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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자와 술 ②

위스키 증류소 세운 조지 워싱턴

위스키稅 부과로 ‘위스키반란’…대통령으로서 직접 군 지휘해 제압

  • 김원곤| 서울대 의대 교수·흉부외과 wongon@plaza.snu.ac.kr

위스키 증류소 세운 조지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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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증류소 세운 조지 워싱턴

1781년 미국 독립전쟁에서 조지 워싱턴 장군에게 항복한 영국 군인들.

1794년 8월1일 열린 집회에서는 무려 7000명가량의 인원이 모여 위스키반란 시작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대부분은 소유 토지도 없고 위스키 증류소도 운영하지 않는 빈곤층으로 실제 위스키세와는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은 위스키반란으로 혼란한 상황을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기회로 생각했고, 이 때문에 이번 사태와는 무관한 부자들이 애꿎은 피해를 보는 경우가 속출했다.

조지 워싱턴은 위스키반란 사태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자 본격적인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의 기본 방침은 정부의 권위를 지키되 되도록 민중의 반발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협상 사절을 현지에 보내 유화책을 쓰는 한편, 무력 사용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진압군을 모집했다. 당시 모집된 병력은 모두 1만2950명. 당시로서는 상당한 규모였다.

1794년 10월 이윽고 워싱턴의 총지휘 아래 진압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 역사상 현직 대통령이 직접 군사를 이끈, 처음이자 유일한 일로 기록된다. 위스키반란군은 군대의 진격 중단을 요청하면서 협상안을 내놓았지만, 워싱턴과 재무장관 해밀턴은 그럴 경우 반란이 재발할 것이라며 요청을 거부했다. 그러나 워싱턴은 진군 도중 위스키반란군의 실제 저항이 미미할 것으로 보고 중간에서 장군(General Henry Lee, 1756~1818)에게 지휘권을 넘겨주었다. 재무장관 해밀턴은 민간인 고문 자격으로 계속 진압군에 머물렀다.

마침내 진압군이 서부 펜실베이니아에 진입하자 반란군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20여 명의 주동자가 체포됐다. 그러나 폭행, 방화 등 죄질이 나쁜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얼마 후 석방됐다. 이들 2명도 반역죄로 교수형을 선고받았으나 워싱턴은 이들을 사면했다.

위스키반란은 신생 정부가 단호한 의지로 법에 대한 저항을 성공적으로 해결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에도 사태 해결 후 워싱턴의 정책 방향은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위스키세 자체는 시행 과정에서 문제점이 노출되면서 1800년 해밀턴의 연방당에 반대하는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의 공화당이 집권하면서 철폐됐다. 위스키반란으로 어쩌면 위스키와는 좋지 않은 추억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워싱턴과 위스키의 인연은, 그가 만년에 위스키 증류소를 건립하면서 좋은 추억으로 전환된다.



위스키 증류소 세운 사업가 워싱턴

워싱턴은 사실 사업가로서도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상속지인 마운트 버논(버지니아 주 포토맥 강가에 있는 지역)에 1771년 석재로 큰 제분소를 지어 여기서 만든 제품을 유럽에 수출했다. 그러던 중 그의 만년에 농장 관리인인 앤더슨(James Anderson)의 건의로 제분소 옆에 위스키 증류소를 세우기로 결정한다.

위스키 증류소는 1797년 워싱턴이 대통령직에서 떠나던 해에 완공된다. 이 증류소는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1년에 위스키 1만1000갤런(약 4만1640L)을 생산했다고 한다. 워싱턴의 증류소에서 만들어진 위스키 중 대표적인 제품은 호밀 60%, 옥수수 35%, 몰트 보리 5%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증류소에서는 위스키 이외에도 다양한 과일을 사용해 브랜디를 만들기도 했다.

1799년 워싱턴이 사망하자 제분소와 증류소는 그의 조카 루이스(Lawrence Lewis)에게 넘어가고, 다시 1808년에는 한 상인에게 임대됐다. 증류소 영업에 대한 마지막 기록도 1808년까지다. 이후 1814년 증류소 건물은 큰 화재를 당했고, 제분소 건물마저 1850년 완전히 파괴됐다.

이후 역사적인 이 건물들을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철저한 고증 끝에 최근 제분소와 증류소 건물이 재건됐다. 2층에 모두 5개의 증류기가 설치된 증류소 건물 공사는 2007년 끝났다. 현재 이들 건물은 기념품점과 함께 일반인에게 공개돼 18세기 미국 위스키 증류소의 흔적에 대한 감상과 더불어 워싱턴과 위스키의 뗄 수 없는 인연을 되새기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신동아 201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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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곤| 서울대 의대 교수·흉부외과 wongon@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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