프로그램 대세 ‘오디션’ 열풍

    멘토 시스템으로 차별화한 MBC의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 어떻게 볼 것인가. 연예 매체의 칼럼 제목이 아니다. 3월 말, MBC ‘100분 토론’은 이 주제를 가지고 문화평론가 하재근, 성공회대 겸임교수 탁현민, 가수 김태원·신해철 등이 모여 토론을 벌였다. 자사 프로그램인 ‘위대한 탄생’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이하 ‘나는 가수다’)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논란, 그리고 성공적 시청률에 들뜬 설레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해 케이블 채널인 Mnet ‘슈퍼스타 K2’의 대성공과 이를 철저히 모방한 ‘위대한 탄생’의 등장 이후, 공중파는 연기(SBS ‘기적의 오디션’), 글로벌 리더(KBS ‘도전자’)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슈퍼스타 K2’ 신드롬의 발원지인 CJ미디어의 채널 역시 tvN ‘오페라스타 2011’‘코리아 갓 탤런트’ 등을 내놓거나 준비 중이다. 다시 말해 이것이 ‘100분 토론’의 주제가 될 만한 사회적 현상이라 단언하긴 어렵다 해도, 현재 대한민국 TV의 대세는 분명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사실 한국 TV에서 한 명의 우승자를 가리기 위해 도전자들이 경쟁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등장한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방영 당시 상당한 화제를 모았던 MBC ‘악동클럽’은 10여 년 전 등장했고, 빅뱅의 멤버 승리가 도전하기도 했던 가수 오디션인 Mnet ‘배틀신화’ 역시 2005년 만들어졌다. 하지만 두 프로그램 모두 누가 뽑히고, 떨어지느냐에 대한 긴장감으로 잠시 시선을 모은 것에 비해 도전자들의 실질적 음악활동이 이어지지 않으면서 기억에서 지워졌다.

    그나마 미국 오디션 리얼리티 쇼인 ‘도전! 슈퍼모델’(원제 America′s Next Top Model)을 벤치마킹한 Mnet ‘I AM A MODEL’과 ‘I AM A MODEL MAN’ 정도가 20대 시청자의 관심을 끌고, 미국 ‘프로젝트 런웨이’의 포맷을 구매해 만든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가 제법 우수한 완성도를 보여줬지만 시청률과 대중적 인지도에서 케이블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반짝이는 리얼리티의 조각들

    그래서 한국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단언컨대, ‘슈퍼스타 K2’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2009년 처음 방영된 시즌1 역시 7%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케이블 역사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슈퍼스타 K2’는 진정한 대국민 오디션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케이블 최초 두 자릿수 시청률과 마지막 회에 기록한 19%의 엄청난 수치 때문만은 아니다. 금요일 밤 생방송으로 도전자들의 무대가 방송을 탈 때마다, 그리고 탈락자가 결정될 때마다 트위터의 타임라인은 각 도전자의 실력에 대한 품평, 혹은 떨어진 누군가에 대한 아쉬움 등에 대한 멘션으로 완전히 뒤덮였다. 그날 최고의 무대를 보여준 도전자의 이름, 혹은 탈락자의 이름은 곧바로 인터넷 포털 검색어 순위에 올랐고, 수많은 연예 매체는 다음날 아침도 아닌 실시간으로 ‘슈퍼스타 K2’의 결과를 보고했다. 정말 모두가 그 이야기만 했다.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미국 ‘아메리칸 아이돌’ 본선에 진출했던 재미교포 존박과 일류 프로듀서 박진영을 노래만으로 소름 돋게 하던 허각의 우정과 대립 구도는 단순한 가창 대결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중요한 순간마다 각 도전자의 과거와 현재를 매끈한 서사로 가공해 보여주던 제작진의 솜씨는 노련했다. 특히 예선 과정에서 각 도전자가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만으로 명확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편집은 ‘아메리칸 아이돌’에서도 볼 수 없던 것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탁월한 연출과 독특한 도전자들의 면면 때문에 ‘슈퍼스타 K2’의 성공은 일회적인 것처럼 보였다. TV를 보고 울고 웃던 그 한여름 밤의 꿈은 분명 하나의 신드롬이었지만, 이는 정확히 말해 ‘슈퍼스타 K2’ 신드롬이었지, 오디션 프로그램 신드롬은 아니었다.

    MBC가 ‘슈퍼스타 K2’에 편승한 티가 역력한 ‘위대한 탄생’의 편성과 기획을 발표할 때, 많은 이가 시큰둥했던 건 그 때문이다. ‘슈퍼스타 K2’의 상금 2억원에 1억을 더한 3억원의 우승상금, 그리고 우승과 준우승자에게 주는 자동차 부상까지, ‘위대한 탄생’은 ‘슈퍼스타 K2’에서 규모만 키운 수준의 안일한 프로그램으로 보였다. 신승훈, 김태원, 방시혁 등의 심사위원이 본선 진출자를 위한 멘토링을 담당한다는 점이 독특했지만, 이 멘토 시스템이 발동되기 전까지의 예선 과정에서 ‘위대한 탄생’의 연출은 종종 답답할 정도였다. 캐릭터 설정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각 도전자가 어떤 노력을 통해 심사위원들이 주는 미션을 통과하는지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예능 프로그램 대세 ‘오디션’ 열풍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의 시초가 된 Mnet의 ‘슈퍼스타 K2’.

