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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의 술 풍경(상)

“술이 문학 잡아먹어? 문인이 술 잡아먹어?”

문인과 술, 그 불콰하면서도 들쭉날쭉한 포옹

  • 이소리│시인·전 민족문학작가회의 총무 lsr21@naver.com

“술이 문학 잡아먹어? 문인이 술 잡아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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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 때문에 단골 술집 바꾼 천상병

“술이 문학 잡아먹어? 문인이 술 잡아먹어?”

저항시인 故 조태일 씨.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귀천’ 몇 토막)라는 시를 남기고 정말 하늘로 돌아간 시인 천상병(1930~93). 젊은 날에는 소주, 맥주 등 닥치지 않고 마구 마셨던 그도 말년에는 막걸리를 즐겼다.

그가 경기도 의정부에 살 때 자주 가던 단골 막걸리집이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천 시인이 갑자기 단골 막걸리집을 버리고 다른 막걸리집으로 가기 시작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천 시인 부인 목순옥 여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요즘 새로 가는 막걸리집 주모가 아주 예쁜가 보죠?”

“문디 가시나 아이가. 그 막걸리집은 예전에 다니는 그 집보다 술잔이 훨씬 더 크다 아이가.”



시인 천상병에 얽힌 이야기는 이외에도 참 많다. 한국문단에는 시인 천상병에 얽힌 여러 이야기보다 더 우스꽝스럽고 어이가 없는 일들이, 꼭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끊임없이 터진다.

내가 민족문학작가회의(지금의 한국작가회의)에서 총무 간사를 맡아 일할 때도 그랬다. 시 ‘국토’로 널리 알려진 조태일(1941∼99) 시인이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을 1988년 들머리께 있었던 ‘양주 오바이트 사건’도 그랬다.

시인 조태일은 생맥주를 참 좋아했다. 대낮이든 저녁이든 밤이든 그는 생맥주집에 들어가 앉으면 500cc 생맥주를 10잔 이상 연거푸 마시곤 했다. 안주도 잘 먹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희한한 것은, 그는 아무리 생맥주를 많이 마셔도 화장실에 한 번도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젊은 넘들이 그기가 왜 그리 짧아! 그렇게 파닥거려서야 제대로 된 시나 소설을 쓸 수 있겠어. 술도 문학과 쌍둥이인데, 느긋하게 발효를 시킬 줄 알아야지.”

“선생님! 그 비법 좀 알려주십시오.”

“비법은 없어. 시인이 타고나는 것처럼 술꾼도 타고나야 하는 거야.”

조 시인은 일주일에 두어 번씩 아침 일찍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실로 나왔다. 그는 파이프 담배를 생맥주를 마실 때만 빼곤 거의 입에 문 채 신문을 뒤적거리거나 눈을 지그시 감고 명상에 잠기곤 했다. 말도 별로 없었다. 꼭 해야 할 말만 했기 때문에 그가 지닌 속내를 읽으려면 얼굴표정을 보면서 눈치껏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침에 나왔다가 점심 때가 지나 오후 3~4시쯤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데리고 가까운 ‘아현생맥주’ 집으로 자주 가곤 했다. 그날도 오후 3시쯤 조 시인을 따라 아현생맥주 집으로 갔다. 그는 그날따라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었던지 생맥주 500cc를 열 잔 넘게 연거푸 마시더니 꽤 이른 시간인데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맥주 500cc 10잔이 기본인 조태일 시인

“우리 집에 가서 한잔 더 하자고.”

“선생님, 좀 취하신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걱정 마. 이깟 생맥주 몇 잔에 무너질 내가 아니야. 택시 잡아, 택시!”

죽형(竹兄) 조태일 시인은 키가 180㎝에 달할 정도로 컸고, 덩치도 아주 좋아 문단에서는 ‘거구’로 불렸다. 그런 그가 생맥주집을 나서면서 비틀거리는 것이었다. 그가 비틀거리는 모습을 처음 본 나는 얼른 팔짱을 끼었으나 너무 힘에 부쳐 택시를 잡기 위해 서 있다 몇 번이나 같이 길바닥에 나뒹굴곤 했다. 택시 또한 슬며시 다가왔다가 그가 약간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곤 그대로 쌩 달아났다. 나는 한동안 그렇게 그와 택시와 씨름을 하다가 겨우 택시를 잡았다.

“방배동 쪽으로 가주세요.”

그는 택시에 타자마자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문제는 택시가 그가 살고 있는 방배동 가까이 닿았을 때였다. 운전기사가 물었다.

“방배동 어디쯤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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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리│시인·전 민족문학작가회의 총무 ls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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