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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의 술 풍경(상)

“술이 문학 잡아먹어? 문인이 술 잡아먹어?”

문인과 술, 그 불콰하면서도 들쭉날쭉한 포옹

  • 이소리│시인·전 민족문학작가회의 총무 lsr21@naver.com

“술이 문학 잡아먹어? 문인이 술 잡아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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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시인은 그때 마산 부림시장 주변에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던 작고 허름한 대폿집에서 툭하면 글쓴이와 술벗을 삼았다. 그는 ‘탁주 반 되는 밥 한 그릇’이란 표어가 나붙은 그런 대폿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배가 너무 고프다 못해 아프기까지 하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가 나를 술벗으로 삼은 까닭도 사실은 배가 고파 막걸리 한 사발로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였다. 글쓴이는 그래도 그곳이 아버지께서 논 서너 마지기를 짓고 있는 고향이었기에 가끔 마시는 막걸리 값 정도는 마련할 수 있었다.

하루는 어스름이 질 무렵 최 시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산 창동 골목에 있는 잔술집으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그때 마산 창동 골목에는 정종 한 잔(맥주컵)을 따뜻하게 데워 파는 잔술집이 꽤 많았다. 그 잔술집들은 1000원짜리 정종 한 잔만 시키면 안주가 10가지 넘게 공짜로 무한정 나왔다. 술시중을 드는 예쁘장한 아가씨들도 있었다. 그 아가씨들에게 술시중을 받으려면 정종을 한 잔 시켜줘야 했다. 아가씨들은 잠시 앉아 술시중을 들다가 순식간에 정종 한 잔을 쪼옥 빨아 마신 뒤 한 잔 더 시켜주지 않으면 순식간에 자리를 떴다.

“시가 곧 술이고, 술이 곧 시야. 좋은 시를 쓰려면 이 술을 애인 삼아야 해. 한 잔 마셔. 왜 그리 술을 베어 마셔. 술값 땜에 그래? 걱정 마. 이 집은 내 단골이어서 외상을 달아놔도 돼.”

최 시인이 이때 한 말은 자기 이름으로 외상값을 달아놓을 테니 나더러 나중에 갚으라는 것이었다. 선배문인이 그렇게 말하니 무작정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머리를 번쩍 하고 스치는 게 있었다. 최 시인은 말술을 마시는 문인이어서 잔술을 마시다간 술값이 엄청나게 많이 나올 것만 같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처럼 말이다.

“그러지 말고 아예 대병 한 병을 시키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게 더 싸고 많이 마실 수 있을 것 같은데….”



“히야~ 니도 간뎅이가 부었구먼. 시 한 편 건지는 건 양에 안 차니까 아예 시집 한 권을 건지자 이 말이네.”

“얼씨구!”

“절씨구!”

“가시나야, 수류탄 안전핀 다 뽑고 콱 죽어뿌자”

그날, 정종 대병 한 병을 시켜 주전자에 반쯤 따라 데워가며 이선관, 최명학 시인과 함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를 외치며 잔을 수없이 부딪쳤다. 아가씨들도 신이 났던지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을 우리 일행들 볼에 쪼옥~ 소리가 나도록 들이댔다. 볼록한 젖탱이를 어깨와 팔에 슬슬 문지르며 갖은 아양을 떠는 아가씨도 있었다.

“○○양! 니 가슴 양쪽에 단 그 멋진 수류탄(젖가슴) 안전핀을 뽑으려면 어떡해야 돼?”

“수류탄 하나에 대병 한 병씩이니까 두 병째 시키면 양쪽 안전핀을 다 뽑을 수도 있어예.”

“요 가시나들이 굉장히 못된 년들이네. 대가리 소똥도 제대로 안 벗어진 것들이 잔머리만 늘어가지고. 그래. 기왕 베린(버린) 몸, 한 병 더 가꼬 와뿌라 고마(가져와라). 올 가시나 너거캉 우리캉 수류탄 안전핀 다 뽑고 같이 콱 죽어뿌자.”

우리 일행은 아가씨들과 그렇게 제법 진한 농을 주고받으며 정종을 세 병 남짓 마신 뒤 밤 10시가 훨씬 넘어 그 술집을 나왔다. 아가씨들이 ‘수류탄 안전핀까지 뽑아놓고 그냥 가면 어떡하냐’는 소리를 귀로 흘리며.

나는 창동에 살고 있었던 이 시인을 부축해 집까지 모신 뒤 최 시인과 택시를 잡아탔다. 창원으로 가는 길목인 북마산에 살고 있었던 최 시인과 같이 타고 가다 내려주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최 시인과 어떻게 헤어진 줄은 지금도 모른다. 택시를 타자마자 졸았기 때문에. 그렇게 비몽사몽 창원에 닿아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비척비척 걷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갑자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어어~ 하는 순간 그대로 논둑 아래 물꼬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래도 시원했다. 잠시 그렇게 물꼬에 올챙이처럼 처박혀 있으니 술이 어느 정도 깨는 듯했다. 어떻게 집에 갔는지도 몰랐다. 그 다음날 새벽, 그야말로 온 집안이 온통 난리법석이었다.

“저 아 저기 완전히 미쳐뿐 거 아이가. 간밤에 무슨 짓을 했는지 온몸에 진흙탕을 잔뜩 덮어쓰고 오지 않나. 겨우 씻겨가꼬 재워놨더니 방 벽이 통시(화장실)인 줄 알고 오줌을 철철 갈기지를 않나.”

“‘수류탄! 수류탄!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이 터진다’니…. 그기 무슨 말이고. 아무리 잠꼬대라 캐도 뜬금없이 수류탄이 웬 말이고. 지뢰밭에라도 댕겨왔나.”

마산과 창원, 진해 등지에 있는 문인들이 자주 가는 술집은 막걸리와 소주, 맥주 등을 골고루 파는 ‘고모령’과 소주와 맥주만 파는 ‘성미’였다. 그 다음으로 자주 찾은 곳은 부림시장 안에 있는 ‘독수대’(이선관 시인 시 제목을 따서 지었음)와 부림시장 난전, 고갈비(고등어구이) 집, 어시장 난전 등이었다.

그 술집에서 자주 만난 문인은 시인 정진업(1916~83), 박재호(1927~85), 황선하(1931~2001), 이광석, 정목일, 김태수, 김종석, 하길남 등이 었다. 이들은 밤늦게까지 술을 즐겨 마셨지만 술주정을 좀처럼 하지 않는 점잖은 문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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