    하지만 이러한 난국을 넘어 결국 멘토 시스템에 도착하자 시청자는 김태원이 자기 손으로 떨어뜨린 두 명의 제자를 그룹 부활의 앙코르 무대에 세우는 모습에, 평소 감정의 동요가 없던 신승훈이 제자들의 감사 무대에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에 결국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적어도 한국의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건, 누가 떨어지고 누가 올라가는 기계적 포맷이 아닌 그 순간에 잠시 반짝이는 리얼리티의 조각들이다. 이 반짝임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란 게 증명됐을 때, 비로소 개별 프로그램의 인기가 아닌,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포맷 자체로 논의가 집중된다. 오디션 프로그램 속에서 만들어지는 인물들의 서사에 대해.

    획일화된 가요계에 대한 반작용

    ‘100분 토론’에서 김태원은 ‘죽어도 TV에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현실의 장삼이사들에게 오디션 프로그램이 희망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쳇말로 ‘방송용 얼굴’과는 거리가 먼 허각, 김지수, 이태권, 백청강 같은 도전자들이 들려준 고음 음색이 유독 더 도드라지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이들 가수 오디션이, 그리고 심지어 현역 가수들이 등장하는 ‘나는 가수다’까지 가창력이라는 항목을 최우선에 놓고 있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분명 가수 최고의 덕목은 가창력이다. 물론 타고난 매력으로 가창력을 극복할 수도 있고, 뛰어난 퍼포먼스 능력 역시 좋은 목소리와 음정 감각만큼 중요한 재능이다. 하지만 가수의 ‘실력’을 평가하는 항목 중 가장 많은 이가 공유하는 최소공배수의 개념은 역시 가창력이다.

    이것은 두 가지 층위의 의미를 지닌다. 먼저 ‘슈퍼스타 K2’ 우승자 허각의 경우처럼, 많이 가지지 못했고 미남도 아닌 청년이 ‘실력’ 하나로 모든 난관을 딛고 일어선다는 감동의 성장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꼭 ‘위대한 탄생’에서 이태권과 손진영, 혹은 백청강이 우승할 필요는 없다. 그들의 도전은 그 자체로 김태원이 말했던 이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된다. 특히 자신이 지지하는 도전자에게 직접 한 표를 행사하는 시스템은 그 자체로 감정이입의 도구가 된다. 프로그램 자체가 연령과 성별 제한 없는 대국민 오디션이라는 사실은 이들을 통해 갖게 된 꿈을 자신의 삶으로 가져올 가능성까지 열어놓는다.

    또 하나는 이것이 획일화된 한국 가요계 시스템에 대한 반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100분 토론’에서 신해철은 ‘복제품처럼 똑같은 스타일을 공급받던 대중의 욕구불만’을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의 이유로 진단했다. 아이돌 위주의 댄스 음악이 대중음악의 악(惡)은 아니다. 문제는 획일화다. 1990년대 순위 프로그램과 비교해볼 때, 음악의 장르적 스펙트럼은 현저하게 좁아졌다. 하지만 ‘슈퍼스타 K2’의 장재인은 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싱어송라이터의 매력을 무대와 음원 순위를 통해 증명했고, 강승윤은 아이돌 밴드의 그것과는 다른 다분히 복고적인 록 보컬을 들려줬다. 이들이 순위 프로그램을 비롯한 대중가요의 시스템을 뒤집은 건 아니지만 어떤 균열이 일어난 건 사실이다. 평범한 개인의 성장 서사와 기존 시스템에 대한 반발은 한국 특유의 시스템 안에서 흥미로운 역전의 쾌감을 줬다

    2년 전, ‘슈퍼스타 K’가 처음 시작될 때 가장 많이 나온 우려는 재능 있는 일반인이 과연 얼마나 남아 있을 것이냐에 대한 것이었다. 쓸 만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SM엔터테인먼트와 JYP엔터테인먼트 그리고 YG엔터테인먼트 같은 3대 기획사를 비롯해 연예기획사에 이미 들어갔을 거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이와 성별, 외모에 상관없이 실력을 평가하는 대규모 오디션을 통해 대중은 기존 시스템 바깥에서 스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게 됐다. 강승윤과 김은비가 YG엔터테인먼트에 발탁되고, 많은 기획사가 존박을 잡기 위해 애쓰던 과정은 그래서 통쾌했다. 얼마 전 종영한 KBS 드라마‘드림하이’의 공개 오디션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한국 최고의 예술고등학교이자 어떤 기획사보다 더한 스타 양성소인 기린예고에서 이사장 정하명(배용준 분)은 개교 이래 최초로 공개 오디션을 실시한다. 공정성을 강조한 이 오디션에서 가창력은 뛰어나지만 외모가 별로인 필순(아이유 분)과 혜미(수지 분)의 옆자리에만 만족하던 백희(은정 분)가 합격하는 과정은, 출연자의 실력이 우선이라는 걸 모토로 내건 ‘슈퍼스타 K2’‘위대한 탄생’의 그것과 매우 닮았다.

    ‘나는 가수다’의 인기 이유

    최근 가장 화제가 됐던 ‘나는 가수다’의 인기는 이러한 맥락 안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가수 지망생이 아닌, 프라이드 강한 ‘실력’파 가수들을 ‘실력’으로 평가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것만으로도 방영 전부터 상당한 반발에 시달렸다. 특히 ‘왜 오디션 프로그램이어야 하는가’라는 자문에도 제작진은 철학의 빈곤을 드러냈다. 기획과 연출을 맡았던 김영희 PD는 첫 회에서 ‘주말 프라임 타임에 가수들의 좋은 무대를 보여주고 싶지만 시청률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오디션 형식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이것은 예능이란 당의정이 필요한 이유지, 어째서 가수들이 자신의 프라이드를 거는 방식으로 예능을 시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이 아니다.

    현재 준비 중인 타 공중파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감지되는 징후지만, ‘나는 가수다’는 최근 ‘핫한’ 포맷을 모방하는 것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이지, 어떤 사회적 현상을 반영하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첫 탈락자가 나오고 다른 가수들이 이의를 제기하자 회의를 열고 재도전 기회를 가수 본인에게 주는 등 오락가락 혼란스러웠던 제작진의 모습을 보라. 오디션 포맷에 반발하는 대중을 납득시킬 만한 스스로의 논리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제작진이 미처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나는 가수다’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첫 회에서 이소라가 불렀던 2004년 곡 ‘바람이 분다’는 음원 판매량이 급증하며 7년 만에 KBS ‘뮤직뱅크’ 순위에 포함됐고, 김범수가 다시 부른 ‘제발’은 비슷한 시기 나온 가수들의 신곡을 제치고 음원 사이트 순위 1위를 기록했다. 단순히 방송을 탔다는 것만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이러한 바람은 앞서 인용한 “복제품처럼 똑같은 스타일”에 대한 반작용에 가까워 보인다. 한때 가요 프로그램에서 쉽게 ‘실력’ 있는 가수들을 만나고 심지어 1위로 뽑아주기도 했던 시절에 대한 어떤 향수 같은 것이 ‘나는 가수다’의 인기에 존재한다.

    양식적 모방과 사회적 반영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의 범람 현상에는 양식적 모방과 사회적 반영, 두 가지 요소가 혼재돼 있다. ‘슈퍼스타 K2’가 대중이 최근 대중가요 시스템을 보며 느낀 갈증을 해소하는 사회사적 의미를 갖는다면, 이를 보고 모방한 ‘위대한 탄생’, 그리고 역시 이들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를 등에 업은 ‘나는 가수다’는 양식사적 의미를 갖는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모를 일이지만 ‘기적의 오디션’ 역시 연기자를 실력으로 뽑길 바라는 대중의 심리를 파악했다기보다는 포맷을 모방하되, 너도나도 다 하는 가수가 아닌 다른 무엇을 선택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 즉 이들 프로그램은 오디션이라는 포맷의 인기를 증명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처럼, 제작진의 의도가 불분명했던 작업조차 TV를 통해 공개됐을 때, 그 안에는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우리 자신의 욕망이 들끓고 있다. 이것은 우연일까. 그래서 이 글의 첫 문장은 이 현상에 대한 가장 솔직한 태도다.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 ‘어떻게’ 볼 것인가. 오디션 프로그램이 2011년 예능의 대세인 건 사실이지만, 방송사가 ‘왜’ 앞 다퉈 오디션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우리는 ‘왜’ 그에 대해 열광하는지 아직 말하기 어려운 단계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허락된 건 ‘왜’가 아닌 ‘어떻게’다. 가수들이 서로의 실력으로 자웅을 겨루는 포맷 안에서만 1990년대 대중음악의 향수를 누릴 수 있는 상황을, ‘오페라스타 2011’에서 가수들이 대중음악과 전혀 다른 오페라의 영역에 도전하는 걸 바라봐야 하는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하는가. 무엇이 긍정적이고, 무엇이 잔인한가. 서로 다른 서사를 가진 프로그램들이 오디션이라는 포맷으로 뭉뚱그려 파악되는 것을 어떻게 세분화해 얘기해야 하는가. 이 논의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이 등장하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언젠가 들려줄지 모를 ‘왜’에 대한 답에 대해, 그 안에 자리한 우리 욕망의 옳고 그름에 대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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